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한 본능 / 김규련 수필가
동해안 백암(白巖) 온천에서 눈이 쌓인 주령(珠嶺)을 넘어 내륙으로 들어서면, 산수가 빼어난 고원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가 겨우내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 첫 고을인 수비면(首比面)으로, 대구(大邱)에서 오자면 차편으로 근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이다.
마을이라고 하지만, 여기저기 산비탈에 농가가 몇 채씩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난한 자연 촌락이다. 이 근방에는 천혜(天惠)의 절경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 고장 사람들 자신이, 그 절경을 이루는 웅장한 산이며 기암 절벽이며 눈 덮인 수림이며 산새며 바람 소리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이들의 주된 생업은 채소(菜蔬) 농사와 담배 농사지만, 철 따라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송이버섯을 따들이기도 한다. 이쩌면, 바보가 아니면 달관한 사람만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첩첩 산중의 마을이다.
어느 해 봄, 이 마을에 뜻밖의 황새 한 쌍이 날아 들어왔다. 꿩이나 산비둘기가 아니면 부엉이나 매 같은 산새들만 보아 온 이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 황새가 신기했다. 희고 큰 날개를 여유 있게 훨훨 흔들며 노송(老松)의 위를 짝을 지어 유유히 날아 다니는 품이 정말 대견스럽다. 붉은 주둥이와 긴목, 새하얀 털로 덮인 날개 밑으로 쭉 뻗어 내린 검붉은 두다리, 황새의 자태는 과연 군자의 모습이었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지는 늦은 봄의 오후, 마을 사람들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황새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이들은 그 황새가 길조(吉鳥)라고 믿고, 무엇인가 막연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금년엔 찻길이 뚫리겠지, 올해는 꼭 전기가 들어오겠지 하고......
그런데 변이 생겼다. 낙엽이 질 무렵의 어느 날 아침, 이 마을을 지나가던 밀렵군이 그 황새를 보고 총(銃)을 쏜 것이다. 총소리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먹다 말고 황새 둥지가 있는 노송 숲으로 뛰어 모였다. 밀렵꾼은 도망을 가고, 황새 한 마리가 선지피를 흘리며 마른 억새풀 위에 쓰러져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어디로 날아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 며칠 뒤였다. 밤 바람이 일기 사작했다. 지창(紙窓)에 갈잎이 날려와 부딪혔다. 그런데 조금은 귀에 익은 황새의 울음소리. 탁탁탁 타르르 탁탁. 사랑방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은 가슴을 도리는 듯한 이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 말없이 마당으로 나왔다. 가을 밤, 밤 하늘에 찬란한 별들, 그 별빛에 흰 깃을 번쩍이며 황새 한 마리가 물레방앗간 주위를 이리저리 애타게 날고 있지 않은가. 총 소리에 놀라 도망갔던 황새가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황새는 인제 인간이 두려워서, 쓰러져 누워 있는 자기의 짝한테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진 마을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 주려고 저마다 묵묵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황새는 연신 부리가 멍들어 부서지도록 울어댔다. 탁탁탁 타르르 탁탁...... 그날 밤엔 늦도록 화전민 후예들의 지붕 밑에 호롱불이 꺼지질 않았다.
며칠 뒤, 무서리가 몹시 내린 어느 날 아침, 기이(奇異)하고 처참한 변이 또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도 알뜰히 보살펴온 그 한 쌍의 황새가 서로 목을 감고 싸늘하게 죽어 있지 않은가. 마을 사람들은 이 슬픈 광경을 보자 숙연해졌다. 그리고 저마다 무엇을 느꼈음인지 착잡한 심정으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황새도 영물(靈物)일까?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떠날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鳥類)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愛情)이 별스러운 놈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생태요, 본능(本能)이라 했다. 그러나 하찮은 그 본능이 오늘 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창 : 종이로 바른 창문
*영물 : 신령스러운 동물
[이해와 감상]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실제 있었던 황새 한쌍의 죽음을 이야기한 글이다. 문명과 자연의 충돌, 가난한 산골 화전민의 무력과 총 가진 도회의 밀렵꾼의 폭력성을 대비해 볼 만하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지는 늦은 봄의 오후' 같은 묘사는 평이한 이 글에 색채를 띠워준다.
영양군 수비면에는 아직도 태고의 원시를 간직하고 있는 동네가 많다. 사람들의 사는 방식도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송이를 다는'식이 여태 계속되고 있다. 그런 원시가 점점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개발만이, 현대화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이고 위로였던 황새가 한 몰염치한 총쟁이의 장난질에 죽고 만다. 그 짝도 슬픔 때문에 따라서 죽어 버린다'가 이 이야기의 기본 틀이지만, 이것은 개발이, 자연과 원시의 건강성을 파괴하는 슬픔으로도 읽힌다.
지은이 김규련은 한때 영양군 교육장을 지낸 적이 있다. 이 글은 아마 그 무렵 쓰여진 듯하다. 글의 말미에 주제라고 해도 좋은 지은이의 감상이 토로되고 글의 들머리는 기행문의 형식과 흡사하다. 인도주의와 자연에 대한 사랑, 파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읽어내면 대개 무리가 없을 글이다.
/ 2021.10.2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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