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해야 구럭망태 - 조존성(趙存性)
兒孩야 구럭망태 어두 西山에 날 늦거다
밤 지난 고사리 하마 아니 늙으리야
이 몸이 이 푸새 아니면 朝夕 어이 지내리
[뜻풀이]
*아해(兒孩): 나이가 어린 사람을 이르는 말.
*구럭망태: 구럭은 섬따위같이 물건을 담기위하여 새끼로 그물뜨듯 드물게 걸어서 만든 것. 망태는 망태기의 준말로서, 새끼나 노끈으로 조밀하게 짜서 만든 푸대모양의 그릇.참외 구럭,저자망태가 그 보기이다.
*어두: ‘거두어라’의 ‘거두’에서 ㄱ이 떨어지고, 다시 ‘어라’가 생략되었다고 보는 이와, 한편 ‘찾으소’의 옛말이라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늦거다: ‘늦을 것이다’를 힘주어 한 말.
*하마: 이미, 벌써의 옛말.
*늙으리야: ‘늙을 것이냐?’의 옛 말투. 자랐을 것이냐?
*푸새: 산나물. 풀과 새(草)의 합성어이다.
*조석(朝夕): 조석반(朝夕飯)의 준말.
[풀이]
얘야, 어서 구럭이든 망태기든 찾아서 메어라. 서산을 바라보니 해가 벌써 기울구나! 어제 뜯지않고 남겨 놓았던 고사리가 한밤을 지냈으니 아니 자랐겠느냐? 내가 그런 산나물을 먹지않고서야 어떻게 아침 저녁으로 반찬거리를 장만하겠느냐?
[지은이]
조존성(趙存性: 1554~1628): 본관(本貫)은 양주(楊州). 자(字)는 수초(守初), 호(號)는 정곡(鼎谷)·용호(龍湖). 아버지는 용인현령 준수(俊秀)로, 남(擥)에게 입양되었다. 성혼(成渾)·박지화(朴枝華)에게 배웠다. 1590년(선조2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이듬해 대교에 올랐다가 정철(鄭澈)의 당이라 하여 파면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고향에 있다가, 이듬해 의주의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대교로 복직되었다. 이어 전적·예조좌랑·정언 등을 역임하고,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병부상서(兵部尙書) 석성(石星)에게 조선에서의 명군 철병론을 철회하게 하여 그 공으로 직강이 되었다. 그 후 호조정랑을 거쳐 1595년 해운판관(海運判官)이 되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군량 운반에 공을 세웠다. 그 뒤 강화부사·충주목사·단산군수를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1613년(광해군 5) 생모추존(生母追尊)을 반대하여 파직당했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에 형조와 호조의 참판,동지돈녕부사, 부총관등을 역임했다. 1624년(인조2) 어영부사(御營副使)가 되었으며,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공주로 호종했다. 난이 평정된 뒤에 지중추부사 겸 지의금부사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 갔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분조(分朝)의 호조판서로 세자를 따라 전주에 갔다가 돌아와 병으로 죽었다. 시조 4수가 《해동가요》에 전한다. 시호는 소민(昭敏)이다.
[참고]
구럭과 망태를 찾아가지고 산으로 나물을 캐러 떠나는 은사의 생활을 그린 시조이다. 고사리를 캐먹고 산다는 것은 은사의 검소한 생활을 상징한 것으로, 고시조에 많이 등장함을 본다. 이 시조에도 모든 세속의 물욕을 떠나 안빈낙도하는 작가의 심정을 고사리로 끼니를 잇는다는 것으로써 나타낸 것이다. 호아곡(呼兒曲) 사조(四調) 중(中)의 「동번관어(東藩觀魚)」로서, 한역시(漢譯詩)는 다음과 같다.
호아선문유무광(呼兒先問有無筐)
회수서산만일장(回首西山晩日長)
파야래미궐로지(怕夜來薇蕨老只)
지연조석불영장(只緣朝夕不盈膓)
[출처] 원문보기
https://blog.daum.net/thddudg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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