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바람이 쌓은 '바닷속 모래성' (2022.03.15)

푸레택 2022. 3. 15. 13:15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바람이 쌓은 '바닷속 모래성'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바람이 쌓은 '바닷속 모래성'

모래에 새긴 바람의 무늬… 신두리 해안사구태안반도 서북단 '순비기나무'가 넝쿨지어 사는 곳 바람길의 자유로운 흔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겨울은 북서풍을 타고 온다. 겨울 바람 맞

news.v.daum.net

바람길의 자유로운 흔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바람이 쌓은 '바닷속 모래성'

모래에 새긴 바람의 무늬… 신두리 해안사구
태안반도 서북단 '순비기나무'가 넝쿨지어 사는 곳

겨울은 북서풍을 타고 온다. 겨울 바람 맞으러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가다 바다 앞에 멈추니 태안반도의 끝. 만리포부터 북으로 한걸음씩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가 이어진다. 십리포에서 뒤로 돌아서면 개목항 너머 하얗게 부서지는 해안사구, 신두리가 펼쳐진다. 해안사구는 바닷속 고운 모래가 거센 바람에 육지로 실려나와 만들어진 곳. 국내에서는 목포 신안 먼바다 도초도 풍성 사구와 신두리 사구가 전부다. 외딴섬 도초도 사구는 높은 미끄럼틀처럼 가파르다. 신두리 사구는 서쪽 사람들의 품성을 닮아 여유있고 완만하다.   

◆ 바람의 무늬

신두리 해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고운 모래를 품은 신두리의 바다는 넓고 푸르렀다. 세찬 바닷바람에 쫓겨 건조해진 해변의 모래는 끊임없이 육지로 밀려왔다. 바람은 모래를 실어 가는 대로 무늬를 만들며 그렇게 바닷가를 수놓는다. 아름답다. 무늬를 남긴 바람은 사구를 지나 바람길을 만들며 제 모양을 그려간다. 모래의 등을 타고 넘으면서…. 태곳적부터 바람은 이렇게 모래를 실어날랐다. 온 세상이 얼어붙었던 빙하기를 지나면서 바람은 모래를 안고 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간 동안 바다와 육지 사이에 거대한 중간지대 모래언덕을 만들었다. 기껏 백년의 세월도 못사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오랜 동안 이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신두리 해안사구다.

◆ 해안사구에 들어서다

신두리 해안사구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사구로 들어섰다. 오랜 동안 파도와 바람과 시간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모래언덕은 사막과 같다. 길 섶 통보리사초, 갯그령, 갯메꽃 등이 모래에 뿌리 내리고 무성히 자란다. 쉼터에서 바다를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걷다보니 바닷가에서 짠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잘 자란다는 순비기나무가 지천이다. 덩굴식물 퍼지듯 모래 위를 덮고 자라니 마치 결박이라도 하듯 모래를 묶어 놓는다. 거센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아가지 않도록 버티게 해주니 이곳 지형엔 그만이다. 안내도에도 순비기언덕이라 표시된 걸 보니 이곳에 군락을 이룬 모양이다.

순비기언덕길 조망.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순비기언덕을 벗어나자 통보리 사초와 갯그령, 억새 등이 흐드러졌다. 억새와 갯그렁 잎사귀는 햇빛을 튕겨내며 은빛 장관을 연출한다. 풀들이 누운 방향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자유롭다. 문득 대만영화 <맹갑>(Monga)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너 그거 아니?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풀들이 쓰러졌다. 젊을 땐 나 자신이 바람인 줄 알았는데 온 몸에 상처를 입고서야 나도 그저 풀이었다는 걸 깨달았지."

◆ 해당화동산과 작은 별똥재 지나

철 지난 해당화.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해당화가 가득한 동산을 지났다. 해당화동산은 학암포에서 오는 해변길 1코스 바라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우회전을 하며 지난다. 해당화는 염분이 있는 바닷가의 모래밭이나 산기슭에서 잘 자란다. 꽃이 아름답고 특유의 향기가 있어 관상용으로도 많이 재배한다. 6~7월에 꽃이 피는데 아직도 꽃이 보인다. 별일이다. 사구는 억새골과 작은 별똥재를 지나친다. 길섶으로 억새가 가득했다. 예전엔 모래만 보였는데 어느새 모래 위는 풀들로 가득하다. 생태계가 살아나는 모양이다. 모래가 유실되며 사구가 점점 줄어들었으나 지금은 강력한 환경정책을 쓰니 사구의 제 모습이 살아난다. 걷는 길도 데크로 만들어 모래를 밟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니 모래 위로 풀들이 자라났다.

◆ 강인한 곰솔숲

모래둔덕과 서해 풍광.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곰솔생태숲으로 접어들었다. 바닷가에서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이라고도 부른다. 살아가기 척박한 땅인 모래사장에서도 살아가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염분이 있어도 곰솔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숲은 따가운 햇볕을 막아줘서 한여름 땡볕 아래서도 시원함을 유지시켜준다. 곰솔숲은 부부나 연인이 데이트하기에도 아주 알맞은 길이다. 곰솔 향 가득한 아름다운 솔숲 길은 걷는 이들은 충분한 힐링을 얻을 것이기에…. 고라니동산과 초종용 군락지를 지났다. 모래언덕이다. 언덕 전망대에 올라 사구를 바라본다. 바람이 조각한 자연의 위대한 건축물이다. 언덕 전망대를 내려와 마지막 출구로 나가기 전 거대한 모래의 벽을 만났다. 성처럼 높다란 모래가 산을 만들었다. 

◆ 보물의 길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해변길을 걸으며 처음 만났던 신두리 해안사구는 정이 들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올 때마다 변하는 사구를 보았다. 바람에 따라 모래가 움직여 조금씩 변화하는 곳이다. 모래언덕의 중요성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바다와 육지의 중간에서 풍수해를 방지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물론 각종 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한다. 또한 나처럼 걷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자유와 힐링을 주는 보물의 길이다. 

산수도(山水圖) / 신석정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여…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 가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음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 흘러 만 년만 가리

산수는 오롯이 한 폭의 그림이냐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8.12.06

/ 2022.03.1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