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나무 한 그루' 나희덕 (2022.01.01)

푸레택 2022. 1. 1. 16:10

 나무 한 그루 / 나희덕

학교 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뿌리를 거세당한 채 기울어간다
세상에 이럴 수가,
교장선생님은 얼굴까지 붉히며 열을 올린다
잔인하게도 학생이 이런 일을 할 수가,
학교 뜰의 나무 줄기에
누군가 칼로 긁어 상처를 냈다는 것이다
그런 학생이 사회에 나가면
흉악범이나 될 게 분명하다며
누군지 밝혀내어
마땅한 처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싹수가 노란 것은 미리미리 잘라내야
선량한 나무들이 벌레먹지 않는다고 한다
쓸쓸한 마음으로 나와
시들어가는 나무 한 그루 쓰다듬으니
바람결에 우수수 소리내어 운다
퇴색해버린 이파리,
난자당한 줄기보다 더 아픈 것은
묶여진 이 뿌리, 때문이에요
울고 또 울어도 듣는 이 없어
나무 한 그루 조금씩 조금씩 기울어간다

[감상]

나희덕 시인의 여성적 본능이라 해도 좋고 모성적 사랑이라 해도 좋을 마음의 따뜻함과 다짐은 마음에도 넉넉히 울려오는데, 그만한 비유나 충정은 나름대로 
겪은 인생살이의 어떤 국면을 참을성있게 내면화하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희덕의 작품중에서 가슴에 오는 작품은 그러한 모성적 본능이나 연민이 솟아나는 순간이 낳은 것이다. / 정현종 (시인)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좀 모자란듯하면서도 선하기 짝이 없고 책임감이 투철한 만수가 진학한 공업전문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날 교실 창문가에 놓여있던 고무나무 화분의 잎을 누군가가 면도칼로 날카롭게 그어놓았습니다. 고무진액이 진짜로 나오는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겠지요. 고무나무 잎에 면도칼 자국이 난 것을 본 담임선생, 군복을 입고 중위 계급장까지 달고 교련을 가르치던 담임선생님께서는 범인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고 학생들을 책상으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게합니다. 교실문은 잠궈버리고, 고무나무에 칼집을 낸 사람이 자백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집에 갈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 시의 교장선생님처럼 예연자겸 점장이가 되어 일장 훈시를 이어갑니다. “그런 학생이 사회에 나가면 흉악범이 될 게 분명하다며 누군지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싹수가 노란 것들은 미리미리 잘라내야 선량한 나무들이 벌레먹지 않는다고” 겁을 주는 한편으론 회유를 합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있으니 그런 일은 한 사람이 살짝 손만 들면 본인과 그 학생만 알고 좋게 좋게 잘 해결하겠으니 자백을 하라고~ 몇 시간이 흘러 날이 저물어 가고 다른 친구들이 힘들어 하자, 만수는 본인이 그랬다고 거짓 자백을 합니다. 

그러나 좋게 좋게 말로 해결하겠다던 담임, 교련 선생의 무차별 구타가 시작됩니다.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이 나라가 요 모양 요꼴이라는 말도 안되는 혐의까지 뒤집어 씌우면서.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학교에서만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사람을, 아니 커가는 아이들을, 변해도 몇 번을 변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실수인데도 불구하고 붉은 낙인을 찍어버리고, 싹수가 노랗다고 뽑아내 버리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보내온 글'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