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네 사촌이냐 / 이청준
쌀쌀한 꽃샘바람이 마을과 들녘에 흙먼지를 날리곤 하던 이해 이른봄 어느날 늦은 오후. 30대 초반의 한 초췌한 안색의 사내가 이곳 남녘 해안가 덕산마을을 찾아들어와 때마침 동네 정자나무터에 나와 앉아 일손을 쉬고 있던 비슷한 연배의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혹시 이 마을에 연세가 쉰예닐곱쯤 되신 안서윤씨라는 어른이 살고 계십니까?”
그런데 그 물음을 받은 동네 젊은이가 바로 안서윤씨의 아들이었으므로 그는 대답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젊은이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 그런 사실을 확인해주었고, 낯선 길손이 다시 그 안서윤씨의 집을 물었을 때도 그는 거의 무심스런 손짓으로 방앗간길 아래쪽에 가죽나무 한 그루가 높이 솟아오른 자신의 집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인이 누구이며 무슨 일로 그의 아버지 서윤씨를 찾는지 묻지 않았다. 요즘 시절로 해서는 그의 행색이 너무 허름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데다 눈빛에선 삭막한 피곤기까지 느껴져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든 때문이었다. 그리고 뱀이 제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말격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위인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일로 그의 부친 안서윤씨를 찾아온 것인지를 알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내를 얼른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 안서윤씨의 아들만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내가 안서윤씨를 찾아 그 방앗간길 아랫골목 가죽나뭇집 사립을 들어서며 때마침 안방 앞마루께로 나와 있던 초로의 주인에게 공손히 첫인사를 건넸을 때 안서윤씨 역시도 처음엔 전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죄송합니다만 함자가 안서윤 어른 되십니까?”
“예, 그렇소만, 댁은 뉘시길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서윤씨는 젊은이가 사람이나 집을 잘못 찾아든 위인이 아닌가 싶어하는 얼굴이었다. 서윤씨로선 사실로 그의 생애 가운데에서 젊은이의 얼굴을 본 일이 없었거니와 그의 존재마저도 상상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젊은이는 분명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의 아들도 아닌 그 자신의 나이때가 낀 이름을. 게다가 위인의 다음 물음은 서윤씨를 더 한층 어리둥절 당황스럽게 하였다. 그의 물음을 무심히 외면할 수 없게 했다.
“거듭 죄송스럽습니다만 어르신께서 서자 윤자 어른이 분명하시다면 제가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젊은이가 다시 공손히 양해를 구하고 나서 서윤씨에게 물었다.
“혹시 이 댁에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습니까?”
앞도 뒤도 없이 불쑥 물어오는 소리에 서윤씨는 이번에도 말을 잘 듣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니. 우리가 누구를……?”
고개까지 가로저으며 젊은이에게 거꾸로 되묻는 표정이었다.
“찾아올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시다면…… 그럼 혹시 오래전에 이 댁을 떠나간 사람은 없습니까? 집을 떠나간 뒤로 영영 종적이 사라져버린 사람이나……”
젊은이가 얼굴에 잠시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한번 머뭇머뭇 자신없는 소리로 말했다. 서윤씨의 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보려는 간절한 소망의 빛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젊은이의 추량이 제대로 적중해들고 있었다.
서윤씨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 속에 고개를 내저으려다 말고 불현듯 소스라쳐 놀랐다. 그리고 새삼 세심한 눈길로 젊은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살폈다.
“아니, 이럴 수가……!”
이윽고 그의 입에선 반가움에선지 놀라움에선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신음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사실 서윤씨의 그런 놀라움은 무리도 아니었다. 그 젊은이의 잇단 물음에 서윤씨는 비로소 오랜 옛날 집을 나가 종적이 사라져버린 20대 그의 젊은 형의 일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의 그 지치고 수척한 얼굴에서, 그러면서도 어딘지 불안스런 긴장기가 떠도는 팽팽한 눈매와 오똑한 콧날들에서, 이제는 이미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오랜 세월을 잊고 지내온, 그래서 젊은이의 처음 물음엔 기다리거나 찾는 사람커녕 그런 동기간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았을 만큼 아득히 잊혀져온 그의 형의 용모를 어슴푸레 읽어낸 것이었다. 서윤씨로선 젊은이가 처음 기다리거나 찾는 사람을 물었을 때보다 더 한층 당황하고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댁에가……?”
젊은이에게 물어놓고도 그는 한동안 대답조차 들으려 하지 않은 채 혼자 허둥대기만 했다. 그리고 뒤늦게 뭔가 심상찮은 느낌에 그를 뒤따라 들어온 아들 길동의 얼굴에서도 재차 비슷한 물색이 끼였음을 깨닫고서야 황황히 그를 마루로 이끌어 앉혔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선 여기서 그간의 곡절부터. 이 일이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인지를……”
앞마루에 엉거주춤 마주 걸터앉은 서윤씨의 기억 속에 젊은이는 갈수록 20대 옛 젊은 형의 모습과 비극적 인생행로를 되살려나갔다.
1945년 8쇓15해방과 함께 한창 바깥세상 일에다 열정을 쏟고 지내던 갓 20대의 의윤 형, 당시로선 드물게 상업학교까지 졸업한 인텔리 청년 의윤 형이 이듬해 봄부터는 갑자기 문밖출입을 끊은 채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바깥나들이를 끊어버린 것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차츰 식구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드물었고, 그러다간 아예 외지고 어두운 자기 뒷골방에 틀어박혀 유령처럼 혼자서만 지냈다. 끼니도 뒷골방에서 혼자 받아 먹었고, 변소길도 바깥 인적이 뜸하거나 밤늦은 어둠속으로만 나다녔다. 방에서는 대개 책장을 뒤적거리거나 무슨 깊은 생각에 싸여 지내는 듯해 보였지만, 그가 정말로 긴 시간 혼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는 아무래도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그가 집안 어느 한 구석에 들어앉아 지내고 있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렇게 그는 차츰 집안에 없는 사람, 잊혀진 사람처럼 되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나이 터울이 많이 진 열한살짜리 어린 아우 서윤에게나 아직 곡절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월이 훨씬 더 흐르고 난 뒤에야 서윤이 그 속내를 다 알게 된 일이지만, 집안 어른들에겐 처음부터 사정이 분명해져 있던 일이었다. 의윤 형이 어떤 몹쓸 역병을 앓고 있다는 게 그 무렵 서윤을 단속하기 위한 어머니의 조심스런 귀띔이었다. 그런데 그 역병이 이웃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절대로 나을 수가 없으니 어려운 형을 위해 누구에게도 그런 사실을 말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이 거듭거듭 뒤따랐다. 그런 사실은 알지도 못한 것으로 하라는 아버지의 엄한 단속도 덧붙여졌다. 형을 가까이 하려다간 서윤에게도 역병이 옮을지 모르니 뒷골방 쪽에는 아예 얼씬을 말라는 당부와 함께, 형의 일은 더 알려고 하지도 말고 그저 모른 척 잊고 지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그 어른들의 단속뿐만 아니라 의윤 형의 어려운 처지를 위해서도 서윤은 이후부터 물론 형의 일을 모른 척하고 지냈다. 아버지가 이따금 은밀히 먼 고을 나들이를 다녀오면 집안에 알 수 없는 탕약 냄새가 풍기고, 끼니때 사이사이로 그 탕약사발이 뒷골방을 드나드는 기미로 보아 의윤 형이 정말로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 ‘고약한 역병’을 앓고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시 형의 병이 낫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윤은 점점 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의 사단은 형의 신병이었지만, 그 신병의 비밀을 지키는 것이 또한 큰 문제였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어른들은 갈수록 말들을 잃어갔고, 간간이 숨어드는 비밀스런 한숨기 속에 집안엔 언제나 음습한 근심기가 가득했다. 집안 식구끼리도 그렇듯 말이 없다 보니 서윤은 이웃이나 동네 사람을 만나기엔 더욱 겁이 나고 불안했다. 누구를 만나도 먼저 집안의 비밀을 떠올리고 전전긍긍 제풀에 눈치를 살피게 되곤 했다. 그런 데다 그 어른들의 은밀스런 약수발과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형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가는 기미가 안 보였다. 그리고 일은 더욱 불안하게 더쳐갔다.
해방 이전 일제시절, 의윤씨와 같은 신양(身恙)을 앓는 사람들은 대개 남쪽 해안의 한 외딴 섬으로 가서 다른 동환들과 함께 집단수용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곳의 생활이나 요양시설이 너무 열악한 데다 강제노역과 학대까지 심하여, 해방 이후의 혼란기 땐 많은 환자들이 섬을 빠져나와 이 고을 저 고을로 떠도는 집단유랑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그해 늦가을 무렵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자 그 유랑집단의 한 무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 따뜻한 남녘 덕산마을 인근 산골짜기에 천막을 치고 들어앉았다.
마을엔 자연히 인심이 흉흉해지고 무거운 긴장기가 감돌았다. 그 병증의 외양이 워낙 험상궂은 데다 일생 치유불능의 사나운 역질로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위인들이 함부로 마을로 들어온 일은 없었지만, 신병의 치료를 위해선 더러 어린아이를 해치기도 한다는 고약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동류의 환자를 집안에 숨기고 지내는 서윤네의 불안은 더 이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 가슴을 저며드는 불안기나 두려움은 재 너머 산골짜기의 천막무리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동네 안에 누군가 같은 역병 환자를 숨기고 지내는 집이 있는 게 틀림없다.”
“위인들이 어느새 그런 낌새를 알고 그를 데리러 왔을 거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를 죽여 수군댔다. 그 병의 환자들은 어느 고을 어느 집에 같은 병자가 생기면 귀신같이 그것을 알아내어 그를 기어코 자기들 무리 속으로 데려가고 만다는 것이었다. 새 병자를 위해서든 자기 무리의 편익과 세력을 위해서든 그것이 그 병을 앓는 무리의 은밀하고도 엄혹한 불문율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집이 누구넨지 저들에게 숨겨둔 환자를 내주지 않으면 위인들은 절대로 이 골을 떠나가지 않을 게다. 병을 숨긴 집에선 마을을 위해 알아서 환자를 내놓아야 한다.”
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서윤네 식구들 앞에선 함부로 그런 소리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걸로 보아 이미 다 그 비밀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실은 그같은 등뒷수군거림 역시도 서윤네와 그 식구들을 지목한 은근한 오금박이 소리들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모든 일은 결국 그 수군거림 그대로 되어갔다.
어느날 깊은 자정쯤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은밀히 서윤네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버지를 불러내어 무슨 얘긴가를 하고 돌아갔다. 어린 서윤은 물론 사내의 얼굴을 본 일도 없었고, 그가 누구이며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갔는지를 들은 일도 없었다. 하지만 사내가 그렇게 밤중으로 집을 다녀간 뒤부터 더욱 말이 없어진 아버지의 깊은 침묵과 신음기 섞인 한숨소리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돼요. 죽어도 안돼요…… 내 자식이 어째서 저런 인간들한테……! 아이한테는 그런 소리 입도 떼지 말아요…… 울음소리를 깨물어 삼키는 어머니의 조심스런 탄식기 속에서도 서윤은 그 사내가 누구이며 그 밤중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갔는지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피를 말리는 아버지의 침묵과 어머니의 절급한 갈망도 다 부질없어 보였다. 며칠 뒤 같은 밤중 무리의 몇사람이 다시 그의 집을 찾아왔다. 사람 수가 하나에서 서너 명으로까지 늘어난 것이 첫번 때보다도 더 불안하고 겁이 났다. 이번에도 위인들은 아버지를 잠시 사립께로 불러내어 조용히 만나고 돌아갔지만, 이후부터 아버지는 아예 한숨소리조차 잊은 채 멍청히 넋을 놓고 앉아 있기만 하였다. 어찌 보면 곰곰 혼자 생각 속에 무엇인가를 망연히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아버지와 반대로 어머니 쪽은 오히려 그 한숨소리와 안타까운 탄식기에 전 같은 조심성이 훨씬 덜해갔을 뿐이었다.
“안돼요. 나는 죽어도 내 집에서 내 자식과 함께 죽고, 살아도 내 집에서 함께 살 것이니 그리 아시고 행여 딴생각 먹지 마시오. 저 아이가 집을 나가면 그날이 내 초상날이 될 것이니!”
아버지에 대한 푸념이나 다짐 소리도 훨씬 더 노골적이었고, 때로는 치솟아오르는 오열을 굳이 더 참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말을 잃은 아버지는 물론 다짐이 그리 시퍼렇던 어머니도 그런 식으로 차츰 속마음을 가다듬어온 것일까. 무리가 다시 세번째로 집을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도 더 아무 대항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날 밤 깊은 어둠을 타고 찾아온 천막무리는 그 수가 다시 열명쯤으로 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위인들은 문밖 기척으로 아버지를 불러 놓고 아무 다른 말이 없이 그저 이쪽의 처분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첫번 한 사람 때나 뒷 서너 사람 때보다도 더욱더 괴괴하고 가지런한 침묵 속에. 어찌 된 셈인지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이웃이나 온 마을이 그럴수록 더 무겁게 가라앉아들어가는 듯싶은 전율스런 정적 속에. 무슨 유령의 무리처럼 얼굴을 가려 볼 수 없는 허연 포장막 같은 모습들로.
아버지나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기척도 없이 방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그 사태에 대한 유일한 대항책인듯 무거운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바깥 낌새를 엿보기 위해 서윤이 제 부엌방 문을 살금살금 밀쳐내는 소리에도 다른 때처럼 별다른 질책의 기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다 일이 제풀에 끝장났다. 이윽고 그의 형 의윤이 제 발로 뒷골방을 걸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는 안방 어른들 쪽을 향해 댓돌 아래 엎드려 조용히 하직인사를 올리고는 그 길로 사립께의 허연 무리를 향해 발걸음을 서서히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녕 그렇게 떠나가야 하겠느냐?”
“예,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이것이 제 운명의 길입니다.”
그 순간 기척을 알아차린 안방 어른들이 쫓아나와 아버지가 먼저 침통하게 물었으나, 의윤 형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서서 그렇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 어머니가 목수건을 깊이 둘러싼 그의 얼굴을 부여잡고,
“네 전정이 어째서 이 길이란 말이냐! 네 얼굴이 어째서 이런 꼴이더란 말이냐. 가더라도 이 에미한테 얼굴이라도 한번 똑똑히 보여주고 가거라. 불쌍한 내 자식아!”
애끓는 흐느낌 속에 마지막 소망을 말했을 때도 의윤 형은 그저 조용히 그 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어린 세윤으로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몇마디를 남겼을 뿐이었다.
“어머니, 제게는 이제 어머니의 옛 아들의 얼굴이 없습니다. 지금서부터는 저기 사립께에 기다리고 있는 저 사람들이 제 모습입니다. 저것이 제가 앞으로 지니고 살아가야 할 제 운명의 얼굴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어머님도 부질없이 제 추한 얼굴을 가슴아파하지 마시고 잊고 지내주십시오.”
그리고 의윤 형은 마지막으로 어린 서윤에게로 다가와 말없이 어깨를 한번 감싸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그대로 스적스적 사립께로 걸어가 무리와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버린 것이었다.
뜻밖에 찾아든 젊은이를 대하고 보니 서윤씨는 새삼스레 그 시절 그날 밤의 일들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때이른 체념에서든, 그간의 세월 탓이든, 근자 들어선 거의 떠올려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돌이켜보려 한 일도 제절로 떠오른 일도 없이, 없었던 일 한가지로 까맣게 잊혀져온 일이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기도 하였다.
“다 끝난 일이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의윤이 일은 이제 다들 깡그리 잊어버려라. 그 아이는 이제 우리하고는 세상길이 달라진 사람이니…… 지금서부터는 남은 식구들이라도 의연하게 살아가야지 않느냐. 의윤이도 집을 떠나가면서 그걸 바랬을 게다.”
그날 밤 그렇게 의윤 형이 떠나간 후 아버지는 정말로 그 아들이 자신 앞에 다짐하고 간 말 그대로 인생길이 서로 아주 달라져야 하는 것처럼 남은 식구들을 닦달했다. 집에선 구석구석 형의 흔적을 지워 없앴고, 그의 일은 누구도 입에조차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도 다시 옛날의 부지런한 농사꾼으로 돌아가 묵연스럽기 그지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그 형의 일이 금방 잊힐 리는 없었지만, 세월이 약이라듯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가면서 그 야속한 생각이나 괴로움도 차츰 엷어져가게 마련이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물론 어머니의 슬픔은 다른 누구에게도 비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처음 아버지의 엄한 닦달조차 전혀 아랑곳을 안했다. 아버지가 뭐라든 떠나간 형의 일로 늘 날이 새고 저물었다. 형에 대한 근심 걱정, 슬픔과 푸념기를 노래처럼 웅얼웅얼 늘 입에 물고 살았다. 약탕기나 옷가지들에 이어 아버지가 뒷골방의 책꾸러미까지 끌어내어 마지막 형의 흔적을 깡그리 불태워 없애려 했을 때는 그 아버지의 옷깃을 틀어쥐고 온 집이 떠나가도록 악을 쓰며 대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머니도 아버지의 완강한 태도 앞엔 어느 하루 그 산골 천막촌으로 혼자 형을 찾으러 나섰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것을 마지막으로 서서히 기가 꺾이기 시작했고, 유장하고 무심스런 세월의 흐름 앞엔 그렇듯 서럽고 괴로운 일들도 그럭저럭 기억이 바래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윤씨에게 그 형의 일이 까맣게 잊혀져온 것은 그가 한번 집을 떠나간 것으로 영영 소식이 끊어져버리고 만 허물이 더 컸다. 의윤 형은 그러니까 집을 떠날 때의 자신의 말대로 이후로는 다시 고향길을 찾아든 일(천막촌을 찾아간 어머니에게까지도 그랬듯 누구를 다시 찾아 만나려 한 일 역시)이 한 번도 없었다. 고향길까지는 몰라도 자기 살던 동네나 집에는 분명 그랬다. 집엘 찾아오기커녕은 편지나 풍문 속 소식 한번 전해온 일이 없었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까지 돌아가신 그 긴 세월 동안 어머니가 처음 한번 그 천막촌을 찾아간 것 외에는 이쪽에서도 맘먹고 그를 찾아본 일이 없으니 그 종적이나 형편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 20여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한 가지 괴이한 일이 있긴 했다. 아버지의 막연한 추측에 불과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진 다행히 형이 아직 살아 있거나 어쩌면 은밀히 고향길까지 다녀갔을 수도 있음직한 이상한 일이 있었다.
집 떠난 큰자식의 일을 속으로만 앓아온 그의 어머니는 그러니까 마음의 병이 그만큼 더 깊어져선지 요즘 세상에 겨우 환갑을 갓 넘긴 예순한살 나이로 아버지 먼저 세상을 떠나갔다. 큰자식 뒷소식은 여전히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대개는 그 사나운 병치레로 당신 먼저 저세상 사람이 되어갔으리라는 생각을 안고서였다.
“이제 죽어 저세상 사람이 되어 가면 네 형을 만나볼 수 있겠구나. 이렇게 에미나 제가 서로 죽어서나 찾아가 만날 수 있는 불쌍한 내 아들……”
그 어머니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그랬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나 서윤씨 자신도 대개 그렇게 생각했고, 저승에서나마 그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빌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이제는 그 어머니나 의윤 형의 일을 그럭저럭 다시 잊고 지내던 두어 해 뒤 여름께의 일이었다. 서윤씨는 대대로 조상들의 묘를 모신 선산 벌초를 갔다가 어머니 묘의 봉분 한쪽 흙속에서 뜻밖에 당신의 옛 은가락지 한 짝이 빗물에 씻겨 드러난 것을 발견했다. 그 은가락지는 원래 어머니의 유일한 패장물로 20여년 전 의윤 형이 집을 떠나고부터는 형의 종적과 함께 당신이나 집안에서 흔적이 사라지고 말았던 물건이었다. 어머니가 뒷날 산골 천막촌을 찾아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아들 에게 전해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허무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던 그 은가락지,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영영 떠나 보내는 자식에게 남의 손을 통해서나마 마지막 지녀 보낼 수 있는 것이 오직 그 한 가지뿐이었다며 두고두고 안타까워하던 당신의 마지막 정표, 그것이 어째서 거기 그런 식으로 묻혀 있다 나타났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한 가지 짐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짐작은 아버지 쪽이 훨씬 더 확연한 듯해 보였다.
“죽어 가 저승에서나 자식을 만나보겠다던 소원이더니, 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네 형 쪽 사정이 그럴 형편에도 이르지 못한 모양이구나.”
서윤씨가 그 가락지를 수습해다 아버지에게 보였을 때, 당신은 지그시 눈길을 외면해버리며 대수롭잖은 일인 듯 말했다.
“허기야 네 어미도 죽은 자식의 혼백을 만나느니보다 살아 있는 자식 지켜보는 쪽을 더 좋아할 게다만. 네 어미 혼백은 이제 그럴 수도 있을 게 아니냐. 헌데 네 형은 또 어떻게 어미 일을 알고서……”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직도 그 큰자식의 소식이나 종적보다 그 일이 더 궁금한 듯 잠시 괴이한 얼굴빛을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역시도 관심을 길게 두지 않았다. 의윤 형이 아직 살아 있든 죽었든, 그가 어떻게 어머니의 일을 알고 산소까지 다녀갔든, 당신은 그다지 괘념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무심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하루인가 이틀 뒤엔가는 심사가 새삼 어수선해진 집안의 자식에게까지 끊어 잘라내듯 일렀다.
“그 가락지 집안에 들일 물건이 아니니 다시 네 어미 무덤에다 깊이 묻어주어라. 네 형의 마음으론 그것이 제가 제 어미를 만나는 노릇 아니냐. 그리고 이젠 다 잊고 지내도록 해라. 네 형이 우리 몰래 제 어미 산소만 찾아보고 간 걸 보면 제 뜻도 그런 쪽인 게 분명할 터이니.”
서윤씨도 물론 그 아버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 아버지의 뜻대로 그 은가락지를 다시 어머니의 묘 봉분 한쪽 밑에 깊이 숨겨 묻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아버지의 당부처럼 그 일을 그만 잊고 지내려 애를 썼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 가지 예상찮은 일이 생겼다. 그 서너 해 뒤에 이번에는 아버지가 다시 세상을 떠나가신 것이었다. 그야 세수(世壽)를 그럭저럭 칠순 가까이까지 누리고 갔으니 당신의 기세(棄世)를 그리 예상치 못한 일이라곤 할 수 없었다. 서윤씨가 더 예상을 못한 일은 그 아버지의 임종시의 다짐이었다. 그 가락지 일로 하여 당신의 심기가 그렇듯 새삼 어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당신의 무관스러움과 오랜 망각의 얼굴 속엔 그만큼 더 깊은 회한이 숨겨져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거든 네 형에게도 소식을 알리거라.”
아버지는 뜻밖에 당신의 부음을 의윤 형에게 전하라는 당부였다.
“네 형이 아직 살아 있다면 필경 저 걁섬으로나 가 있을 게다. 그 섬으로 사람을 보내어 의윤이 네 형을 찾아 소식을 알리고, 제가 원한다면 이 아비의 장례에도 참예하도록 하라 해라. 이 아비까지 죽고 나면 네 형의 일로 해선 우리 집에 더 거르칠 데가 없을 거 아니냐. 그 성미에 필시 변성명을 하고 살고 있을지 모르니, 의윤을 찾다가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이쪽 아비 이름을 대보고 네 이름도 대보고……”
하지만 그 일도 형을 다시 돌아오게 하거나 찾아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노릇이 서윤씨에겐 그 형의 일을 더 쉽게 잊게 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그가 살아 있을 가능성을 의심케 하고, 연전의 가락지 일로 인한 아버지나 서윤씨 자신의 희망어린 짐작까지도 새삼 허황한 추단이 아니었는지 되짚어보게 했을 뿐이었다. 얼마 안 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윤씨는 바로 사람을 보내어 그 남쪽 해안가의 걁섬을 샅샅이 다 찾아 뒤져댔지만, 장롓날이나 삼우제를 치르기까지의 그 한 주일 동안 안의윤이란 이름을 지닌 사람이나 안병삼씨를 아버지로, 안서윤을 아우로 둔 40대 초반의 섬사람은 끝끝내 찾아낼 수도 나타나주지도 않은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의윤 형은 더욱 이 세상엔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가 아직 세상에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그의 삶과는 더이상 아무 상관될 일이 없는 사람으로 까맣게 잊혀져갔다. 그러기를 다시 20년. 그 의윤 형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래도 둘 사이엔 그 형이 집을 나갈 때 남긴 말 그대로 서로간에 전혀 다른 운명의 삶을 살아온 깊은 세월의 골을 지어온 셈이었다.
그런데 그 의윤 형의 물색이 근 50년 만에 제 아버지를 대신해 불쑥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서윤씨로선 도대체 그 일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한동안은 바로 그 눈앞의 일을 차라리 믿고 싶지가 않았다. 놀라움에 뒤이어 답답하고 난감한 생각부터 앞을 섰다. 그리고 민망하고 부끄러운 심회를 가눌 수가 없었다. 그야 따지고 보면 일이 너무 졸지에 닥쳐들어 그렇지 젊은이는 더 묻지 않아도 엄연한 그의 형의 핏줄임이 분명했다. 제 아버지를 대신해 찾아 나타난 그 조카 앞에 서윤씨가 새삼 크게 답답해하고 난감해할 일이란 없었다. 누구를 기다리거나 찾는 사람이 없느냐는 웬 젊은이의 갑작스런 물음에 그가 금세 기억이 미치지 못한 허물은 있었지만, 그밖엔 크게 죄책감을 느낄 일도 없었다. 그것도 그간의 사정이 그랬고 세월의 흐름이 그랬을 뿐 뒤늦게나마 그가 조카임이 분명해 보인 이상 이제라도 그를 반갑고 따뜻하게 감싸 맞아들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왠지 그러기가 쉽질 않았다. 그래 그는 젊은이가 함께 방으로 들어가기를 사양한 채 엉거주춤 계속 마루끝에 걸터앉아 거기까지 그를 찾아오기까지의 사연과 곡절을 우선 대충씩 털어놓고 있는 동안도 내내 그 답답하고 무거운 심사를 지울 수가 없었다.
서윤씨로선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젊은이는 실상 그 아버지의 일을(어떤 뜻에선 자신의 일까지도) 많이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래 그런지 자신의 처지나 삶에 대한 별다른 원망 같은 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적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손발 마디들이 심하게 상한 양친과 함께 그 섬에서 철없이 잘 자랐댔다. 부모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발 마디들이 상한 것은 그 섬 어른들 누구도 마찬가지 사정이었으므로 그런 걸 그리 별스럽게 생각한 일도 없었댔다. 섬사람들에겐 누구도 양친 부모 이상의 선대 어른이 없었으므로 그에게 두 사람 이외의 다른 인척이 없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로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섬 아이가 바깥세상을 처음 구경한 것은 그가 여덟살 때 아버지를 따라 육지로 나와 어느 마을 앞산골을 찾아가 아버지와 함께 새 무덤 앞에 몰래 성묘를 하고 돌아갔을 때였는데, 그때도 그는 그 뭍사람들의 모습이나 자신에게 웬 뭍세상 친척(비록 죽은 무덤으로나마)이 있었다는 사실이 부럽고 반갑기보다 오히려 낯설고 서먹하기만 했다고. 그리고 그래서 다음번 몇년 뒤에 다시 한번 아버지와 같은 마을 부근엘 찾아 들어갔을 때도 그런 서투름과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아버지를 졸라 서둘러 섬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그리고 그 10년쯤 뒤 아버지가 그간의 독한 약화로 간경화 증세가 깊어져 50대 중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리고 이후 다시 10여년 세월 동안도 그 섬에서 남은 어머니와 나름대로 탈없이 잘 살아오고 있었다고……
의윤씨는 그러니까 생전에 그 아들과 함께 고향 마을 산소엘 두 번이나 다녀간 셈이었다. 먼저 한 번은 당시에 이미 그 가락지 일로 짐작했던 대로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한두 해 뒤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의윤씨는 뒤늦게나마 어디서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듣고 무덤을 찾아온 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저를 데리고 뭍길을 나서시며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나는 병을 앓고 있어 앞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너도 이제는 네 고향 동네가 어딘지, 조상님들의 선산을 어디 모셔 두었는지 알아두는 게 좋겠다. 너한텐 찾아뵐 만한 가까운 어른이나 인척들이 계시다는 것도……”
여덟살 어린 나이로는 뜻을 잘 새겨들을 수 없었겠지만, 어언 30대가 된 조카아이는 아직도 그런 아버지의 말만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룻만에 그 고향 마을 선산엘 당도할 때까지도 그 아버지의 말 속엔 분명 ‘할머니’의 죽음이 없었던 걸로 기억했다.
“아버님께서 할머님이 돌아가신 것을 아신 것은 그 선산 아래쪽에 잔디가 그리 오래지 않은 낯선 무덤이 새로 들어선 것을 보고서였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버님은 무슨 근거로 그런 단정을 내리셨는지 그 무덤을 보자마자 바로 무너지듯 놀라 엎드리시며 어머니 어머니 통곡을 하셨지요.”
그리고 의윤씨는 길고 긴 통곡 끝에 언제부턴지 품속에 깊이 간직해온 예의 은가락지를 꺼내어 ‘이제는 이 불효자가 어머님 곁으로 갈 때까지 어머님이 이것을 대신 맡아 간직해주시라’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하직인사와 함께 그 무덤 봉분 한쪽 밑에 그것을 깊이 묻어드리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의윤씨는 그때 사실 그 아버지의 짐작처럼 생자와 사자간의 해후가 아니라 죽은 어머니의 혼백에 대한 이승의 아들로서 더한층 애달픈 하직인사를 치른 것이랄까……
그런데 그 부자가 두번째로 다시 고향 고을을 찾은 것이 서윤씨에게는 좀더 뜻밖이었다. 다름아니라 그것은 그가 당신의 유언대로 부음을 전하려 그렇듯 애를 썼어도 끝내 허사가 되고 말았던 그 아버지의 초상 때였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진짜 함자가 안영훈이 아니라 안의윤씨라는 걸 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때까진 그걸 전혀 의심해본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아버님 쪽에선 그때 물론 조용히 모른 척하고 계셨을 뿐, 할아버님이 돌아가신 것도, 그 일로 사람이 와서 당신을 찾는다는 것도 다 알고 계셨지요. 그 사람이 아직도 당신을 찾고 있는 동안 아버님은 그 장롓날에 맞춰 다시 저를 데리고 섬을 나와 이곳으로 왔으니까요.”
조카아이는 이번에도 그 두번째의 일을 남의 일처럼 담담한 어조 속에 차근차근 되새겨나갔다.
“하지만 아버님은 이번에도 장례가 치러지는 마을까지는 가까이 들어가려 하질 않으셨지요. 마을 뒷산 숲속에 새벽부터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가 오정 때쯤 되어서 상여가 집을 나와 동네 노제를 지내고 다시 천천히 산으로 올라가 선산터 산역이 끝날 때까지, 이따금 한숨기 속에 하염없이 눈길만 좇고 계실 뿐이었어요. 그러다 이윽고 산일도 다 끝나고 주위가 조용해진 석양녘이 되어서야 당신은 말없이 숲속을 빠져나와 그 길로 섬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그 아버님이 하도 안되고 답답해 보여 섬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가 한마디 물었어요. 아버님은 여기까지 와서 어째서 아직 마을엔 들어가실 수가 없냐고요. 사람까지 보내어 부음을 알린 할아버님 장례를 그렇게 멀리서 숨어 보아야만 하느냐고요. 아버님이 간단히 몇마디 하시더군요. 나는 살아생전에 찾아갈 수 없는 곳이요, 찾아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때가 되면 나중에 너라도 찾아가보라고 길을 함께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이 열두살밖에 안된 제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깊이 헤아릴 수가 있었겠어요? 그때가 언제인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그저 아버님처럼 저한테도 그런 일은 있을 것 같지가 않았지요. 아버님의 내림처럼 제게 그런 때가 오기를 바라기커녕 그저 한시 바삐 섬으로 돌아가고 싶기만 했지요. 그리고 다시 긴 세월 뭍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우리끼리 우리 식으로,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는 그 아버님과 함께 셋이서,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어머님과 둘이서 그럭저럭 잘 살아나갔지요. 그런데 오늘 결국엔 이렇게 여길 찾아오게 됐군요……”
조카아이는 여전히 그런 일이 자신에겐 아무것도 중요할 것이 없다는 듯, 어찌 보면 황량스러울 정도로 메마른 어조 속에 자신이 보고 들은 그간의 사연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간간이 잇사이를 새어나오는 가는 한숨소리마저 그간의 제 척박한 삶에 대한 야속한 마음에선지 아니면 자신이 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고향 동네를 찾아온 것을 뒤늦게 후회해선지 분간이 안 갈 만큼 담담하고 방심스런 술회였다.
하지만 서윤씨로선 들을수록 가슴 아프고 답답한 이야기였다. 고향집 어머니의 생사조차 모른 채 어린 자식을 위한 선산길을 몰래 찾아든 병깊은 아비와, 철모르는 나이에 그 아비의 이승의 무거운 짐을 이어 지게 된 어린 아들. 이승에서의 마지막 하직인사로 품속의 은가락지를 저승 어머니의 혼백 앞에 되돌려드리고, 그것으로 모자간 사후의 재회를 약속하고 돌아간 자식과, 오래잖아 자신이 옮겨 이어 지게 될 그 아비의 이승의 짐 앞에 아무 두려움이나 불평이 없는 어린날의 그의 아들. 그래 오히려 그 뭍세상을 등지고 서둘러 그의 섬으로 돌아가기만을 원했던 헐벗고 가엾은 생령. 고향집 아버지의 부음을 접하고도 짐짓 멀리서 상엿길만을 숨어 지켜보고 간 아비와 아직도 그 뭍세상 일과는 아무 상관을 못 느낀 채 무심히 섬으로 그 아비를 따라 들어가고 만 열두살 그의 어린 아들. 그리고 그 섬살이에 이골이 져 나타난 그의 성장한 조카아이의 남루하고 황량한 모습. 서윤씨는 그 부자의 모든 것에 그쪽 일을 오랜 세월 잊고 살아온 일보다 더욱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일고 있었다. 아니 이젠 이미 그 의윤씨가 이승의 짐을 벗어놓고 저세상 사람이 되어 가버린 탓인가. 서윤씨는 이제 그 형님 의윤씨의 일보다 눈앞의 조카 꼴이 더욱 가슴아프고 안타까웠다. 녀석은 그 행색이나 표정이 좀 초췌하고 지쳐 보일 뿐 외모는 그런 대로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체격에 물색까지 영락없는 그의 집안 혈육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제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살이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했고, 거꾸로 뭍세상 일을 외면한 채 제 섬살이만을 만족해하고 있었다. 서윤씨는 그런 녀석이 가까운 혈육커녕 웬 별종의 인간처럼 낯설고 서먹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더욱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 했다.
한데다 녀석이 이제서야 뒤늦게 제 아버지의 고향 마을길을 찾게 된 연유가 그의 마음을 더한층 무겁게 하였다.
의윤씨는 자신의 죽음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마지막 유언 삼아 그의 고향 집과 가계에 관한 일들을 모두 일러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집을 나와 2,3년 뭍세상길을 떠돌다 드디어는 제발로 섬으로 들어와 정착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털어놓고, 자기가 죽거든 아들에게 그 고향집을 한번 찾아가보라는 당부를 남겼다.
“내가 죽고 나면 그것으로 우리 집안에 드리워졌던 액운의 장막도 끝장이 나게 된다. 너도 그것으로 더이상 이 아비나 이 섬의 숙명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 너는 애초부터 내 병이나 이 섬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이 아비 때문에 이곳에 붙잡힌 무고한 피해자일 뿐이다. 너는 이제 누구도 허물할 일이 없는 떳떳한 젊은이다. 그러니 내 장례를 치르고 나면 너는 내 덕산리 고향 마을로 숙부를 한번 찾아가보아라. 찾아가 숙부와 새 인생길을 의논해보도록 하거라.”
하지만 의윤씨가 죽고 나자 아들은 그 아버지의 유골을 섬사람들의 내세의 집 ‘만령당’에 함께 안치하고 좀처럼 덕산리 고향 마을로 숙부 서윤씨를 찾아나서려 하지 않았다.
“아버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저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제게는 그 섬에서 살아온 이때까지의 제 인생살이 길을 굳이 고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태어나지도 않은 아버님의 고향 마을이나 얼굴 한번 본 일이 없는 숙부님을 찾아뵐 일도 없었지요.”
조카녀석은 그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듯 별 굴곡을 느낄 수 없는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 아들이 있었으니 의윤씨의 죽음 뒤에는 그가 인생의 모든 것을 단념하고 섬으로 들어가 짝을 맺어 살아오고 아들 자식을 낳아 기른 녀석의 어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미가 끊임없이 그를 졸라댔다. 어미 역시 죽은 남편의 유언대로 그 아들을 섬에서 내보내 새 인생길을 열어 살기를 두고두고 소망했다.
“네가 몰라 그렇지 이것은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다. 너만 이 섬을 나가준다면 이 에미는 그것으로 다른 아무 여한이 없을 게다. 그것으로 편안히 마지막 눈을 감을 수 있을 게다. 아버지의 고향에 작은댁 사람들이 계시니 길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하지만 아들은 그 어미의 간절한 소망마저 끝내 외면을 하고 지냈다. 그리고 다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근자 들어 그가 생각을 바꿔먹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나이 예순살을 넘어선 그의 어미 역시 그간의 약화로 병이 많이 깊어 여명(餘命)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처지에 그 아들에 대한 새 성화가 시작된 것이다.
“내 앞날이 길지 못한 것은 너도 아는 일이다. 나는 네 아버지처럼 이 섬귀신들이 우글거리는 만령당으로는 안 간다. 살아선 섬살이를 체념하고 살아올 수밖에 없던 인생이 죽어 귀신이 되어서까지 그곳으로 다시 갇혀 들어가야겠느냐. 이제는 네가 하루라도 서둘러 네 아버지의 뼈를 고향 선산으로 옮겨 모시고, 내가 죽거든 내 뼈도 그 곁에 함께 묻도록 해라. 너야 어쨌든 이 에미 애비만은 죽어 혼백으로나마 이 섬을 나가고 싶으니.”
“이번에 제가 이렇게 여길 찾아온 것은 그래서 아버님과 어머니의 묘지 일을 의논드려보려 해서였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부모의 묘지터 일로 제 아비의 옛 고향 마을과 고향집 사람을 찾아오게 되었노라는 마지막 고변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거기서도 물론 별다른 기대나 확신을 못 갖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간의 일에 대한 무슨 원망기나 요구의 빛 같은 건 더더욱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 간간이 눈길 속에 내비치던 뜻모를 비웃음기나 도발기 같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말끔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그간의 자기 인생사 모든 것을 지극히 온당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서윤씨는 그럴수록 더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그리고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쉽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서윤씨로선 당연히 돌아가신 형님의 유골을 서둘러 고향 선산 아래로 옮겨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가엾은 형수의 뒷일을 위해서도 그 일을 하루바삐 서둘러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살아남은, 고인의 아우가 된 도리로 나이먹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의 형님이 생전의 마지막 소망을 묻고 갔고, 병든 형수가 그토록 갈망해온 조카아이 일에는 본인 자신도 별 관심이 없었고, 서윤씨로서도 전혀 속수무책 꼴이었다. 죽은 형님에게나 살아 있는 형수에게나 그 만령당의 유골을 선산으로 옮겨 묻는 일은 그 당자들보다 녀석과 녀석의 앞날을 위해 더 큰 뜻이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태도나 심지가 그런 식이고 보니 서윤씨는 도대체 그런 녀석과 제 아버지의 이장 일을 어떻게 의논하며, 그것이 녀석에게 무슨 뜻이 있을 일인지, 게다가 녀석의 새 인생길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 열어나가야 할 것인지, 그로서는 섣불리 엄두조차 내볼 수가 없었다.
서윤씨는 다시 한동안 더없이 난감하고 침통한 느낌에 휩싸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은 오랜 세월 섬 안에 붙박이로 갇혀 살아온 녀석의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깊은 불신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신감과 두려움은 상상 이상으로 뿌리가 깊고 완강했다.
“그래, 내가 이제 와서 네 아버지나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네 아버지의 유골이나마 하루빨리 이곳 선산으로 옮겨 묻어드리는 일뿐인가 보구나. 그러니 오늘이라도 어디 새 묏자리를 잡을 만한 데가 있는지 한번 산엘 가보겠느냐?”
서윤씨가 고심 끝에 한숨기 섞어 말하고 그 조카를 건너다보았을 때였다.
“내키지 않으시다면 굳이 그러실 필요 없을 텐데요.”
여태까지 그 무기력하기만 하던 태도와는 달리 녀석이 이번에는 서윤씨의 제의를 노골적으로 되받아왔다. 얼굴을 짐짓 절반쯤 외면한 눈길에서도 모처럼 역력한 비아냥과 도발기가 느껴져왔다. 그리고 거기서 서윤씨는 문득 녀석에 대해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냐? 내키지가 않다니. 그 일은 네 아버지의 일일 뿐 아니라 내 돌아가신 형님의 일이기도 하다.”
서윤씨가 모처럼 정색을 하고 나무라는 소리에 녀석은 이번에도 수긍의 대꾸 대신 새삼 또 엉뚱한 소리를 묻고 나섰다.
“돌아가신 제 아버님이 정말 어르신의 형님이 되는 분이신 건 분명합니까? 또 제가 정말 어르신의 조카인 건 맞습니까?”
연거푸 따지고 드는 녀석의 소리에 서윤씨도 제풀에 다시 어정쩡한 해명조 대꾸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너 무얼 의심하고 있는 거냐? 내가 지금 네 아버지의 유골 이장을 위해 묏자리를 살피러 가자는 소리를 듣고도 그걸 아직 모르겠단 말이냐? 지금 와서 도대체 무얼 그리 의심한단 말이냐.”
“그야 속마음은 아니면서도 마지못해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섬에서 나서 섬에서 이 나이를 먹어오고, 집을 떠난 후론 한 번도 그 고향집에 다시 얼굴을 내밀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의 일을 알고 있는 제가 그걸 어떻게 금세 믿어버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른께서 설령 그 유골을 선산으로 받아들여주신다 해도 아버님은 이미 당신의 말씀대로 이승의 일이 다 끝나고 떠나가신 저세상 사람이 아닙니까. 그게 아버님께 무슨 뜻이 있는 일이래도 그것은 아버님 당신의 일일 뿐 제 일은 아닌 거구요. 저는 아직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숫제 패악투 항변을 늘어놓다 말고 그도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듯 갑자기 말을 끊은 채 자기도 모르게 거칠어진 숨결을 가다듬고 있었다.
서윤씨도 이젠 더 무슨 대꾸를 이으려다 말고 그쯤에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모처럼 열이 오른 녀석의 패악투에 서윤씨는 비로소 녀석의 깊은 본심이 역력히 짚여왔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이미 서윤씨가 짐작해온 것 이상으로 바깥세상과 그 바깥 사람들의 일을 겁내고 있었다. 녀석이 그토록 제 어미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한 채 그를 찾아오기를 꺼려해온 것도 실은 그 고향 사람들과 고향에서의 일들을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고향 고을의 인척이 그 아버지나 자식을 두고 제 형님이나 조카가 아니랄까봐, 제 핏줄이 아니랄까봐, 그걸 의심하고 겁내온 때문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제 핏줄을 알아봐준 숙부 서윤씨의 말조차 믿으려 하지 않고, 제 아비의 유골을 선산으로 옮겨 묻는 일조차 새삼 부질없어하였다. 녀석으로선 어쩌면 그도 당연한 일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녀석의 본심이 아니었다. 손쉬운 말응대나 겉시늉이 아니라 녀석은 이쪽의 편안하고 그윽한 마음을 원하고 있었다. 제 아비의 고향 고을을 굳이 ‘이곳’이나 ‘여기’라 말하고, 제 숙부를 늘 ‘어른’이라 부르고, 그리고 끝끝내 방안으로 들어가기를 마다한 채 마루끝 자리를 고집해온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었음이 분명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갑작스런 항변조나 순간순간 그 눈길을 스쳐가던 세찬 비아냥과 도발기 같은 것이 거꾸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녀석에게는 말이나 일을 믿게 할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서윤씨는 그것을 새삼 뼈아프게 느꼈다. 그리고 그간의 사정이 어쨌든 그 형님네의 일을 무심히 묻어두고 지내온 그의 지난 세월에 대해 새삼 더 뜨겁고 무참스런 회한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서윤씨로선 녀석에게 그의 속마음을 전할 길이 없었다. 마음이 깊이 웅크려든 조카의 그 숨은 소망을 감당할 길이 안 보였다. 형 의윤씨의 유골 일은 어떻게든 자신이 마무리를 지어줄 수도 있었지만, 단순하고 순박한 만큼 마음이 헐벗은 그 조카의 앞일은 길이 전혀 안 보였다. 그래 여태까지 부엌방 쪽 마루끝에 걸터앉아 둘 사이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다 때마침 자신도 무슨 말을 보태고 싶은 듯 스적스적 자리를 옮겨오는 아들아이를 두고 그 무거운 숙제 뭉치를 떠넘기듯 질책기 섞어 말했다.
“그래, 너희는 서로 사촌간이로구나. 그러니 내게 정 믿음이 안 간다면 저 길동이한테 너희가 사촌간이냐 아니냐 물어봐라 이놈아. 그것이 네가 여기까지 마음속으로 물으러 온 말이 아니냐. 이제 와서 그것도 물어보기가 싫다면, 어디 너하곤 사촌간도 뭣도 아니라 말해보거라.”
■ 내가 네 사촌이냐 / 이청준
쌀쌀한 꽃샘바람이 마을과 들녘에 흙먼지를 날리곤 하던 이해 이른봄 어느날 늦은 오후. 30대 초반의 한 초췌한 안색의 사내가 이곳 남녘 해안가 덕산마을을 찾아들어와 때마침 동네 정자나무터에 나와 앉아 일손을 쉬고 있던 비슷한 연배의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혹시 이 마을에 연세가 쉰예닐곱쯤 되신 안서윤씨라는 어른이 살고 계십니까?”
그런데 그 물음을 받은 동네 젊은이가 바로 안서윤씨의 아들이었으므로 그는 대답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젊은이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 그런 사실을 확인해주었고, 낯선 길손이 다시 그 안서윤씨의 집을 물었을 때도 그는 거의 무심스런 손짓으로 방앗간길 아래쪽에 가죽나무 한 그루가 높이 솟아오른 자신의 집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인이 누구이며 무슨 일로 그의 아버지 서윤씨를 찾는지 묻지 않았다. 요즘 시절로 해서는 그의 행색이 너무 허름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데다 눈빛에선 삭막한 피곤기까지 느껴져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든 때문이었다. 그리고 뱀이 제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말격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위인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일로 그의 부친 안서윤씨를 찾아온 것인지를 알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내를 얼른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 안서윤씨의 아들만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내가 안서윤씨를 찾아 그 방앗간길 아랫골목 가죽나뭇집 사립을 들어서며 때마침 안방 앞마루께로 나와 있던 초로의 주인에게 공손히 첫인사를 건넸을 때 안서윤씨 역시도 처음엔 전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죄송합니다만 함자가 안서윤 어른 되십니까?”
“예, 그렇소만, 댁은 뉘시길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서윤씨는 젊은이가 사람이나 집을 잘못 찾아든 위인이 아닌가 싶어하는 얼굴이었다. 서윤씨로선 사실로 그의 생애 가운데에서 젊은이의 얼굴을 본 일이 없었거니와 그의 존재마저도 상상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젊은이는 분명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의 아들도 아닌 그 자신의 나이때가 낀 이름을. 게다가 위인의 다음 물음은 서윤씨를 더 한층 어리둥절 당황스럽게 하였다. 그의 물음을 무심히 외면할 수 없게 했다.
“거듭 죄송스럽습니다만 어르신께서 서자 윤자 어른이 분명하시다면 제가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젊은이가 다시 공손히 양해를 구하고 나서 서윤씨에게 물었다.
“혹시 이 댁에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습니까?”
앞도 뒤도 없이 불쑥 물어오는 소리에 서윤씨는 이번에도 말을 잘 듣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니. 우리가 누구를……?”
고개까지 가로저으며 젊은이에게 거꾸로 되묻는 표정이었다.
“찾아올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시다면…… 그럼 혹시 오래전에 이 댁을 떠나간 사람은 없습니까? 집을 떠나간 뒤로 영영 종적이 사라져버린 사람이나……”
젊은이가 얼굴에 잠시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한번 머뭇머뭇 자신없는 소리로 말했다. 서윤씨의 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보려는 간절한 소망의 빛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젊은이의 추량이 제대로 적중해들고 있었다.
서윤씨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 속에 고개를 내저으려다 말고 불현듯 소스라쳐 놀랐다. 그리고 새삼 세심한 눈길로 젊은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살폈다.
“아니, 이럴 수가……!”
이윽고 그의 입에선 반가움에선지 놀라움에선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신음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사실 서윤씨의 그런 놀라움은 무리도 아니었다. 그 젊은이의 잇단 물음에 서윤씨는 비로소 오랜 옛날 집을 나가 종적이 사라져버린 20대 그의 젊은 형의 일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의 그 지치고 수척한 얼굴에서, 그러면서도 어딘지 불안스런 긴장기가 떠도는 팽팽한 눈매와 오똑한 콧날들에서, 이제는 이미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오랜 세월을 잊고 지내온, 그래서 젊은이의 처음 물음엔 기다리거나 찾는 사람커녕 그런 동기간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았을 만큼 아득히 잊혀져온 그의 형의 용모를 어슴푸레 읽어낸 것이었다. 서윤씨로선 젊은이가 처음 기다리거나 찾는 사람을 물었을 때보다 더 한층 당황하고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댁에가……?”
젊은이에게 물어놓고도 그는 한동안 대답조차 들으려 하지 않은 채 혼자 허둥대기만 했다. 그리고 뒤늦게 뭔가 심상찮은 느낌에 그를 뒤따라 들어온 아들 길동의 얼굴에서도 재차 비슷한 물색이 끼였음을 깨닫고서야 황황히 그를 마루로 이끌어 앉혔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선 여기서 그간의 곡절부터. 이 일이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인지를……”
앞마루에 엉거주춤 마주 걸터앉은 서윤씨의 기억 속에 젊은이는 갈수록 20대 옛 젊은 형의 모습과 비극적 인생행로를 되살려나갔다.
1945년 8쇓15해방과 함께 한창 바깥세상 일에다 열정을 쏟고 지내던 갓 20대의 의윤 형, 당시로선 드물게 상업학교까지 졸업한 인텔리 청년 의윤 형이 이듬해 봄부터는 갑자기 문밖출입을 끊은 채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바깥나들이를 끊어버린 것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차츰 식구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드물었고, 그러다간 아예 외지고 어두운 자기 뒷골방에 틀어박혀 유령처럼 혼자서만 지냈다. 끼니도 뒷골방에서 혼자 받아 먹었고, 변소길도 바깥 인적이 뜸하거나 밤늦은 어둠속으로만 나다녔다. 방에서는 대개 책장을 뒤적거리거나 무슨 깊은 생각에 싸여 지내는 듯해 보였지만, 그가 정말로 긴 시간 혼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는 아무래도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그가 집안 어느 한 구석에 들어앉아 지내고 있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렇게 그는 차츰 집안에 없는 사람, 잊혀진 사람처럼 되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나이 터울이 많이 진 열한살짜리 어린 아우 서윤에게나 아직 곡절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월이 훨씬 더 흐르고 난 뒤에야 서윤이 그 속내를 다 알게 된 일이지만, 집안 어른들에겐 처음부터 사정이 분명해져 있던 일이었다. 의윤 형이 어떤 몹쓸 역병을 앓고 있다는 게 그 무렵 서윤을 단속하기 위한 어머니의 조심스런 귀띔이었다. 그런데 그 역병이 이웃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절대로 나을 수가 없으니 어려운 형을 위해 누구에게도 그런 사실을 말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이 거듭거듭 뒤따랐다. 그런 사실은 알지도 못한 것으로 하라는 아버지의 엄한 단속도 덧붙여졌다. 형을 가까이 하려다간 서윤에게도 역병이 옮을지 모르니 뒷골방 쪽에는 아예 얼씬을 말라는 당부와 함께, 형의 일은 더 알려고 하지도 말고 그저 모른 척 잊고 지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그 어른들의 단속뿐만 아니라 의윤 형의 어려운 처지를 위해서도 서윤은 이후부터 물론 형의 일을 모른 척하고 지냈다. 아버지가 이따금 은밀히 먼 고을 나들이를 다녀오면 집안에 알 수 없는 탕약 냄새가 풍기고, 끼니때 사이사이로 그 탕약사발이 뒷골방을 드나드는 기미로 보아 의윤 형이 정말로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 ‘고약한 역병’을 앓고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시 형의 병이 낫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윤은 점점 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의 사단은 형의 신병이었지만, 그 신병의 비밀을 지키는 것이 또한 큰 문제였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어른들은 갈수록 말들을 잃어갔고, 간간이 숨어드는 비밀스런 한숨기 속에 집안엔 언제나 음습한 근심기가 가득했다. 집안 식구끼리도 그렇듯 말이 없다 보니 서윤은 이웃이나 동네 사람을 만나기엔 더욱 겁이 나고 불안했다. 누구를 만나도 먼저 집안의 비밀을 떠올리고 전전긍긍 제풀에 눈치를 살피게 되곤 했다. 그런 데다 그 어른들의 은밀스런 약수발과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형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가는 기미가 안 보였다. 그리고 일은 더욱 불안하게 더쳐갔다.
해방 이전 일제시절, 의윤씨와 같은 신양(身恙)을 앓는 사람들은 대개 남쪽 해안의 한 외딴 섬으로 가서 다른 동환들과 함께 집단수용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곳의 생활이나 요양시설이 너무 열악한 데다 강제노역과 학대까지 심하여, 해방 이후의 혼란기 땐 많은 환자들이 섬을 빠져나와 이 고을 저 고을로 떠도는 집단유랑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그해 늦가을 무렵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자 그 유랑집단의 한 무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 따뜻한 남녘 덕산마을 인근 산골짜기에 천막을 치고 들어앉았다.
마을엔 자연히 인심이 흉흉해지고 무거운 긴장기가 감돌았다. 그 병증의 외양이 워낙 험상궂은 데다 일생 치유불능의 사나운 역질로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위인들이 함부로 마을로 들어온 일은 없었지만, 신병의 치료를 위해선 더러 어린아이를 해치기도 한다는 고약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동류의 환자를 집안에 숨기고 지내는 서윤네의 불안은 더 이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 가슴을 저며드는 불안기나 두려움은 재 너머 산골짜기의 천막무리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동네 안에 누군가 같은 역병 환자를 숨기고 지내는 집이 있는 게 틀림없다.”
“위인들이 어느새 그런 낌새를 알고 그를 데리러 왔을 거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를 죽여 수군댔다. 그 병의 환자들은 어느 고을 어느 집에 같은 병자가 생기면 귀신같이 그것을 알아내어 그를 기어코 자기들 무리 속으로 데려가고 만다는 것이었다. 새 병자를 위해서든 자기 무리의 편익과 세력을 위해서든 그것이 그 병을 앓는 무리의 은밀하고도 엄혹한 불문율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집이 누구넨지 저들에게 숨겨둔 환자를 내주지 않으면 위인들은 절대로 이 골을 떠나가지 않을 게다. 병을 숨긴 집에선 마을을 위해 알아서 환자를 내놓아야 한다.”
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서윤네 식구들 앞에선 함부로 그런 소리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걸로 보아 이미 다 그 비밀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실은 그같은 등뒷수군거림 역시도 서윤네와 그 식구들을 지목한 은근한 오금박이 소리들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모든 일은 결국 그 수군거림 그대로 되어갔다.
어느날 깊은 자정쯤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은밀히 서윤네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버지를 불러내어 무슨 얘긴가를 하고 돌아갔다. 어린 서윤은 물론 사내의 얼굴을 본 일도 없었고, 그가 누구이며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갔는지를 들은 일도 없었다. 하지만 사내가 그렇게 밤중으로 집을 다녀간 뒤부터 더욱 말이 없어진 아버지의 깊은 침묵과 신음기 섞인 한숨소리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돼요. 죽어도 안돼요…… 내 자식이 어째서 저런 인간들한테……! 아이한테는 그런 소리 입도 떼지 말아요…… 울음소리를 깨물어 삼키는 어머니의 조심스런 탄식기 속에서도 서윤은 그 사내가 누구이며 그 밤중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갔는지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피를 말리는 아버지의 침묵과 어머니의 절급한 갈망도 다 부질없어 보였다. 며칠 뒤 같은 밤중 무리의 몇사람이 다시 그의 집을 찾아왔다. 사람 수가 하나에서 서너 명으로까지 늘어난 것이 첫번 때보다도 더 불안하고 겁이 났다. 이번에도 위인들은 아버지를 잠시 사립께로 불러내어 조용히 만나고 돌아갔지만, 이후부터 아버지는 아예 한숨소리조차 잊은 채 멍청히 넋을 놓고 앉아 있기만 하였다. 어찌 보면 곰곰 혼자 생각 속에 무엇인가를 망연히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아버지와 반대로 어머니 쪽은 오히려 그 한숨소리와 안타까운 탄식기에 전 같은 조심성이 훨씬 덜해갔을 뿐이었다.
“안돼요. 나는 죽어도 내 집에서 내 자식과 함께 죽고, 살아도 내 집에서 함께 살 것이니 그리 아시고 행여 딴생각 먹지 마시오. 저 아이가 집을 나가면 그날이 내 초상날이 될 것이니!”
아버지에 대한 푸념이나 다짐 소리도 훨씬 더 노골적이었고, 때로는 치솟아오르는 오열을 굳이 더 참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말을 잃은 아버지는 물론 다짐이 그리 시퍼렇던 어머니도 그런 식으로 차츰 속마음을 가다듬어온 것일까. 무리가 다시 세번째로 집을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도 더 아무 대항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날 밤 깊은 어둠을 타고 찾아온 천막무리는 그 수가 다시 열명쯤으로 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위인들은 문밖 기척으로 아버지를 불러 놓고 아무 다른 말이 없이 그저 이쪽의 처분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첫번 한 사람 때나 뒷 서너 사람 때보다도 더욱더 괴괴하고 가지런한 침묵 속에. 어찌 된 셈인지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이웃이나 온 마을이 그럴수록 더 무겁게 가라앉아들어가는 듯싶은 전율스런 정적 속에. 무슨 유령의 무리처럼 얼굴을 가려 볼 수 없는 허연 포장막 같은 모습들로.
아버지나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기척도 없이 방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그 사태에 대한 유일한 대항책인듯 무거운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바깥 낌새를 엿보기 위해 서윤이 제 부엌방 문을 살금살금 밀쳐내는 소리에도 다른 때처럼 별다른 질책의 기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다 일이 제풀에 끝장났다. 이윽고 그의 형 의윤이 제 발로 뒷골방을 걸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는 안방 어른들 쪽을 향해 댓돌 아래 엎드려 조용히 하직인사를 올리고는 그 길로 사립께의 허연 무리를 향해 발걸음을 서서히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녕 그렇게 떠나가야 하겠느냐?”
“예,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이것이 제 운명의 길입니다.”
그 순간 기척을 알아차린 안방 어른들이 쫓아나와 아버지가 먼저 침통하게 물었으나, 의윤 형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서서 그렇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 어머니가 목수건을 깊이 둘러싼 그의 얼굴을 부여잡고,
“네 전정이 어째서 이 길이란 말이냐! 네 얼굴이 어째서 이런 꼴이더란 말이냐. 가더라도 이 에미한테 얼굴이라도 한번 똑똑히 보여주고 가거라. 불쌍한 내 자식아!”
애끓는 흐느낌 속에 마지막 소망을 말했을 때도 의윤 형은 그저 조용히 그 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어린 세윤으로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몇마디를 남겼을 뿐이었다.
“어머니, 제게는 이제 어머니의 옛 아들의 얼굴이 없습니다. 지금서부터는 저기 사립께에 기다리고 있는 저 사람들이 제 모습입니다. 저것이 제가 앞으로 지니고 살아가야 할 제 운명의 얼굴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어머님도 부질없이 제 추한 얼굴을 가슴아파하지 마시고 잊고 지내주십시오.”
그리고 의윤 형은 마지막으로 어린 서윤에게로 다가와 말없이 어깨를 한번 감싸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그대로 스적스적 사립께로 걸어가 무리와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버린 것이었다.
뜻밖에 찾아든 젊은이를 대하고 보니 서윤씨는 새삼스레 그 시절 그날 밤의 일들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때이른 체념에서든, 그간의 세월 탓이든, 근자 들어선 거의 떠올려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돌이켜보려 한 일도 제절로 떠오른 일도 없이, 없었던 일 한가지로 까맣게 잊혀져온 일이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기도 하였다.
“다 끝난 일이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의윤이 일은 이제 다들 깡그리 잊어버려라. 그 아이는 이제 우리하고는 세상길이 달라진 사람이니…… 지금서부터는 남은 식구들이라도 의연하게 살아가야지 않느냐. 의윤이도 집을 떠나가면서 그걸 바랬을 게다.”
그날 밤 그렇게 의윤 형이 떠나간 후 아버지는 정말로 그 아들이 자신 앞에 다짐하고 간 말 그대로 인생길이 서로 아주 달라져야 하는 것처럼 남은 식구들을 닦달했다. 집에선 구석구석 형의 흔적을 지워 없앴고, 그의 일은 누구도 입에조차 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도 다시 옛날의 부지런한 농사꾼으로 돌아가 묵연스럽기 그지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그 형의 일이 금방 잊힐 리는 없었지만, 세월이 약이라듯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가면서 그 야속한 생각이나 괴로움도 차츰 엷어져가게 마련이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물론 어머니의 슬픔은 다른 누구에게도 비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처음 아버지의 엄한 닦달조차 전혀 아랑곳을 안했다. 아버지가 뭐라든 떠나간 형의 일로 늘 날이 새고 저물었다. 형에 대한 근심 걱정, 슬픔과 푸념기를 노래처럼 웅얼웅얼 늘 입에 물고 살았다. 약탕기나 옷가지들에 이어 아버지가 뒷골방의 책꾸러미까지 끌어내어 마지막 형의 흔적을 깡그리 불태워 없애려 했을 때는 그 아버지의 옷깃을 틀어쥐고 온 집이 떠나가도록 악을 쓰며 대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머니도 아버지의 완강한 태도 앞엔 어느 하루 그 산골 천막촌으로 혼자 형을 찾으러 나섰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것을 마지막으로 서서히 기가 꺾이기 시작했고, 유장하고 무심스런 세월의 흐름 앞엔 그렇듯 서럽고 괴로운 일들도 그럭저럭 기억이 바래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윤씨에게 그 형의 일이 까맣게 잊혀져온 것은 그가 한번 집을 떠나간 것으로 영영 소식이 끊어져버리고 만 허물이 더 컸다. 의윤 형은 그러니까 집을 떠날 때의 자신의 말대로 이후로는 다시 고향길을 찾아든 일(천막촌을 찾아간 어머니에게까지도 그랬듯 누구를 다시 찾아 만나려 한 일 역시)이 한 번도 없었다. 고향길까지는 몰라도 자기 살던 동네나 집에는 분명 그랬다. 집엘 찾아오기커녕은 편지나 풍문 속 소식 한번 전해온 일이 없었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까지 돌아가신 그 긴 세월 동안 어머니가 처음 한번 그 천막촌을 찾아간 것 외에는 이쪽에서도 맘먹고 그를 찾아본 일이 없으니 그 종적이나 형편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 20여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한 가지 괴이한 일이 있긴 했다. 아버지의 막연한 추측에 불과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진 다행히 형이 아직 살아 있거나 어쩌면 은밀히 고향길까지 다녀갔을 수도 있음직한 이상한 일이 있었다.
집 떠난 큰자식의 일을 속으로만 앓아온 그의 어머니는 그러니까 마음의 병이 그만큼 더 깊어져선지 요즘 세상에 겨우 환갑을 갓 넘긴 예순한살 나이로 아버지 먼저 세상을 떠나갔다. 큰자식 뒷소식은 여전히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대개는 그 사나운 병치레로 당신 먼저 저세상 사람이 되어갔으리라는 생각을 안고서였다.
“이제 죽어 저세상 사람이 되어 가면 네 형을 만나볼 수 있겠구나. 이렇게 에미나 제가 서로 죽어서나 찾아가 만날 수 있는 불쌍한 내 아들……”
그 어머니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그랬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나 서윤씨 자신도 대개 그렇게 생각했고, 저승에서나마 그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빌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이제는 그 어머니나 의윤 형의 일을 그럭저럭 다시 잊고 지내던 두어 해 뒤 여름께의 일이었다. 서윤씨는 대대로 조상들의 묘를 모신 선산 벌초를 갔다가 어머니 묘의 봉분 한쪽 흙속에서 뜻밖에 당신의 옛 은가락지 한 짝이 빗물에 씻겨 드러난 것을 발견했다. 그 은가락지는 원래 어머니의 유일한 패장물로 20여년 전 의윤 형이 집을 떠나고부터는 형의 종적과 함께 당신이나 집안에서 흔적이 사라지고 말았던 물건이었다. 어머니가 뒷날 산골 천막촌을 찾아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아들 에게 전해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허무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던 그 은가락지,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영영 떠나 보내는 자식에게 남의 손을 통해서나마 마지막 지녀 보낼 수 있는 것이 오직 그 한 가지뿐이었다며 두고두고 안타까워하던 당신의 마지막 정표, 그것이 어째서 거기 그런 식으로 묻혀 있다 나타났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한 가지 짐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짐작은 아버지 쪽이 훨씬 더 확연한 듯해 보였다.
“죽어 가 저승에서나 자식을 만나보겠다던 소원이더니, 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네 형 쪽 사정이 그럴 형편에도 이르지 못한 모양이구나.”
서윤씨가 그 가락지를 수습해다 아버지에게 보였을 때, 당신은 지그시 눈길을 외면해버리며 대수롭잖은 일인 듯 말했다.
“허기야 네 어미도 죽은 자식의 혼백을 만나느니보다 살아 있는 자식 지켜보는 쪽을 더 좋아할 게다만. 네 어미 혼백은 이제 그럴 수도 있을 게 아니냐. 헌데 네 형은 또 어떻게 어미 일을 알고서……”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직도 그 큰자식의 소식이나 종적보다 그 일이 더 궁금한 듯 잠시 괴이한 얼굴빛을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역시도 관심을 길게 두지 않았다. 의윤 형이 아직 살아 있든 죽었든, 그가 어떻게 어머니의 일을 알고 산소까지 다녀갔든, 당신은 그다지 괘념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무심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하루인가 이틀 뒤엔가는 심사가 새삼 어수선해진 집안의 자식에게까지 끊어 잘라내듯 일렀다.
“그 가락지 집안에 들일 물건이 아니니 다시 네 어미 무덤에다 깊이 묻어주어라. 네 형의 마음으론 그것이 제가 제 어미를 만나는 노릇 아니냐. 그리고 이젠 다 잊고 지내도록 해라. 네 형이 우리 몰래 제 어미 산소만 찾아보고 간 걸 보면 제 뜻도 그런 쪽인 게 분명할 터이니.”
서윤씨도 물론 그 아버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 아버지의 뜻대로 그 은가락지를 다시 어머니의 묘 봉분 한쪽 밑에 깊이 숨겨 묻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아버지의 당부처럼 그 일을 그만 잊고 지내려 애를 썼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 가지 예상찮은 일이 생겼다. 그 서너 해 뒤에 이번에는 아버지가 다시 세상을 떠나가신 것이었다. 그야 세수(世壽)를 그럭저럭 칠순 가까이까지 누리고 갔으니 당신의 기세(棄世)를 그리 예상치 못한 일이라곤 할 수 없었다. 서윤씨가 더 예상을 못한 일은 그 아버지의 임종시의 다짐이었다. 그 가락지 일로 하여 당신의 심기가 그렇듯 새삼 어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당신의 무관스러움과 오랜 망각의 얼굴 속엔 그만큼 더 깊은 회한이 숨겨져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거든 네 형에게도 소식을 알리거라.”
아버지는 뜻밖에 당신의 부음을 의윤 형에게 전하라는 당부였다.
“네 형이 아직 살아 있다면 필경 저 걁섬으로나 가 있을 게다. 그 섬으로 사람을 보내어 의윤이 네 형을 찾아 소식을 알리고, 제가 원한다면 이 아비의 장례에도 참예하도록 하라 해라. 이 아비까지 죽고 나면 네 형의 일로 해선 우리 집에 더 거르칠 데가 없을 거 아니냐. 그 성미에 필시 변성명을 하고 살고 있을지 모르니, 의윤을 찾다가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이쪽 아비 이름을 대보고 네 이름도 대보고……”
하지만 그 일도 형을 다시 돌아오게 하거나 찾아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노릇이 서윤씨에겐 그 형의 일을 더 쉽게 잊게 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그가 살아 있을 가능성을 의심케 하고, 연전의 가락지 일로 인한 아버지나 서윤씨 자신의 희망어린 짐작까지도 새삼 허황한 추단이 아니었는지 되짚어보게 했을 뿐이었다. 얼마 안 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윤씨는 바로 사람을 보내어 그 남쪽 해안가의 걁섬을 샅샅이 다 찾아 뒤져댔지만, 장롓날이나 삼우제를 치르기까지의 그 한 주일 동안 안의윤이란 이름을 지닌 사람이나 안병삼씨를 아버지로, 안서윤을 아우로 둔 40대 초반의 섬사람은 끝끝내 찾아낼 수도 나타나주지도 않은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의윤 형은 더욱 이 세상엔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가 아직 세상에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그의 삶과는 더이상 아무 상관될 일이 없는 사람으로 까맣게 잊혀져갔다. 그러기를 다시 20년. 그 의윤 형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래도 둘 사이엔 그 형이 집을 나갈 때 남긴 말 그대로 서로간에 전혀 다른 운명의 삶을 살아온 깊은 세월의 골을 지어온 셈이었다.
그런데 그 의윤 형의 물색이 근 50년 만에 제 아버지를 대신해 불쑥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서윤씨로선 도대체 그 일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한동안은 바로 그 눈앞의 일을 차라리 믿고 싶지가 않았다. 놀라움에 뒤이어 답답하고 난감한 생각부터 앞을 섰다. 그리고 민망하고 부끄러운 심회를 가눌 수가 없었다. 그야 따지고 보면 일이 너무 졸지에 닥쳐들어 그렇지 젊은이는 더 묻지 않아도 엄연한 그의 형의 핏줄임이 분명했다. 제 아버지를 대신해 찾아 나타난 그 조카 앞에 서윤씨가 새삼 크게 답답해하고 난감해할 일이란 없었다. 누구를 기다리거나 찾는 사람이 없느냐는 웬 젊은이의 갑작스런 물음에 그가 금세 기억이 미치지 못한 허물은 있었지만, 그밖엔 크게 죄책감을 느낄 일도 없었다. 그것도 그간의 사정이 그랬고 세월의 흐름이 그랬을 뿐 뒤늦게나마 그가 조카임이 분명해 보인 이상 이제라도 그를 반갑고 따뜻하게 감싸 맞아들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왠지 그러기가 쉽질 않았다. 그래 그는 젊은이가 함께 방으로 들어가기를 사양한 채 엉거주춤 계속 마루끝에 걸터앉아 거기까지 그를 찾아오기까지의 사연과 곡절을 우선 대충씩 털어놓고 있는 동안도 내내 그 답답하고 무거운 심사를 지울 수가 없었다.
서윤씨로선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젊은이는 실상 그 아버지의 일을(어떤 뜻에선 자신의 일까지도) 많이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래 그런지 자신의 처지나 삶에 대한 별다른 원망 같은 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적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손발 마디들이 심하게 상한 양친과 함께 그 섬에서 철없이 잘 자랐댔다. 부모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발 마디들이 상한 것은 그 섬 어른들 누구도 마찬가지 사정이었으므로 그런 걸 그리 별스럽게 생각한 일도 없었댔다. 섬사람들에겐 누구도 양친 부모 이상의 선대 어른이 없었으므로 그에게 두 사람 이외의 다른 인척이 없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로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섬 아이가 바깥세상을 처음 구경한 것은 그가 여덟살 때 아버지를 따라 육지로 나와 어느 마을 앞산골을 찾아가 아버지와 함께 새 무덤 앞에 몰래 성묘를 하고 돌아갔을 때였는데, 그때도 그는 그 뭍사람들의 모습이나 자신에게 웬 뭍세상 친척(비록 죽은 무덤으로나마)이 있었다는 사실이 부럽고 반갑기보다 오히려 낯설고 서먹하기만 했다고. 그리고 그래서 다음번 몇년 뒤에 다시 한번 아버지와 같은 마을 부근엘 찾아 들어갔을 때도 그런 서투름과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아버지를 졸라 서둘러 섬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그리고 그 10년쯤 뒤 아버지가 그간의 독한 약화로 간경화 증세가 깊어져 50대 중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리고 이후 다시 10여년 세월 동안도 그 섬에서 남은 어머니와 나름대로 탈없이 잘 살아오고 있었다고……
의윤씨는 그러니까 생전에 그 아들과 함께 고향 마을 산소엘 두 번이나 다녀간 셈이었다. 먼저 한 번은 당시에 이미 그 가락지 일로 짐작했던 대로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한두 해 뒤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의윤씨는 뒤늦게나마 어디서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듣고 무덤을 찾아온 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저를 데리고 뭍길을 나서시며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나는 병을 앓고 있어 앞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너도 이제는 네 고향 동네가 어딘지, 조상님들의 선산을 어디 모셔 두었는지 알아두는 게 좋겠다. 너한텐 찾아뵐 만한 가까운 어른이나 인척들이 계시다는 것도……”
여덟살 어린 나이로는 뜻을 잘 새겨들을 수 없었겠지만, 어언 30대가 된 조카아이는 아직도 그런 아버지의 말만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룻만에 그 고향 마을 선산엘 당도할 때까지도 그 아버지의 말 속엔 분명 ‘할머니’의 죽음이 없었던 걸로 기억했다.
“아버님께서 할머님이 돌아가신 것을 아신 것은 그 선산 아래쪽에 잔디가 그리 오래지 않은 낯선 무덤이 새로 들어선 것을 보고서였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버님은 무슨 근거로 그런 단정을 내리셨는지 그 무덤을 보자마자 바로 무너지듯 놀라 엎드리시며 어머니 어머니 통곡을 하셨지요.”
그리고 의윤씨는 길고 긴 통곡 끝에 언제부턴지 품속에 깊이 간직해온 예의 은가락지를 꺼내어 ‘이제는 이 불효자가 어머님 곁으로 갈 때까지 어머님이 이것을 대신 맡아 간직해주시라’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하직인사와 함께 그 무덤 봉분 한쪽 밑에 그것을 깊이 묻어드리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의윤씨는 그때 사실 그 아버지의 짐작처럼 생자와 사자간의 해후가 아니라 죽은 어머니의 혼백에 대한 이승의 아들로서 더한층 애달픈 하직인사를 치른 것이랄까……
그런데 그 부자가 두번째로 다시 고향 고을을 찾은 것이 서윤씨에게는 좀더 뜻밖이었다. 다름아니라 그것은 그가 당신의 유언대로 부음을 전하려 그렇듯 애를 썼어도 끝내 허사가 되고 말았던 그 아버지의 초상 때였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진짜 함자가 안영훈이 아니라 안의윤씨라는 걸 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때까진 그걸 전혀 의심해본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아버님 쪽에선 그때 물론 조용히 모른 척하고 계셨을 뿐, 할아버님이 돌아가신 것도, 그 일로 사람이 와서 당신을 찾는다는 것도 다 알고 계셨지요. 그 사람이 아직도 당신을 찾고 있는 동안 아버님은 그 장롓날에 맞춰 다시 저를 데리고 섬을 나와 이곳으로 왔으니까요.”
조카아이는 이번에도 그 두번째의 일을 남의 일처럼 담담한 어조 속에 차근차근 되새겨나갔다.
“하지만 아버님은 이번에도 장례가 치러지는 마을까지는 가까이 들어가려 하질 않으셨지요. 마을 뒷산 숲속에 새벽부터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가 오정 때쯤 되어서 상여가 집을 나와 동네 노제를 지내고 다시 천천히 산으로 올라가 선산터 산역이 끝날 때까지, 이따금 한숨기 속에 하염없이 눈길만 좇고 계실 뿐이었어요. 그러다 이윽고 산일도 다 끝나고 주위가 조용해진 석양녘이 되어서야 당신은 말없이 숲속을 빠져나와 그 길로 섬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그 아버님이 하도 안되고 답답해 보여 섬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가 한마디 물었어요. 아버님은 여기까지 와서 어째서 아직 마을엔 들어가실 수가 없냐고요. 사람까지 보내어 부음을 알린 할아버님 장례를 그렇게 멀리서 숨어 보아야만 하느냐고요. 아버님이 간단히 몇마디 하시더군요. 나는 살아생전에 찾아갈 수 없는 곳이요, 찾아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때가 되면 나중에 너라도 찾아가보라고 길을 함께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이 열두살밖에 안된 제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깊이 헤아릴 수가 있었겠어요? 그때가 언제인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그저 아버님처럼 저한테도 그런 일은 있을 것 같지가 않았지요. 아버님의 내림처럼 제게 그런 때가 오기를 바라기커녕 그저 한시 바삐 섬으로 돌아가고 싶기만 했지요. 그리고 다시 긴 세월 뭍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우리끼리 우리 식으로,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는 그 아버님과 함께 셋이서,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어머님과 둘이서 그럭저럭 잘 살아나갔지요. 그런데 오늘 결국엔 이렇게 여길 찾아오게 됐군요……”
조카아이는 여전히 그런 일이 자신에겐 아무것도 중요할 것이 없다는 듯, 어찌 보면 황량스러울 정도로 메마른 어조 속에 자신이 보고 들은 그간의 사연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간간이 잇사이를 새어나오는 가는 한숨소리마저 그간의 제 척박한 삶에 대한 야속한 마음에선지 아니면 자신이 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고향 동네를 찾아온 것을 뒤늦게 후회해선지 분간이 안 갈 만큼 담담하고 방심스런 술회였다.
하지만 서윤씨로선 들을수록 가슴 아프고 답답한 이야기였다. 고향집 어머니의 생사조차 모른 채 어린 자식을 위한 선산길을 몰래 찾아든 병깊은 아비와, 철모르는 나이에 그 아비의 이승의 무거운 짐을 이어 지게 된 어린 아들. 이승에서의 마지막 하직인사로 품속의 은가락지를 저승 어머니의 혼백 앞에 되돌려드리고, 그것으로 모자간 사후의 재회를 약속하고 돌아간 자식과, 오래잖아 자신이 옮겨 이어 지게 될 그 아비의 이승의 짐 앞에 아무 두려움이나 불평이 없는 어린날의 그의 아들. 그래 오히려 그 뭍세상을 등지고 서둘러 그의 섬으로 돌아가기만을 원했던 헐벗고 가엾은 생령. 고향집 아버지의 부음을 접하고도 짐짓 멀리서 상엿길만을 숨어 지켜보고 간 아비와 아직도 그 뭍세상 일과는 아무 상관을 못 느낀 채 무심히 섬으로 그 아비를 따라 들어가고 만 열두살 그의 어린 아들. 그리고 그 섬살이에 이골이 져 나타난 그의 성장한 조카아이의 남루하고 황량한 모습. 서윤씨는 그 부자의 모든 것에 그쪽 일을 오랜 세월 잊고 살아온 일보다 더욱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일고 있었다. 아니 이젠 이미 그 의윤씨가 이승의 짐을 벗어놓고 저세상 사람이 되어 가버린 탓인가. 서윤씨는 이제 그 형님 의윤씨의 일보다 눈앞의 조카 꼴이 더욱 가슴아프고 안타까웠다. 녀석은 그 행색이나 표정이 좀 초췌하고 지쳐 보일 뿐 외모는 그런 대로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체격에 물색까지 영락없는 그의 집안 혈육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제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살이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했고, 거꾸로 뭍세상 일을 외면한 채 제 섬살이만을 만족해하고 있었다. 서윤씨는 그런 녀석이 가까운 혈육커녕 웬 별종의 인간처럼 낯설고 서먹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더욱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 했다.
한데다 녀석이 이제서야 뒤늦게 제 아버지의 고향 마을길을 찾게 된 연유가 그의 마음을 더한층 무겁게 하였다.
의윤씨는 자신의 죽음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마지막 유언 삼아 그의 고향 집과 가계에 관한 일들을 모두 일러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집을 나와 2,3년 뭍세상길을 떠돌다 드디어는 제발로 섬으로 들어와 정착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털어놓고, 자기가 죽거든 아들에게 그 고향집을 한번 찾아가보라는 당부를 남겼다.
“내가 죽고 나면 그것으로 우리 집안에 드리워졌던 액운의 장막도 끝장이 나게 된다. 너도 그것으로 더이상 이 아비나 이 섬의 숙명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 너는 애초부터 내 병이나 이 섬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이 아비 때문에 이곳에 붙잡힌 무고한 피해자일 뿐이다. 너는 이제 누구도 허물할 일이 없는 떳떳한 젊은이다. 그러니 내 장례를 치르고 나면 너는 내 덕산리 고향 마을로 숙부를 한번 찾아가보아라. 찾아가 숙부와 새 인생길을 의논해보도록 하거라.”
하지만 의윤씨가 죽고 나자 아들은 그 아버지의 유골을 섬사람들의 내세의 집 ‘만령당’에 함께 안치하고 좀처럼 덕산리 고향 마을로 숙부 서윤씨를 찾아나서려 하지 않았다.
“아버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저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제게는 그 섬에서 살아온 이때까지의 제 인생살이 길을 굳이 고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태어나지도 않은 아버님의 고향 마을이나 얼굴 한번 본 일이 없는 숙부님을 찾아뵐 일도 없었지요.”
조카녀석은 그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듯 별 굴곡을 느낄 수 없는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 아들이 있었으니 의윤씨의 죽음 뒤에는 그가 인생의 모든 것을 단념하고 섬으로 들어가 짝을 맺어 살아오고 아들 자식을 낳아 기른 녀석의 어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미가 끊임없이 그를 졸라댔다. 어미 역시 죽은 남편의 유언대로 그 아들을 섬에서 내보내 새 인생길을 열어 살기를 두고두고 소망했다.
“네가 몰라 그렇지 이것은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다. 너만 이 섬을 나가준다면 이 에미는 그것으로 다른 아무 여한이 없을 게다. 그것으로 편안히 마지막 눈을 감을 수 있을 게다. 아버지의 고향에 작은댁 사람들이 계시니 길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하지만 아들은 그 어미의 간절한 소망마저 끝내 외면을 하고 지냈다. 그리고 다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근자 들어 그가 생각을 바꿔먹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나이 예순살을 넘어선 그의 어미 역시 그간의 약화로 병이 많이 깊어 여명(餘命)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처지에 그 아들에 대한 새 성화가 시작된 것이다.
“내 앞날이 길지 못한 것은 너도 아는 일이다. 나는 네 아버지처럼 이 섬귀신들이 우글거리는 만령당으로는 안 간다. 살아선 섬살이를 체념하고 살아올 수밖에 없던 인생이 죽어 귀신이 되어서까지 그곳으로 다시 갇혀 들어가야겠느냐. 이제는 네가 하루라도 서둘러 네 아버지의 뼈를 고향 선산으로 옮겨 모시고, 내가 죽거든 내 뼈도 그 곁에 함께 묻도록 해라. 너야 어쨌든 이 에미 애비만은 죽어 혼백으로나마 이 섬을 나가고 싶으니.”
“이번에 제가 이렇게 여길 찾아온 것은 그래서 아버님과 어머니의 묘지 일을 의논드려보려 해서였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부모의 묘지터 일로 제 아비의 옛 고향 마을과 고향집 사람을 찾아오게 되었노라는 마지막 고변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거기서도 물론 별다른 기대나 확신을 못 갖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간의 일에 대한 무슨 원망기나 요구의 빛 같은 건 더더욱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 간간이 눈길 속에 내비치던 뜻모를 비웃음기나 도발기 같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말끔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그간의 자기 인생사 모든 것을 지극히 온당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서윤씨는 그럴수록 더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그리고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쉽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서윤씨로선 당연히 돌아가신 형님의 유골을 서둘러 고향 선산 아래로 옮겨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가엾은 형수의 뒷일을 위해서도 그 일을 하루바삐 서둘러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살아남은, 고인의 아우가 된 도리로 나이먹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의 형님이 생전의 마지막 소망을 묻고 갔고, 병든 형수가 그토록 갈망해온 조카아이 일에는 본인 자신도 별 관심이 없었고, 서윤씨로서도 전혀 속수무책 꼴이었다. 죽은 형님에게나 살아 있는 형수에게나 그 만령당의 유골을 선산으로 옮겨 묻는 일은 그 당자들보다 녀석과 녀석의 앞날을 위해 더 큰 뜻이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태도나 심지가 그런 식이고 보니 서윤씨는 도대체 그런 녀석과 제 아버지의 이장 일을 어떻게 의논하며, 그것이 녀석에게 무슨 뜻이 있을 일인지, 게다가 녀석의 새 인생길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 열어나가야 할 것인지, 그로서는 섣불리 엄두조차 내볼 수가 없었다.
서윤씨는 다시 한동안 더없이 난감하고 침통한 느낌에 휩싸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은 오랜 세월 섬 안에 붙박이로 갇혀 살아온 녀석의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깊은 불신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신감과 두려움은 상상 이상으로 뿌리가 깊고 완강했다.
“그래, 내가 이제 와서 네 아버지나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네 아버지의 유골이나마 하루빨리 이곳 선산으로 옮겨 묻어드리는 일뿐인가 보구나. 그러니 오늘이라도 어디 새 묏자리를 잡을 만한 데가 있는지 한번 산엘 가보겠느냐?”
서윤씨가 고심 끝에 한숨기 섞어 말하고 그 조카를 건너다보았을 때였다.
“내키지 않으시다면 굳이 그러실 필요 없을 텐데요.”
여태까지 그 무기력하기만 하던 태도와는 달리 녀석이 이번에는 서윤씨의 제의를 노골적으로 되받아왔다. 얼굴을 짐짓 절반쯤 외면한 눈길에서도 모처럼 역력한 비아냥과 도발기가 느껴져왔다. 그리고 거기서 서윤씨는 문득 녀석에 대해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냐? 내키지가 않다니. 그 일은 네 아버지의 일일 뿐 아니라 내 돌아가신 형님의 일이기도 하다.”
서윤씨가 모처럼 정색을 하고 나무라는 소리에 녀석은 이번에도 수긍의 대꾸 대신 새삼 또 엉뚱한 소리를 묻고 나섰다.
“돌아가신 제 아버님이 정말 어르신의 형님이 되는 분이신 건 분명합니까? 또 제가 정말 어르신의 조카인 건 맞습니까?”
연거푸 따지고 드는 녀석의 소리에 서윤씨도 제풀에 다시 어정쩡한 해명조 대꾸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너 무얼 의심하고 있는 거냐? 내가 지금 네 아버지의 유골 이장을 위해 묏자리를 살피러 가자는 소리를 듣고도 그걸 아직 모르겠단 말이냐? 지금 와서 도대체 무얼 그리 의심한단 말이냐.”
“그야 속마음은 아니면서도 마지못해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섬에서 나서 섬에서 이 나이를 먹어오고, 집을 떠난 후론 한 번도 그 고향집에 다시 얼굴을 내밀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의 일을 알고 있는 제가 그걸 어떻게 금세 믿어버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른께서 설령 그 유골을 선산으로 받아들여주신다 해도 아버님은 이미 당신의 말씀대로 이승의 일이 다 끝나고 떠나가신 저세상 사람이 아닙니까. 그게 아버님께 무슨 뜻이 있는 일이래도 그것은 아버님 당신의 일일 뿐 제 일은 아닌 거구요. 저는 아직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숫제 패악투 항변을 늘어놓다 말고 그도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듯 갑자기 말을 끊은 채 자기도 모르게 거칠어진 숨결을 가다듬고 있었다.
서윤씨도 이젠 더 무슨 대꾸를 이으려다 말고 그쯤에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모처럼 열이 오른 녀석의 패악투에 서윤씨는 비로소 녀석의 깊은 본심이 역력히 짚여왔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이미 서윤씨가 짐작해온 것 이상으로 바깥세상과 그 바깥 사람들의 일을 겁내고 있었다. 녀석이 그토록 제 어미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한 채 그를 찾아오기를 꺼려해온 것도 실은 그 고향 사람들과 고향에서의 일들을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고향 고을의 인척이 그 아버지나 자식을 두고 제 형님이나 조카가 아니랄까봐, 제 핏줄이 아니랄까봐, 그걸 의심하고 겁내온 때문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제 핏줄을 알아봐준 숙부 서윤씨의 말조차 믿으려 하지 않고, 제 아비의 유골을 선산으로 옮겨 묻는 일조차 새삼 부질없어하였다. 녀석으로선 어쩌면 그도 당연한 일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녀석의 본심이 아니었다. 손쉬운 말응대나 겉시늉이 아니라 녀석은 이쪽의 편안하고 그윽한 마음을 원하고 있었다. 제 아비의 고향 고을을 굳이 ‘이곳’이나 ‘여기’라 말하고, 제 숙부를 늘 ‘어른’이라 부르고, 그리고 끝끝내 방안으로 들어가기를 마다한 채 마루끝 자리를 고집해온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었음이 분명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갑작스런 항변조나 순간순간 그 눈길을 스쳐가던 세찬 비아냥과 도발기 같은 것이 거꾸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녀석에게는 말이나 일을 믿게 할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서윤씨는 그것을 새삼 뼈아프게 느꼈다. 그리고 그간의 사정이 어쨌든 그 형님네의 일을 무심히 묻어두고 지내온 그의 지난 세월에 대해 새삼 더 뜨겁고 무참스런 회한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서윤씨로선 녀석에게 그의 속마음을 전할 길이 없었다. 마음이 깊이 웅크려든 조카의 그 숨은 소망을 감당할 길이 안 보였다. 형 의윤씨의 유골 일은 어떻게든 자신이 마무리를 지어줄 수도 있었지만, 단순하고 순박한 만큼 마음이 헐벗은 그 조카의 앞일은 길이 전혀 안 보였다. 그래 여태까지 부엌방 쪽 마루끝에 걸터앉아 둘 사이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다 때마침 자신도 무슨 말을 보태고 싶은 듯 스적스적 자리를 옮겨오는 아들아이를 두고 그 무거운 숙제 뭉치를 떠넘기듯 질책기 섞어 말했다.
“그래, 너희는 서로 사촌간이로구나. 그러니 내게 정 믿음이 안 간다면 저 길동이한테 너희가 사촌간이냐 아니냐 물어봐라 이놈아. 그것이 네가 여기까지 마음속으로 물으러 온 말이 아니냐. 이제 와서 그것도 물어보기가 싫다면, 어디 너하곤 사촌간도 뭣도 아니라 말해보거라.”
◇ 이청준(李淸俊, 1939~2008)
전남 장흥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에 『사상계』 신인상에 「퇴원」으로 당선되었다. 초기의 작품 「병신과 머저리」(1966), 「굴레」(1966), 「석화촌」(1968), 「매잡이」(1968) 등에서 현실과 관념, 허무와 의지 등의 대응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한다. 그는 경험적 현실을 관념적으로 해석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발표한 주요작품으로는 「소문의 벽」(1971), 「조율사」(1972), 「떠도는 말들」(1973), 「당신들의 천국」(1974), 「이어도」(1974), 「자서전들 쓰십시다」(1976), 「잔인한 도시」(1978), 「살아 있는 늪」(1979) 등이 있다. 이 소설들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정신의 대결관계이다. 특히 언어의 진실과 말의 자유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이른바 언어사회학적 관심으로 심화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거치면서 「잔인한 도시」에서 닫힌 상황과 그것을 벗어나는 자유의 의미를 보다 정교하게 그려내기도 하고 「살아 있는 늪」에서는 현실의 모순과 그 상황성의 문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사실성의 의미보다는 상징적이고도 관념적인 속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청준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보다 궁극적인 삶의 본질적 양상에 대한 소설적 규명에 나서고 있다. 「시간의 문」(1982), 「비화밀교」(1985), 「자유의 문」(1989) 등에서 그는 인간존재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의 의미에 집착을 보인다. 인간존재와 거기에 대응하는 예술 형식의 완결성에 대한 추구라는 새로운 테마는 예술에 대한 그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 작가는 대표적인 1960년대 세대이면서도, 1970~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세계를 갱신하고 넓혀간 점이 주목된다. 그의 소설은 지적이면서도 관념적이지 않고, 세계의 불행한 측면들을 포착하면서도 그 이면을 냉정하게 응시하려 한다.
또한 그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충일한 무게를 가지고 있어, 줄거리만을 훑어보는 식의 안이한 독법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집 『소문의 벽』후기에서 소설 쓰기를 ‘자기 구제의 몸짓’이라 불렀다. 여기에서 자기를 구제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글쓰기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 내외적 조건들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소설이라는 언어와 언어 그 자체에 관한 반성을 낳는다. 그의 소설에서 흔히 구사되는 액자소설의 기법이라든지 추리소설적인 요소, 또한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관심들은 이러한 반성적 사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1967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13회 동인문학상을, 1978년에는 「잔인한 도시」로 제2회 이상문학상을, 1985년에는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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