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의 나무 / 윤대녕 소설가
나에겐 불행하게도 스승이 없다. 때문에 스승을 둔 사람들을 몹시도 부러워하며 살아왔다. 그것도 타고난 운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지복임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달았다. 삶의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단 한마디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부러운 마음을 품었다. '나는 고독한 팔자구나'라고 생각했다.
단 한 사람, 내게 삶의 영감을 준 사람이 있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졸업을 한 뒤로 사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뵌 적이 없으니, 스승과 제자 관계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힘이 들 때면 늘 그분이 한 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교실에서 마지막 종례를 했다. 밖에는 눈이 퍼붓고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선생님이 이윽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모두 운동장을 내다보아라.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운동장 끝을 보거라. 버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돌려 운동장 끝에서 눈을 맞고 서 있는 커다란 버즘나무를 바라 보았다. 선생님이 말을 계속했다.
"어느 날 내가 할생에게 말했다. 저기 나무가 있는 곳까지 똑바로 걸어가 보라고. 한 학생은 발밑을 내려다보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중간쯤에 이르러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에서 한참 벗어난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한 학생은 처음부터 나무를 똑바로 바라보며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나무가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교실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학생도 있고 모르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만을 꼭 기억해 두거라."
나는 선생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학생처럼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이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어려운 고비에 처힐 때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가슴에 일념을 품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도뇌곤 했다. 비록 외로운 팔자이긴 하더라도 말이다.
아직 살아 계시면 그분은 여든쯤 됐을 터이다. 기적처럼 연락이 닿게 되면 꼭 한번 뵙고 싶다. 결국엔 그분이 내 인생의 스승 역할을 해 주셨으니 말이다.
/ 2021.10.28(목)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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