[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움트는 봄기운 즈려밟고.. (2022.03.15)

푸레택 2022. 3. 15. 16:27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움트는 봄기운 즈려밟고..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움트는 봄기운 즈려밟고..

오래된 길 따라 옛 고을 둘러보기100년 전 최남선과 박한영이 걸었던 심춘순례길기린산 정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석전 박한영(石顚 朴漢永) 선사와 행장을

news.v.daum.net

기린산 정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움트는 봄기운 즈려밟고..

오래된 길 따라 옛 고을 둘러보기
100년 전 최남선과 박한영이 걸었던 심춘순례길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석전 박한영(石顚 朴漢永) 선사와 행장을 차리고 남도순례를 떠난 날이 1925년 3월28일 저녁이다. 다음날 새벽 대전역에서 호남선으로 갈아탔다. 또다시 익산에서 경편열차(협궤열차)로 갈아타고 꼬박 하루가 지난 29일 오후가 돼서야 전주역에서 내렸다. 거의 한세기인 90여년이 지나 그의 자취를 따라 걸어볼 요량으로 KTX에 몸을 싣고 길을 나서니 서울에서 전주까지 두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심춘순례(尋春巡禮)의 시작점인 전주에서 그의 뒤를 따른다.

기린산으로 오르는 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아중로에서 기린봉(麒麟峰·271m)을 오르는 것으로 길을 시작했다. 아직 입춘이 되려면 보름가량 남았으나 벌써 봄인 듯 전주의 날은 푸근하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아직 봄을 품지 않았는데 마음은 봄을 맞이하듯 방창하다. 선인의 길을 따라 걷기 때문이리라. 1㎞ 남짓 힘겹게 오르니 기린봉이다. 산세가 예사롭지 않아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영험한 산이다. 이 산은 전주의 네 방위를 지키는 사신 중 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전주 10경 중 제1경이다. 좌청룡은 용머리 고개, 남주작은 치명자산, 북현무는 거북바위이다.

◆ 동고산성, 승암산에 오르다

동고산성터.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기린봉 정상에서 한껏 호연지기를 느끼고는 능선으로 연결된 승암산(僧巖山·301m)으로 향했다. 1㎞ 남짓 걸어 승암산에 도달하니 여기가 동고산성이었다는 북문표지가 서있다. 승암산이 껴안고 있는 성이다. 동고산성(東固山城)은 국내 유일의 후백제 유적지로 견훤의 왕성이라 전해진다. 승암산 정상에 도달했다. 승암산은 높지는 않으나 전주의 역사를 간직한 진산이다. 다른 이름은 한자를 풀어서 중바위다. 원래 밝다는 뜻을 한자로 '발산'(鉢山)으로 표기했는데 '발'(鉢)이 스님의 의발을 뜻해 다시 뜻을 변용해서 '승'(僧)으로 적어 지금은 승암산이 됐다.

◆ 참암 암각서와 한벽당

월당 최담의 유허비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중바위에서 하산했다. 무애사를 지나 자만동 벽화마을을 좌측으로 돌아드니 조선 후기의 명필 창암 이상만의 암각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옆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월당 최담의 유허비가 세워진 비각이다. 비각을 지나니 좌측으로 옛 경편철도의 터널이 지나간다. 한벽당(寒碧堂) 밑으로 뚫린 터널이라 한벽굴이라 칭한다. 터널을 지나 천변을 따라 돌아 오르니 한벽당의 모습은 천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한벽당은 조선 초기 최담이 지은 별장 건물이다. 누각 아래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데 바위에 부딪쳐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하여 한벽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벽굴과 보수 중인 한벽당.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90년 전에는 전주천변에 우뚝 서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줬을 터인데 지금은 국도가 지나 주변의 풍광이 많이 훼손돼 아름다운 옛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천막을 가리고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더욱 안타까웠다. 올 상반기에 보수가 끝난다니 기다림에 일각이 여삼추와 같다. 다음에 한번 더 와서 자세히 둘러보리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주 향교로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새로 지은 한옥이 기존 한옥들과 어우러져 있다. 다른 곳에 있던 한옥도 이쪽으로 많이 옮겨온 모양이다. 이곳부터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국적 모를 한복을 입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근래 들어 서울 고궁에서도 자주 보는 풍경이다. 한복을 입는 것은 좋으나 제대로 복식을 갖추어서 입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향교의 명륜당.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전주 향교 앞에 이르렀다. 만화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대성전이며, 명륜당이며, 제각기 독특한 개성의 건물이다. 특히 명륜당은 모양이 특이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지붕이 눈썹모양으로 길게 드리워진 것이 특이했다. 젊은 선비들이 북적였을 상상을 해보며 자리를 옮겼다. 향교 뒷문으로 나오니 돌담으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 옮겨다 놓은 고택들 

차경석의 정읍고택.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향교 옆에는 전주의 특이한 한옥 몇채를 옮겨다 놓았다. 전북지방 한옥의 특색을 가장 잘 살린 역사성이 있는 건물이다. 정읍고택은 보천교를 창시한 차경석의 고택으로 ‘ㅁ’형의 건물이며 보온효과를 높이려는 북방형이다.
임실 진참봉 고택은 180여년이 지난 건축물로 중부지방 양반가의 전형적인 별채다. 일송 장현식의 고택은 독립운동가의 집으로 전통한옥의 가치가 높은 전형적인 고택이다. 전주 동헌은 1890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91년 중창한 전주 부윤의 집무공간이다. 이렇게 한곳에 모아놓으니 비로소 한옥마을답다. 이 지역을 벗어나면 국적불명의 한옥이 즐비해서 도대체 이곳이 한옥마을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경기전과 풍남문

풍남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경기전(慶基殿)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곳이다. 어진을 모신 곳은 3곳인데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불렀다. 경기전에 사람이 빼곡하게 모여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다들 진지한 표정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 무언가 말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요즘 들어 이곳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밀려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실록을 보관한 사고(史庫)를 둘러보고 남문으로 가기 위해 경기전을 나왔다.

전주의 성곽과 4대문 중 3대문이 유실되고 오직 남문인 풍남문(豊南門)만 남아있다. 순천지역에서 들어오는 쪽은 풍남문이고 안쪽에서 바라보면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다. 아마도 지키는 자의 자부심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풍남이란 이름은 천하를 일통한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강소성 패현)에서 따왔다. 이성계를 유방에 빗대 전주도 풍패의 향이 난다고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했고 풍패의 남쪽 문이라 해서 풍남문이 된 것이다. 한참 짓고 있는 전주 감영과 보수중인 객사 풍패지관을 뒤로 하고 전동성당으로 향했다.

◆ 조선 최초의 순교지 전동성당

전동성당.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전동성당은 인산인해였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결혼식이 진행 중이라 안으로는 못 들어가게 한다. 예전에 다녀왔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은 생각에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나왔다. 이곳은 호남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천주교 최초 순교자가 나온 성지로 순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풍남문이 바로 앞이어서 자연스레 순교지가 되었으리라. 한동안 마음으로 묵상을 하고는 전동성당을 떠나 마지막 종착지인 오목대와 이목대를 향했다.

◆ 조선의 자부심 오목대와 이목대

오목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한벽당 뒤로 우뚝 솟은 언덕에 세워진 오목대(梧木臺)는 태조 이성계가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전하고 잠시 머물렀던 곳인데 고종황제가 친필로 비석을 세웠다. 아마도 열강의 틈새에서 조선이 강대하지기를 바라는 고종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오목대는 오동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오동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발산(승암산)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지명에 맞춰 다시 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목대를 둘러보고 육교 건너 바로 지근거리에 있는 이목대(梨木臺)에 들렀다. 이목대는 태조의 5대조 목조를 기념하기 위해 고종이 비문을 쓰고 만든 것인데 현실에선 열강에 치이는 조선이 강대했으면 하는 꿈을 꿈꿨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목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육당이 걸었던 남도기행기 심춘순례(尋春巡禮)를 따라 걷는 첫발을 내디뎠다. 조선의 3대천재라 불리던 최남선과 당대 최고의 선지식 박한영 선사가 나눈 50일간의 대화는 무궁무진한 법열의 순간이었으리라. 미욱하지만 그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우리 땅의 보배로움을 느낀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尋春(심춘) -작자 미상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芒鞋遍踏壟頭雲(망혜편답롱두운-짚신이 다 헤지도록 언덕 위 구름만 따라 다녔네)

歸來笑撚梅花臭(귀래소연매화취-지쳐서 돌아와 뜰 안에서 웃고 있는 매화향기 맡으니)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봄은 여기 매화가지 위에 이미 무르익어 있는 것을)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9.01.31

/ 2022.03.1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