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최정례
사격 선수가 첫 금메달을 땄다 또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한 달은 온 나라가 이렇게 지나갈 것이다
사격 선수는 인터뷰하면서 자기 아이에게는 절대
사격을 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모기가 내 다리를 물었다
종아리에 두 방, 정강이에 한 방, 산책로에서 물린 것인지
싱크대에 섰을 때 물린 것인지 소파에 누웠다가 몹시
가려워졌는데
이미 늦었다
생명은 자기 생명을 다하여 자신을 유지하려 한다
삶에 낭비란 없는 것 같다 가려운 인생
가려우니 긁을 수밖에
아버지에게 가 봐야 한다
사회복지사의 말이 등급 외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주간 보호를 맡길 수는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목욕하다가도 비누칠한 것을 잊고 욕조에서
잠이 드는데
사회복지사와 인터뷰할 때는
자기 이름이며 생년월일까지 정확히 대답해 버렸다
좀 더 바보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1등급을 받고
복지기관에 종일 맡겨질 수가 있다고 한다
금발의 여자애가 사격 선수 앞에 와서
사인을 받으며 금메달을 살짝 어루만졌다
참을 수 없이 가렵다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은 어디에 둔 것일까
어젯밤 내내 꿈을 꾸었는데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지나친 것과 지금 지나치고 있는 것
두려운 것은 딴 세상과 이 세상 사이에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 2015)
4년 전 첫 금메달의 주인공 진종오 선수는 기대와 달리 이번엔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아직 주종목인 50m가 남았다. 사격은 상대적으로 체력 부담이 적어 올림픽에서 최고령 선수가 가장 많이 나오는 종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선수가 스웨덴의 사격영웅 오스카 스완이다. 그는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 사격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 만 64세였다. 스완은 8년 뒤인 1920년 앤트워프올림픽에 아들과 함께 출전했다. 72세의 나이에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며 역대 최고령 메달리스트 기록을 세웠다. 50m 권총 올림픽 첫 3연패에 도전하는 진 선수는 만 37세다. 사격선수로서는 여전히 창창한 나이다.
하지만 그러자면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하고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사격선수는 반복해서 한쪽 어깨만을 쓰다 보니 대개 몸이 틀어져 있다. 여기에 경기 때마다 겪는 심리적 부담도 어마어마하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절대 2세에게는 사격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 이번에 따 놓은 당상처럼 첫 금메달을 당연시했던 국내언론이 그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도 짐작이 간다. 그 부담 때문에 메달을 따든 따지 못하든 다음 경기를 위해 언론 인터뷰는 하지 않겠노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사격선수에겐 무엇보다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한데 인터뷰에 들뜨다 보면 다음 경기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올림픽 경기의 이상을 인간의 완성과 세계의 평화에 두었다. 그의 한결같은 염원은 이 대회가 영원한 성공을 거두고 아름다운 스포츠정신이 세계 곳곳에 빠짐없이 보급되어 온 세계인들이 진실로 평화를 사랑하며 인간에 대한 존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올림픽의 로고인 오륜은 민족과 언어와 피부색을 넘어 올림픽을 통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을 나타낸 것이다. 올림픽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다. 올림픽을 통해 서로 경쟁하지만 그것은 싸움이 아니다. 지구촌 한 가족으로서의 축제이며, 그것은 이상적인 다문화사회의 구현정신이 함께 농축된 것이다.
자신의 조국, 자기나라 선수들의 불타는 투혼을 응원하고 승리를 기원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겠으나, 반드시 제 나라 선수들만의 승리를 목적으로 해서는 재미가 적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록들, 새롭게 갱신되는 아름다움의 정점들에 국적 가리지 않고 경탄해 마지않으며 박수를 보낼 일이다. 열정과 패기, 벅찬 감동과 환희의 순간들을 온몸으로 함께 느껴보는 것이다. 올림픽의 포용과 평화의 정신이 대륙과 대륙을 넘어서 지구촌을 넘실거리며 뒤덮는 그날을 염원하며 성숙한 응원을 보내야 하리라. ‘적어도 한 달은 온 나라가 이렇게 지나갈’지라도 과도하게 메달과 순위에 집착하면서 선수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
기를 쓰고 응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행여 그들의 실패와 패배가 내 손톱 밑에 가시로 와 박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의 인생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간극에서 내 앞의 현실을 깨닫는 것이다. 등급신청 한번 못해보고 노인에게 주는 국가로부터의 혜택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 채 어머니를 보내드린 게 무슨 죄지은 것인양 손해본 것처럼 아쉬워했던 지랄 맞은 느낌은 무엇이었던가. 양궁 금메달 슈팅장면을 보면서 당장 모기가 물어뜯어 가려운 곳에 바를 물파스를 찾는 내 모습은 또 무언가. 대국적으로 가슴 아파할 일들이 우리 앞에 얼마나 널부러져 있나. 내 앞의 현안과 현안이 아닌 것을 가려내는 일들이 얼마나 잔망스러운 짓인가. 정작 부끄럽고 ‘두려운 것은 딴 세상과 이 세상 사이에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을 알게 될 때이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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