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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봄, 비를 기다리다 (2022.03.19)

푸레택 2022. 3. 19. 19:01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봄, 비를 기다리다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봄, 비를 기다리다

모악산에 봄이 내리다파릇한 녹음 준비하는 '엄뫼'로 심춘순례 모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땅속에 숨어있던 봄이 꿈틀거리며 겨우내 마른 땅을 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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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봄, 비를 기다리다

모악산에 봄이 내리다
파릇한 녹음 준비하는 '엄뫼'로 심춘순례

 

땅속에 숨어있던 봄이 꿈틀거리며 겨우내 마른 땅을 헤집어 놓았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를 넘어 싱그러운 바람에 실려 봄이 왔다. 갈색의 대지는 파릇한 녹음을 준비하고 비를 기다린다. 봄비. 빗방울이 마른 흙길을 적시길 기대한다. 첫 빗방울은 마른 먼지를 머금고 하늘로 비산하며 봄이 왔음을 알릴 것이다. 봄을 시샘하는 미세먼지는 사방을 뿌옇게 만들어 놨다. 맑은 하늘을 본 지가 얼마던가. 내내 건조해진 들판의 봄은 미세먼지를 씻어 내릴 비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심춘순례(尋春巡禮)의 두번째 행장이다. 이른 아침 전주역, 사람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만날 것인가. 기대가 부푼다. 전주와 완주, 김제를 품은 모악산(母岳山)으로 향했다. 완주의 대원사를 넘어 모악산 정상을 찍고 김제의 금산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모악산 관광단지에 들어섰다. 모악산은 마음 급한 상춘객을 반가이 맞아들였다. 까마득히 솟아있는 모악산 송전탑은 미세먼지에 가려 형체가 뭉그러졌다.

◆ 어머니의 산, 모악산을 오르다

봄 소식을 알리는 대원사 계곡.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계곡의 물소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봄을 알리는 소리마냥 청량하고 맑다. 콧소리를 흥얼거리다 누구라도 볼까봐 흠칫 주변을 둘러본다. 부지런히 걷다보니 젖은 땀이 옷 밖으로 배어 나왔다. 대원사(大院寺)에 이르렀다. 대웅전 앞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5층 석탑이 있다. 뒤로 돌아 언덕을 오르니 또 하나의 5층 석탑이 있다. 고려 때 만들어진 석탑이다. 석탑 뒤에서 대원사를 바라보니 절간 풍경이 참 예쁘다.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이 이곳에서 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대원사는 증산교의 모태랄 수 있다.

모악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수많은 종교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산 이름처럼 '어머니의 산'이라서 그런가.
수왕사(水王寺)를 바라보고 산을 오른다. 산이 꽤 가파르다. 수왕사까지 거리는 짧았으나 힘에 부쳐 몇번이나 쉬었다. 수왕사는 이름 그대로 물중의 왕이라 이곳 물맛이 전국 최고란다. 수왕사의 본명은 '물왕이 절'이다. 혹은 '무량(無量)이 절'로 불리다가 한자로 바뀌면서 수왕사가 됐다. 680년 신라 문무왕때 보덕화상(普德和尙)의 수도 도량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암자이나 역사는 심원하다. 소문대로 수왕사 물맛은 예사롭지 않다. 수왕의 물은 오고가는 많은 이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화하는 모양이다.

고려 오층 석탑과 대원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모악산 정상까진 1㎞가 남았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이니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다. 무제봉을 지나 쉰길바위에 다다랐다. 모악산 이름의 전설이 되는 바위다. 형상이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엄뫼'다. 곧 '어미산'이란 우리말을 한자로 차용해 모악산(母岳山)이라 부른 것. 찬찬히 보니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이다. 모악산 정상(794m)이다. 사방을 조망하니 모두가 발 아래다. 태산에 올라 '회당능절정(會當凌絶頂), 일람중산소(一覽衆山小)'를 외친 두보의 마음을 알겠다. 정상에 터 잡은 거대한 송신탑이 눈에 거슬린다. 선녀들이 신선들과 어울렸다는 신선대를 지나 모악정으로 내려왔다. 좁은 도로와 금산천 계곡이 길게 이어졌다. 계곡은 꼬불꼬불 산을 따라 돌아갔다. 일행의 걷는 뒷모습이 세상의 길을 걷는 구도자와 같다. 무념으로 걸음해 미륵신앙의 성지 금산사(金山寺)에 이르렀다.

금산사 대적광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금산사, 홍예문 밖으로 봄이 오다

금산사는 백제 무왕 때인 600년에 지어졌다. 통일신라 때 진표율사가 중창했다. 한때는 후백제의 견훤이 유폐된 절이었다. 찰나의 시간도 억겁이라 했나. 피고 지는 인연의 시간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시간이다. 보제루를 지나 금산사 경내에 들어섰다.
정면으로 보이는 대적광전보다는 미륵불을 모신 국보 62호 미륵전(彌勒殿)이 금산사의 중심이다. 사찰 건물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3층 전각이다. 내부는 일체의 건물이다. 안에 모신 11미터의 미륵불은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본다. 그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모악산이 미륵신앙의 성지로 된 것도 이 미륵전 때문이다. 금산사 입구의 비석에 새겨진 '용화종찰(龍華宗刹) 미륵성지(彌勒聖地)' 글씨가 선명하다.

금산사 미륵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일주문을 지나니 여느 절에는 없는 특이한 성문이 마주한다. 홍예문(虹霓門)은 금산사의 관문이 되었다. 석성문(石城門) 혹은 견훤문(甄萱門)인데 아치형 석문만 있다가 최근에 복원됐다. 후백제의 견훤은 한때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과정에 아들 신검에게 금산사로 유폐됐다. ‘수신제가’를 하지 못한 아픔인가. 견훤의 성문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길섶엔 봄까치꽃이 마른 수풀 사이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홍예문 밖은 벌써 봄이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9.03.21

/ 2022.03.19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