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고시조] (102) 정우정 돌아드니 - 낭원군(朗原君) (2021.12.03)

푸레택 2021. 12. 3. 11:37

■ 정우정 돌아드니 - 낭원군(朗原君)    

淨友亭 돌아드니 最樂堂 閑暇한데
琴書生涯로 樂事ㅣ 無窮하다마는
이 밖에 淸風明月이야 어내 끝이 있으랴

[뜻풀이] 

*정우정(淨友亭): 낭원군(朗原君)이 독서하던 정자(亭子)인 듯하다.
*돌아 드니: 돌아서 들어가니.
*최락당(最樂堂): 낭원군(朗原君)이 호(號)를 삼은 그의 서제(書齊).
*한가(閑暇)한데: 겨를이 생겨 여유가 있는데.
*금서생애(琴書生涯):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는 생활. 흔히 은사(隱士)들의 풍류생활을 가리킨다.
*낙사(樂事)ㅣ: 즐거운 일이, 유쾌한 일이. ‘ㅣ’는 흔히 한문글에 쓰이는 서술형 어미이다.
*무궁(無窮)하다마는: 공간(空間)이나 시간상(時間上)에 한(限)이 없다마는.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어내: 어찌. ‘어나’는 ‘어찌’의 옛말인데, ‘어나’에 접미사 ‘ㅣ’가 붙어서 굳어 버린 말이다.

[풀이]


정우정을 돌아 들어가면 최락당이 있으니 매우 한적한 곳이다. 이곳에서 거문고와 글 읽기로 한가롭게 세월을 보내니 즐거운 일이 한이 없다마는, 그 밖에도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이야말로 어찌 한도가 있을 것이랴?

[지은이]

낭원군(朗原君: 1580~1640): 본명(本名)은 이간(李侃), 자는 화숙(和叔), 호는 최락당(最樂堂). 선조의 손자인 인흥군(仁興君)의 아들이며, 효종의 당숙이다. 왕실작가 중 가장 많은 시조작품을 남겨 총 30수의 시조가 전한다. <청구영언> 진본(珍本)에만 20수가 전하고 나머지 10수는 여러 시조집에 산재하며, 작품에 따라서는 10여책에 널리 유포되고 있다. 그의 작품이 효종의 작으로 오기된 것도 있다. 내용은 작가가 산수의 자연미를 혼자 즐긴다고 자부하는 노래로, 금서생활(琴書生活)에 낙사무궁(樂事無窮)함을 자랑하며 취흥이 도도하면 유령(劉伶)·이백(李白) 이래로 혼자만이 흥취를 안다고 자랑하는 노래들로 자신의 풍류를 담고 있다. 한편 교훈적 내용의 작품도 많아 오륜과 향당의 예법에 관한 노래와 자신의 수분(守分)과 자행자처(自行自處)의 생활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표현기법에서 정철(鄭澈)이나 황진이(黃眞伊)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형 낭선군(朗善君)과 함께 전서와 예서를 잘써 송광사사원사적비(松廣寺嗣院事蹟碑)와 백련사사적비(白蓮寺事蹟碑) 등을 남겼다.

[참고]

세속적 삶을 ‘유(有)의 추구’ 로 본다면, 자연적인 삶은 반대로 ‘무(無)의 추구’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자연적인 삶이란 말없고, 모양(態)없고, 값 없고, 임자없고, 병없고, 분별없는 삶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부귀공명의 세계는 ‘있는 것’이고  ‘자연’은 ‘없는것’의 상징이다. 여기에 우리 시조문학의 한 특색이 있는 것이다. 곧 자연을 예찬한 시조가 겉으로보기엔 긍정의 문학 같으면서도, 뒤집어보면 부정의 문학이 된다는 이유를 이 경우에서 쉽사리 알수 있는 것이다. 즉 현세부정(現世否定)의 한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만일 우리 선조들이 훨씬 더깊이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정세(精細)하게 관찰하고, 자연계의 개개에 대하여 생명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뚜렸한 개성을 부여하였더라면, 자연에 대하여 훨씬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자연에게 조화 시켰을 것이요, 순직(純直)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하였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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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소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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