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나무와 옻나무 / 손남주
밭둑 위에 감나무들이 서있고
그 아래, 문지기처럼 두어 그루 옻나무가
어둑하게 버티고 있는 산골마을,
천둥소리 같은 포성이 들려오는 먼 하늘로
감나무들은 멍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치열한 낙동강 최후의 전선에서
어린 학도병들이 수없이 쓰러져갈 때도
이곳 산골마을 감나무의 감은 발갛게 익어갔다
풋감의 유혹에 소년은 날마다 감나무 등줄기를 오르내리고
옻나무는 퍼렇게 약 오른 손으로 그의 종아리를 휘어잡았다
소문대로 올 것이 왔다
2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 의용군 2명 차출- 대상자 4명은
이장 댁 마당에서 제비를 뽑았다
도끼눈으로 째려보던 인민위원회 서기는
나를 제비뽑기에서 제외시켰다
“옻이 올라 뚱뚱 부은 장딴지로
엉금엉금 기는 놈은 성전 참가자격이 없다”고 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내 운명은
감나무와 옻나무 사이에서 묵계처럼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남은 세 사람 중
읍내 중학교를 다니던 친구는 x를 짚었고
o를 짚은 건, 이상하게도 둘 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불운한 친구였다
그들은 그날 밤 일선으로 끌려갔다
전세 불리하던 인민군들이 후퇴하기 시작할 무렵
Z기 기총소사로 대오가 흐트러지는 틈을 타서
한 친구는 용케도 빠져 돌아왔지만
기약 없는 60여 년이 흘러간 지금까지, 한 친구는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영영 무소식이다
아찔하게 피해간 내 요행 뒤에는
언제나 나대신 그가 갔다는 죄책감이
평생을 가슴 한켠에 숨었다가
그 친구의 수굿한 얼굴과 함께 문득문득 살아나곤 한다
지난 여름 모처럼 찾아가 둘러본 고향,
감나무와 옻나무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누군가의 별장이 들어서서
기나긴 세월을 깔고 앉아 뭉개고 있었다
- 동인지 《餘白集》26호 (여백문학회, 2016)
[감상]
이 시는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예천에서 실제 겪은 일을 소재로 한 자전적 산문시다. 먼 과거의 운명적 사건을 빌어 현재화한 작품으로,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누구나 겪고 또 겪을 수 있는,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숙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운다. ‘운명의 갈림길’이라고 흔히 말한다. ‘운명의 호작질’이라고도 했다. 6.25동란은 숱한 민초들에게 생명과 영혼이 파괴되는 끔찍하고 기구한 운명을 가져다준 사건이었다. 우리 민족 모두를 무질서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삶의 뿌리가 뽑히고 가정이 풍비박산 나게 했다.
인민의용군은 정규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군인으로서 1950년 7월 1일 북한최고인민회의가 선포한 ‘전시동원령’에 근거해 모집되었다. 북한은 처음 만18세부터 36세까지의 주민을 동원 대상으로 하는 동원령을 선포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각급 당 조직에서는 의용군 모집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하달했다. 전쟁 초기의 활발한 모집실적과는 달리 7월 말부터는 모집실적이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 대상 연령도 16세까지 낮아졌다. 인력의 고갈과 전쟁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은 의용군 모집실적의 저하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인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강제 할당제로 의용군 모집방식이 바뀌었다. 무리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당 하부조직의 간부들이 각지에 파견되어 가두모집을 추진하였다. 마을 단위에서는 마을의 논의구조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기도 했지만 궁여지책으로 제비뽑기에 의한 결정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징집된 인원은 재교육을 위해 북한으로 보내지는 경우도 일부 있었지만, 대개는 최전선의 전투병이나 노무자로 활용되었다. 경북지역에서 끌려간 이들은 대부분 최전방인 낙동강 전선에 배치되었다.
1950년 9월 초에는 의용군을 중심으로 여단이 편성되기도 했다. 경북에서는 안동여단, 충남에서는 대전여단, 전남에서는 광주여단 등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총지휘하는 의용군 총사령관에는 노동당 부위원장인 이기석이 임명되었다. 전쟁 기간 중 의용군으로 참가한 인원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적게는 10만에서 많게는 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중에는 뽑힌 뒤에도 도망을 가기도 하고, 집안을 위해 동생이 대신 총대를 메는 경우도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처럼 형제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도 연출되었다.
이들은 전장에서 개죽음당하거나 일부는 후퇴하던 중 도망쳐 오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며 인민군의 설득과 회유로 북으로 함께 후퇴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신분 세탁 차원에서 혹은 애국심으로 다시 국군에 자원입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의용군으로 자원한 것도 아니지만 패주하다가 퇴로가 차단되어 어쩔 수 없이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올라간 사람도 많았다. 지리산 빨치산의 태반은 그러했다. 지리산으로 합류하지 못한 일부는 장성에서 산을 타고 고창 서부 지역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들의 이 상처들은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6.25를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다. 생명의 존엄, 순결의 가치, 의리와 신의, 이웃사촌의 두터운 인정을 모두 잃어버렸다. ‘아찔하게 피해간 내 요행 뒤에는’ ‘언제나 나대신 그가 갔다는 죄책감이 평생을 가슴 한켠에 숨었다가’ ‘문득문득 살아나곤 한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그 오싹한 공포와 슬픔도 기억 속에서 바래지고 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섰던 ‘감나무와 옻나무’도 온데간데없다. 다만 ‘그 자리엔 누군가의 별장이 들어서서’ 자꾸만 상처에 덫을 내고 있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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