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고시조] (79) 역발산 기개세는 - 임경업(林慶業) (2021.11.26)

푸레택 2021. 11. 26. 08:42

■ 역발산 기개세는 - 임경업(林慶業)

力拔山 氣蓋世는 楚覇王의 버금이요
秋霜節 烈日忠은 伍子胥의 우이로다
千古에 凜凜한 大丈夫는 漢壽亭候-ㄴ가 하노라

[뜻풀이]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가 지은 시.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는 뜻.
*초패왕(楚覇王): 중국 전국시대의 영웅인 항우(項羽)를 이름.
*버금: 다음되는 차례. 제2위.
*추상절(秋霜節): 가을 서리처럼 엄정한 절개.
*열일충(烈日忠): 뙤약볕처럼 강렬한 충성.
*오자서(伍子胥): 중국 춘추시대의 초나라 사람으로서, 부형의 원수를 갚았다.
*천고(千古): 만고에 다음 가는 먼 옛적, 또는 오랜 세월. 영원.
*늠름(凜凜)한: 씩씩한, 위세가 당당한.
*대장부(大丈夫): 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한수정후(漢壽亭候): 관운장(關雲長)의 별칭.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하매, 유비·장비와 갈리게 된 관우는 유황숙의 이부인(二婦人)을 살리고자, 부득이 조조에게 항복한 다음, 그가 조조에게서 받은 작위(爵位)를 말한다.

[풀이]

힘이 산을 뽑아내고 기개가 세상을 덮치는 데는 서초패왕 항우의 다음이요, 가을 서릿발 같은 절개와 불타는 태양 같은 충성심에 있어서는 오자서보다 낫구나. 수천년에 걸쳐서 늠름한 대장부라 하여 숭배할 만한 이는 한수정후 관운장이 으뜸인 줄로 아노라.

[지은이]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자(字)는 영백(英白)이다. 어려서 부터 무술(武術)과 병법(兵法)을 즐기더니, 광해군 10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지략과 용맹으로 이름을 높이며, 이괄(李适)의 난에는 크게 공을 세웠다. 명(明)나라를 섬기면서 새로 일어난 청(淸)을 은근히 배척하더니,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즈음해서는 의주부윤(義州府尹)의 요직을 맡아 백마산성(白馬山城)을 굳게 지켰다. 청나라 군에 의해서 인조가 피난 했던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포위되자, 그는 월경(越境)하여 청나라의 도읍지 심양(瀋陽)을 치고자 했으나, 이를 시기하는자가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청나라를 치려했으나, 이미 대세가 기울어져 북경으로 끌려가 고생 끝에 되돌아 왔으나, 김자점(金自點)의 모함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참고1]

초패왕의 시(詩):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는 <사기> 항우본기(項羽本記)에 나온다. 항우가 해하(垓下)에 군벽(軍壁)을 치고 들어가니 한나라 군사들이 이를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밤이 되어 한나라 군사들이 사방에서 초가(楚歌: 楚人의 노래:楚는 항우의 본국)를 부르니 항우가 크게 놀라며 ‘한나라 군사들이 이미 초(楚)를 다 얻었는가! 어찌 저렇듯 초인(楚人) 많은가?’ 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기울였다. 장막중에 미인이 있었으니 이름은 <우>요, 항상 항우를 따라 뫼시는 바였다. 또 준마가 있었으니 이름은 <추>요, 항우가 항상 이를 타는 바였다. 이에 이르러 그는 비분강개한 나머지 스스로 시를 지으니,

역발산혜(力拔山兮) 기개세(氣蓋世)
힘은 산을 빼고, 기개는 세상을 덮어 누르도다.
시불이혜(時不利兮) 추불서(騅不逝)
시운이 불리하니, 오추마도 아니 나아가누나.
추불서혜(騅不逝兮) 가내하(可奈何)
오추마가 아니 나감을, 어찌할 것이랴?
우혜우혜(虞兮虞兮) 내약하(奈若何)
우여 우여! 그대와 헤어지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이랴?

한나라 군중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 왔음은 전부터 한나라 군사에 복무하던 구강인들이 고향 땅이 가
까와졌음으로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고 전한다.

[참고2]

오자서(伍子胥): 춘추시대의 초나라 사람. 본 이름은 원(員)이요, 자서(子胥)는 그의 자(字)이다. 그의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평왕에게 죽음을 당했으므로, 그는 이웃 나라인 오나라로 달아나더니 오왕을 도와 초나라를 치고서 평왕의 무덤을 파헤지고 평왕의 시체를 300번 때렸다고 한다.

[참고3]

한수정후(漢壽亭候): 중국 촉한(蜀漢)의 명장으로서, 자(子)는 수장(壽長)이라 하더니, 나중에 운장(雲長)이라 고쳤으며, 하동 지방의 해양(解良) 사람이다. 장비와 더불어 유비를 맏형으로 삼아, 도원(桃園)에서 형제의 의를 맺고, 그 후로 유비를 도와 전공과 치적이 현저 하였다. 신장이 9척에 구렛나룻이 두 자를 넘어 배를 덮었고, 봉(鳳)의 눈에 누에눈섶의 당당한 장부의 모습인데다, 말을 달려 청룡도를 휘두르면 감히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후한말 헌제 대에 조조가 승상으로서 정사를 마음대로 하매 결의삼형제가 의병을 일으켜 조조를 치려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유비는 서주에서 패주하고 관우는 성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부득이 이부인(二夫人)의 생명을 보전하고자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뜻하지 않은 명장을 얻게된 조조는 백방으로 관우를 후대하여, 관우가 의병장 언량의 수급(首級)을 바치매 헌제에게 강청(强請)하여 그에게 ‘한수정후(漢壽亭候)’라는 작위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유비의 거처를 알게된 관우는, 이부인을 모시고 조조의 군진을 탈출 함에 앞서 그 명예롭지 못한 한수정후(漢壽亭候)의 관인(官印)을 당상에 걸어 놓고 떠났던 것이었다. 후일 그는 오나라의 손권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나 세인(世人)의 추앙을 받게 되었으니, 오늘날 각지에 산재한 관자묘는 바로 그의 넋을 모시는 사당이다.

[출처] 원문보기

https://blog.daum.net/thddudgh7

 

일소일빈

한자는 우리글이다

blo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