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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알 듯 모르는 콩꼬투리, 콩깍지, 콩꺼풀 (2021.10.29)

푸레택 2021. 10. 29. 21:38

[우리말 산책] 알 듯 모르는 콩꼬투리, 콩깍지, 콩꺼풀

‘배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의심받을 행동을 피하라는 소리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이 말은 원래 중국 양나라의 소명태자가 엮은 시문집 <문선(文選)>에서 나온 말인데, 여기에서는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즉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원을 살피면, 갓을 고쳐 매지 말아야 할 곳은 ‘배나무 밑’이 아니라 ‘오얏나무 밑’, 즉 ‘자두나무 밑’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속담 등에서 중요한 것은 글자의 의미가 아니라 글 속에 담긴 뜻이다. 자두나 배 모두 훔쳐서라도 먹고 싶은 맛난 과일이므로, “오해를 받을지 모르는 일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자두’와 ‘배’ 아무것이나 써도 상관없다.

우리 속담에는 이처럼 꼼꼼히 따지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두루 통하는 표현들이 많다. ‘얌전한 ○○○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는 말도 ‘○○○’에 들어갈 말로는 고양이보다 강아지가 원뜻에 가깝다. 고양이는 높은 부뚜막도 쉽게 오르내리지만, 강아지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담에선 뭐를 쓰든 상관없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도 마찬가지다. ‘콩깍지’는 “콩꼬투리에서 콩을 털어 내고 남은 껍질”로, 이것을 눈에 갖다 대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의미보다는 ‘뭔가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보다 ‘눈에 콩 꺼풀이 씌었다’는 표현이 좀 더 논리적이다. 콩을 불리면 벗겨지는 ‘콩 꺼풀’은 반투명해서 그것이 눈에 씌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흐릿하게 보인다. 그러기에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못지않게 ‘눈에 콩꺼풀이 씌었다’도 널리 쓰인다.

결국 ‘콩깍지’든 ‘콩꺼풀’이든 사람들이 같은 의미로 공유하고 있으므로 뭐를 쓰든 상관없다. 다만 ‘씌었다’를 ‘씌였다’와 ‘씌웠다’로 써서는 안 된다. 한글맞춤법에 어긋난다. (글=엄민용 기자)

[출처] 경향신문 2021.05.31

/ 2021.10.29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