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의 역설]허준이 해석한 '꿈'의 세계 (daum.net)
[웰빙의 역설] 허준이 해석한 '꿈'의 세계
한동하 한의학 박사ㅣ경향신문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꾼다. 이 꿈에 대한 해석은 많은 선각자들의 숙제 중 하나였다. 히포크라테스도 꿈을 통해 몸을 치료하고자 했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와 의학자들도 꿈의 존재와 인식에 대해 수많은 고찰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이 꿈꾸는 것을 억압된 기억이 혼재된 것으로 보고 꿈을 심리상태 관찰을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그는 꿈이야말로 인간의 무의식상태를 살펴 볼 수 있다고 여겨 절대적인 가치를 뒀다.
인간이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면서도 꿈을 꾸는 것은 현실세계와의 통로를 열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자극에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든 사이에 온도나 촉각, 소리에 대한 자극이 꿈으로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몸은 잠들었어도 지각신경은 살아있는 것이다.
수면은 약 90분을 주기로 진행되는 렘수면(몸수면)과 논렘수면(뇌수면)으로 이뤄져있다. 보통 꿈을 꾸는 수면을 렘수면이라고 한다. 렘수면은 몸은 잠들어 있고 뇌는 깨어 있는 몸수면을 말한다. 반면 논렘수면은 급속안구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수면으로 뇌까지 깊은 잠에 빠진 상태를 말한다. 꿈꿀 때 가위에 눌리는 것도 귀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렘수면상태에서 뇌는 깨어 있는데 몸이 아직 잠들어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수면 중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갑자기 옆에서 잠들어 있는 배우자를 폭행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다. 단지 꿈의 내용이 현실에 반영되는 것으로 몽유병이나 야경증도 이에 해당된다.
허준도 꿈을 해석했다. 동의보감을 보면 수 페이지에 걸쳐서 몽문(夢門)이 나온다. 동의보감에서는 꿈을 "혼백(魂魄)이 꿈이 된다. 대체로 꿈은 다 정신이 사물과 작용해 생긴다. 정신이 사물과 작용하면 꿈이 된다"라고 정의했다. 꿈을 육체적 작용이 아닌 정신적 현상이라고 한 것이다.
또 태초의 건강한 진인(眞人)은 자면서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다. 정신이 온전하면 자면서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장이 실(實)하면 근심하거나 놀라는 꿈을 꾸고 심장이 허(虛)하면 혼백이 들뜨기 때문에 복잡한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한마디로 꿈을 병리적인 현상으로 간주했다.
꿈에 대한 해석도 꿈꾼 사람의 심리적·신체적 문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봤다. 예컨대 음기(陰氣)가 성하면 큰물을 건너가는 꿈을 꾸고 음양(陰陽)의 사기(邪氣)가 모두 성하면 사람을 죽이는 꿈을 꾼다. 연못가에 살면서 물에 빠지는 꿈을 꾸면 사기가 콩팥에 있는 것이고 싸움하고 재판하며 자살하는 꿈을 꾸는 것은 사기가 쓸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꿈을 오장육부의 문제로 해석해 한마디로 '오장이 허하거나 실하면 꿈을 꾼다(五藏虛實爲夢)'고 못 박고 있다.
꿈은 분명 실체가 있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꿈을 통해 미래를 예견한다고 믿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 알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비가 돼 날아다니다가 꿈에서 깬 후 도대체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지금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던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내가 실제로는 나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은 '꿈속에서 날아다니는 미래의 내가 아닌 현실 속의 나'를 반영한 것이다. '건강하면 꿈을 꾸지 않는다'는 허준의 해석을 곰곰이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한동하 한의학 박사ㅣ경향신문 2013.05.22
/ 2022.03.06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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