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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12폭 굽이굽이 '단풍 폭포수' (2022.03.15)

푸레택 2022. 3. 15. 13:10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12폭 굽이굽이 '단풍 폭포수'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12폭 굽이굽이 '단풍 폭포수'

내연산, 가을에 취하다'계절의 생' 갈무리하는 진경산수화가 눈앞 현실로 선일대에서 바라본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겸재 정선의 삼용추도가 바로 이곳이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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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일대에서 바라본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겸재 정선의 삼용추도가 바로 이곳이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12폭 굽이굽이 '단풍 폭포수'

내연산, 가을에 취하다
'계절의 생' 갈무리하는 진경산수화가 눈앞 현실로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산 삼용추(三龍湫)를 볼 겸 짙어가는 가을 경북수목원으로 향했다. 막 해가 뜨는 이른 아침, 맵찬 바람에 겹겹이 껴입은 옷이 무색하게 춥다. 몸은 맥을 못추고 자꾸 오그라드는 것만 같다.

하늘은 구름에 가렸지만 이따금 구름 사이로 투명한 하늘을 보여주곤 한다. 살짝 벌어진 구름 사이로 이른 아침 햇살이 간간이 비추면서 언뜻언뜻 단풍에 빛을 입히니 색이 더욱 짙고 명암이 선명하다. 조금 지나면 구름이 걷힐 것 같은 날씨다.

◆ 깊은 가을 속으로 접어들다

경북수목원에서 바라본 내연산.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포항에서 경북수목원에 가기 위해 동해대로로 접어들었다. 청하교차로에서 좌회전한 뒤 비학로를 타고 4.5㎞ 진행하면 서정삼거리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수목원로를 타고 가파르게 8㎞ 정도 오르다 보면 어느새 경북수목원이다. 포항을 출발할 때 동이 터오던 하늘은 수목원에 도착하자 구름 사이로 해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가을 아침 센 바람을 동반한 차가운 기온임에도 사방이 붉게 물들며 금세 추위를 씻어냈다. 너무 일러 아무 인기척이 없는 수목원에 들어섰다. 가을빛으로 물든 수목원은 온통 화려하다. 활엽수원과 침엽수원을 지나 매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낙엽이 바람에 어지러이 날린다. 가을 색으로 갈아입은 단풍이 눈에 가득하고 밟히는 낙엽은 바스락바스락 귀를 즐겁게 한다.

내연산 단풍.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매봉을 오르다 오른쪽 삼거리로 길을 잡는다. 삼거리까지 3㎞다. 가는 동안 노랗게 물든 온산이 처연하고 아름다워 걸음이 늘어진다. 삼거리 쉼터에 도착하니 벌써 길을 시작한 지 두시간이 넘었다. 삼거리 쉼터에서 시명리로 갑천계곡을 따라간다. 계곡 위로 드리워진 단풍은 계곡물에 반사돼 더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 노란 가운데 섞인 붉음은 오히려 더 짙다. 성가신 바람에도 나뭇가지에 홀로 매달린 붉은 단풍 한 잎이 아름다워 한참을 붙잡혀 있었다. 쉬엄쉬엄 구경하며 해찰하다가 시명리에 도착했다. 시명리는 화전민촌으로 석축, 집터 등 흔적이 사람이 살았던 자리임을 나타낸다. 벌써 소개된 지 40년이 넘어 마을이었다는 곳은 이미 울창한 숲으로 되어 예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시명리 화전민촌의 흔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내연산 12폭에 흐르는 가을 

시명리부터 12폭포의 모습이 시작된다. 보통은 보경사에서 길을 잡아 상생폭포를 지나면서 시작하는데 거꾸로 시명리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열두번째 폭포인 시명폭포부터 들어선다. 시명폭포를 지나 실폭포, 복호 1·2호 폭포를 지난다. 실폭포는 복호폭포로 가기 전 잘피골 골짜기에 있는데 실처럼 가느다란 폭포가 30여m 벼랑으로 흘러내려 마치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

실타래처럼 30여m 절벽을 타고 흐르는 실폭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호랑이가 엎드려 쉰다는 복호를 지났다. 갑천계곡을 따라 폭포를 즐기는 맛은 내연산 단풍과 어우러져 깊이를 더한다. 첩첩이 쌓인 만산 가득한 황금의 물결에 지루한 줄도 모르겠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깊은 산중 노란 단풍은 속절없이 바람에 날린다. 햇빛은 날리는 나뭇잎들을 더욱 짙게 반짝거리게 한다. 장관이다. 은폭포를 지나자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은 내연산 삼용추(三龍湫)의 모델인 연산폭포(燕山瀑布)·관음폭포(觀音瀑布)·잠룡폭포(潛龍瀑布)가 나타난다. 삼용추를 제대로 보기 위해 선일대에 올랐다. 깎아지른 절벽에 있는 선일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선의 삼용추도를 대입해보니 그대로다. 잠룡폭포는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연산폭포와 관음폭포는 정선의 그림과 닮았다.

◆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취하다

쌍둥이 폭포라 불리는 1호 상생폭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내연산 삼용추’(內延山 三龍湫)는 겸재 정선이 58세 때인 1733년 청하 현감으로 부임한 뒤 이곳의 절경에 감탄하여 그린 작품이다. 눈을 압도하는 거대 절벽과 쏟아지는 폭포수는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그림 속 3단 폭포 중 맨 위쪽에 있는 연산폭포에 오르니 수많은 묵객이 폭포의 위용에 감탄해 폭포 주변 바위에다 이름과 시편을 새겨놓았다. 암벽에 '갑인추정선'(甲寅秋鄭敾)을 새겨 지금도 정선의 자취를 느끼게 한다. 무풍폭포와 잠룡폭포를 지나면서 계곡이 조금은 순해진다. 물길이 세갈래라서 삼보폭포와 보현암을 끼고 있다는 보현폭포를 지나치니 마지막 상생폭포다. 두줄기 폭포가 물기둥을 이루며 쌍둥이처럼 두갈래로 쏟아지는 폭포의 모양에서 쌍폭이란 명칭이 더 많이 쓰인다고 한다. 마지막 상생폭포를 둘러보고 보경사에 도착하니 이른 새벽 출발했던 발걸음인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며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보경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경북수목원을 출발해 보경사에 이르는 16㎞를 걸었다. 붉은 단풍보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참나무과의 황갈색 단풍에 물든 깊은 가을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가 나왔다.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은 화려하게 비산하면서 제 몫을 다했다. 화려한 단풍에 빠져들었다가 겸재의 진경산수화로 보았던 가을 내연산 12폭포도 가슴에 담았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이때 내연산의 진경이 화양연화(花樣年華) 아닌가 싶다.

글=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8.11.08

/ 2022.03.1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