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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쓸쓸한 섬과 포구의 흔적 (2022.03.15)

푸레택 2022. 3. 15. 20:03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쓸쓸한 섬과 포구의 흔적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쓸쓸한 섬과 포구의 흔적

뭍과 섬 사이, 철책길을 걷다지킴의 길, 김포와 강화 사이 '염하강'을 가다 강화대교와 염하강 전경. /사진=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대명항에서 시작해 문수산성까지, 김포와 강화 사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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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대교와 염하강 전경. /사진=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쓸쓸한 섬과 포구의 흔적

뭍과 섬 사이, 철책길을 걷다
지킴의 길, 김포와 강화 사이 '염하강'을 가다


대명항에서 시작해 문수산성까지, 김포와 강화 사이의 길고 좁은 염하강(鹽河江)을 따라 14.5㎞의 철책길이 이어진다. 좁은 물길 모양이 강처럼 보여 염하강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해협이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거세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려가 왕도를 강화로 옮겨 39년간 몽고에 저항할 수 있던 것도 세찬 염하강 물살 덕분이었다. 대명포구에 들어섰다. 지레 겁먹어 겹겹이 싸매고 나섰지만 날이 그리 춥지 않다. 포구는 손님을 맞이하려는 준비로 분주하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대명항 함상공원에는 커다란 군함 한척이 오가는 이들을 반긴다. 오늘 걷는 평화누리길 너머로 북한 땅이 지척이라 바다로 트여야 할 길가는 모두 철책이 가로막았다. 철책 너머로 보이는 염하강에는 이따금 갈매기가 날아올라 포구임을 알겠다. 뻘은 가장자리만 물이 찰랑거린다. 하얀 염분자국으로 보아 밀물이었다가 서서히 빠지는 중인 모양이다.


염하강 철책길. /사진=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나라의 존망 걸었던 덕포진 손돌목

덕포진(德浦鎭)이다. 덕포진은 강화만을 지나 서울로 통화는 길목으로 물살이 빠르고 소용돌이가 심한 손돌목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진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강화도 덕진진, 광성보와 진형을 짜 적을 막아내던 요새다.

덕포진 포대. /사진=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신미양요 때는 미국함대와 격렬하게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포의 장약을 터트릴 불씨를 모아놓던 돈대와 포대의 중심지 파수장터가 눈길을 끈다. 치열한 싸움 중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지휘하던 장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대명항에서 시작된 철책은 문수산성으로 이어졌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잦은 외적의 침략으로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던 땅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또 다시 촘촘히 세워둔 철책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평화의 시대가 와서 철조망이 활짝 걷히고 자유로운 시선으로 염하강을 바라볼 날을 기대한다.

손돌묘.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덕포진 북쪽 손돌묘에서 걸음을 멈췄다. 손돌묘는 염하강을 밀고 들어가 손돌목 거센 물살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다.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을 피해 강화로 파천하는 왕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도와주던 뱃사공 ‘손돌’을 기리는 묘다. 왕이 손돌을 믿지 못해 죽이자 광풍이 몰아쳤고 그제야 왕이 잘못을 뉘우쳤다 하여 이 바닷길을 손돌목이라 불렀다.

◆ 부래도와 쇄암리의 성터 

손돌묘를 지나 1㎞ 남짓 걸으니 눈앞에 작은 무인도인 부래도가 보인다. 부래도는 염하를 따라 흘러들어왔다고 해서 부래도(浮來島)다. 섬에는 성터의 흔적이 남아 이곳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강을 가득 채우고 넘실대던 물은 어느새 많이 빠져 갯벌의 민낯을 드러냈다. 부래도 오른쪽엔 갈대를 가득 품어 바다보다 높아진 갯벌이 작은 섬처럼 보인다. 겨울 부래도와 갯벌 가득한 갈대가 쓸쓸한 겨울의 정취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부래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신안리와 솜마리를 거쳐 쇄암리(碎岩里)에 이르렀다. 쇄암리는 ‘부서지는 바위’란 말뜻 그대로 염하강 수로와 접한 해안 암벽이 잘 부스러져 붙은 이름이다. 원래 이름이 바삭바위, 바석바위라 하니 얼마나 잘 부숴졌을지 짐작이 간다. 걸으면서 밟히는 돌이 잘 부서지는 것을 보고 쇄암리란 마을 이름에 공감이 갔다.

◆ 원머루나루의 할머니 

 

아름다운 염하강 풍경은 끊임없이 이어진 철책에 갇혀 자꾸 탈출을 꿈꾸게 한다. 염하강을 따라 흐르는 바닷물은 너무 빨라 무섭다. 강화가 40년 동안 고려 왕실을 품은 것도 사나운 바닷길 때문이다. 바다에 인접한 들쑥날쑥한 산길을 걸었다. 그렇게 터벅터벅 십여㎞를 걸으니 원머루나루다.

 

염하강의 뻘과 갈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원머루나루에는 추억이 하나 있다. 십여년 전 여름, 이 길을 걷다가 구세주처럼 만난 조그마한 가게가 있었다. 인심 좋은 할머니가 탁배기 한잔을 마시는데도 김치 등을 잔뜩 내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다시 찾아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계셨다. 예전처럼 김치를 한포기 듬뿍 내와 맛있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늘어난 만큼 더 늙으셔서 마음이 짠하다.

◆ 문수산성에 오르다 

김포CC를 지나 3㎞가 넘는 도로구간을 지났다. 왼쪽으로는 염하강 철책이 이어지고 오른쪽엔 넓은 김포평야가 자리한다. 멀리 문수산성의 남문이 보이니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다.


문수산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길게 이어지던 도로가 끝나고 강화대교를 지나 길의 끝인 문수산성에 도착했다. 발품을 계산해보니 14.5㎞를 걸었다. 새로 복원된 성루에 올라 멀리 강화 쪽 갑곳돈대를 바라보면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옛 위용을 경험해본다.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때 만들어졌으며 산성 안 문수사라는 절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대명항에서 문수산성까지 걸으며 성동나루, 대명나루, 덕포나루, 바삭바위나루, 원머루나루 등 많은 포구와 나루가 둑과 철책으로 많이 훼손된 것을 보았다. 원형을 복구해 옛 모습을 찾는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남과 북의 대치가 끝나면 옛 모습을 간직한 나루터가 되살아날까. 


섬 - 김기림

흰 모래 불에 담긴
살진 바다의 푸른 가슴에
얽매인 섬 두어 개

서편으로 기우러져
산맥(山脈)에의 의지를 드디어 버리지 못하는
향수(鄕愁)의 화석
두어 개

나라가 먼 사공(沙工)들이 배를 끌고
때때로 쌓인 한숨을 버리러옵니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뉴스' 머니S 2019.02.21

/ 2022.03.1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