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골버스의 향수
오래전 시골의 허름한 버스정류장에서는 한 번 버스를 놓치면 몇 시간이고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그런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 앞에 한 군인이 손을 흔들고 서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아니었지만 버스 기사는 흔쾌히 군인을 태웠고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출발해야 할 버스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질 대로 달궈진 찜통 버스 안에서 슬슬 짜증이 난 승객들이 버스 기사에게 얼른 출발하라고 재촉하는데 버스 기사는 “저기...” 하며 눈으로 창밖을 가리켰습니다. 버스 기사의 시선을 따라 간 승객들은 한 여인이 버스를 향해 열심히 뛰어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여인은 어린 아기까지 업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승객들은 에어컨도 없는 찜통 같은 버스 안에서 손부채를 흔들며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도 누구 한사람 불평하지 않고 여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마침내 버스까지 도착한 여인이 버스를 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기사가 얼른 타라고 말했지만 타지 않는 여인에게 더위에 지쳐가던 승객들이 짜증을 낼 수도 있던 순간, 계속 버스 창문만 쳐다보던 여인은 좀 전에 탄 군인을 발견하고 창문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족 걱정하지 말고 몸성히 잘 다녀오세요.”
“날씨도 더운데 힘들게 왜 여기까지 왔나. 걱정하지 말고, 내 건강히 잘 다녀올게.”
아쉬움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고 유쾌한 웃음으로 두 사람을 응원했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더 빠르고 더 편해진 요즘은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버스에는 언제나 에어컨이 켜져 있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탈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버스의 에어컨이 켜지지 않거나 출발 시간을 지체하면 누구도 허허 웃으며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조금 불편해도 사람들 간의 정으로 움직이는 무언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ㅡ 헬렌 켈러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2. 유기견 리리카
브라질 상파울루 폐품 처리장에 '리리카'라는 이름의 개가 살고 있었습니다. 리리카가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것으로 보아 예전 사람의 손에 길러지며 훈련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왜 지금은 주인 없이 살고 있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폐품 처리장에서 3.2km 떨어진 곳에 사는 여성 루시아 헬레나드 수자 씨는 리리카를 친구처럼 생각해 만날 때마다 음식을 준비해 주었는데 제법 덩치가 큰 리리카는 늘 배가 고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받은 음식을 절대로 한꺼번에 다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자 씨는 여전히 음식을 남기는 리리카를 보고 혹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나 싶어 남은 음식을 가방에 싸주었습니다. 그러자 리리카는 음식이 담긴 가방을 물고 폐품 처리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자 씨는 이번엔 리리카가 남은 음식을 잘 가지고 가는지 걱정되어 리리카를 뒤따라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리리카가 음식이 든 가방을 가지고 폐품 처리장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다른 개와 고양이, 닭 등의 동물들이 모여들더니 리리카가 가지고 온 가방 속의 음식을 나누어 먹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리리카는 그렇게 매일 왕복 6km가 넘는 길을 걸어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면서 보살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기 동물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던 소중한 생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물들을 기르던 사람들은 주던 사랑을 잊고 비정하게 동물들을 유기했습니다. 그러나 리리카는 비록 동물이지만 한때 받았던 사랑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ㅡ 제인 구달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3. 아이에게 남은 희망
한 마을에서 어린아이 한 명이 사라졌습니다. 때가 되면 집에 들어오려니 했던 아이는 해가 지고 밤이 지나 날이 바뀌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구석구석 찾았지만 마을 안 어디에서도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기온이 떨어지는 계절이라 아이가 험한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렇게 걱정스런 마음으로 며칠이 지나고 다행히 며칠만에 아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아이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마른 우물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제법 깊은 우물이었고 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친 아이가 구해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아무도 아이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그 우물은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그 존재를 잊고 있었고 따라서 그곳에 빠진 아이를 늦게 찾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를 찾아 안도한 사람들은 어둡고 추운 우물 안에서 며칠씩이나 버틴 아이를 생각하자 측은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짠해졌는데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아저씨. 우리 엄마 왔어요? 엄마 오기만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 물었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우물에 빠진 아이는 자신의 엄마가 반드시 자기를 구하러 오리라 굳게 믿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몸이 묶여있다 해도 그 끝을 당신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붙잡고 있다면 결코 무섭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절망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독제는 믿음이다.” ㅡ 키르케고르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4. 위기는 기회다
연극 무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찬사를 받는 주연배우가 있는가 하면 조명 등 그리고 무대 뒤에서 배우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대사를 읽어주는 수습생까지, 참여한 모두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공연을 펼칩니다. 그런데 오래 전 미국의 한 극장에서 한창 공연이 달아오른 시간 사고가 터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주던 수습생이 실수를 하여 무대 위에 선 배우가 전혀 엉뚱한 대사를 말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순간 무대에 선 배우는 당황했고 이상함을 느낀 관객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칫 공연이 실패로 끝날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경력 있는 배우들의 멋진 마무리로 더 이상 큰 문제없이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감독은 불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대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일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실수했으니 저 친구의 급여를 절반으로 줄여!” 그러자 다른 연출가가 멋쩍어하며 감독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실수를 한 저 친구는 무급으로 극단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수습생입니다. 줄일 수 있는 급여가 없습니다.”
어이가 없던 감독은 한참 동안 수습생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 친구를 지금부터 급여 받는 엑스트라 배우로 일하도록 하고 그 급여를 반으로 줄여.”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선 수습생은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두 번씩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의 이름은 '게리 쿠퍼'였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간은 위기가 닥치고 역경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헤쳐나오는 노력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지금의 실패가 어쩌면 당신을 더 높은 자리로 인도하는 성장의 밑거름일지도 모릅니다.
“큰일을 하는 경우에는 기회를 만들어내기보다 눈앞의 기회를 잡도록 힘써야 한다.” ㅡ 라라 로슈푸코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5. 구름 뒤에는 빛이 있다
소년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한쪽 다리를 잃어 목발을 짚는 장애인이었고 어머니도 한쪽 눈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은 과일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부모님의 수입만으로는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여서 소년은 12살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을 했지만 수입은 한 달에 2만 원을 벌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그는 가구를 배달하는 직업을 갖고 장애를 가진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일을 했지만 집안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21살 청년이 되던 해, 불편한 몸으로 평생 궂은일을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마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신문 배달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역경이 없으면 개척할 운명도 없다'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던 그는 좌절할 것 같은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희망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또한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가난과 절망을 꿋꿋하게 이겨낸 청년은 마침내 2005년 꿈에 그리던 소방공무원 채용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중랑소방서에 근무하는 이성식 소방장입니다. 그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2019학년도 초등학교 5학년 도덕 교과서 '긍정적인 생활' 편에 실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역경이 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에 휩싸여 쓰러지기 일쑵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내려는 인간의 의지를 꺾는 것은 칼도 총도 독약도 아닌 쉽게 포기해버리는 절망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꿔 말하면 우리가 절망에 꺾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의지는 결코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구름 뒤에는 항상 빛이 존재한다.” ㅡ 루이자 메이 알코트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6. 와이파이 정신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에 묻어 달라'고 했답니다. 아마 죽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을 작정이었나 봅니다. 이러한 농담에서 알 수 있듯 정보화 사회를 사는 지금의 세대는 와이파이가 이미 중요한 자원이자 삶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와이파이는 'Wireless Fidelity'를 줄여 만들어진 말로 와이어리스는 선이 없다는 의미이고 피델리티는 충성을 의미합니다. 전자 용어로는 충성보다는 충실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연결된 선이 없더라도 유선 랜을 연결했을 때처럼 신호를 재생하는 것이 바로 와이파이인데 이처럼 보이지 않아도 늘 충실하게 나타내는 것이 바로 와이파이 정신입니다.
별로 활동적이지 않으면서 잘 나서지도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언제나 묵묵하고 충실히 일하는 사람, 어떤 일을 할 때 없으면 허전하면서 불안하지만 곁에 있으면 마음 편해지면서 든든한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와이파이 정신 같은 충실한 사람입니다. 나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사람이 된다면 아마 더 많은 행복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본성이 어떤 것이든 그에 충실하라. 자신이 가진 재능의 끈을 놓아 버리지 마라. 본성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 성공할 것이다.” ㅡ 시드니 스미스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7. 어느 수필가 이야기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은 33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료 콜리지, 로이드와 함께 시집도 내고 '런던'지에 기고하는 등 끊임없이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직장 생활 때문에 퇴근 후에나 글쓰기가 가능했던 시간적 제약을 아쉬워하며 시간의 여유가 가능한 정년퇴직 후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년퇴직을 앞둔 마지막 출근 날은 구속받는 시간이 사라지고 드디어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그의 그런 마음을 알았던 동료들도 “이제 밤에만 쓰던 작품을 낮에도 쓰게 되었으니 앞으로 나올 작품이 더욱 빛나겠군요”라며 축하를 해주었고, 마냥 기분이 좋았던 찰스 램은 “햇빛을 보고 쓰는 글이니 별빛만 보고 쓴 글보다 더 빛이 나는 건 당연하겠지요”라며 재치 있는 말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찰스 램이 옛 동료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가하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지 몰랐습니다. 매일 할 일 없는 시간이 반복되고 많아지다 보니 어느새 자신을 학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도 삶이 바쁜 가운데서 떠오른다는 것을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부디 가슴에 새겨 부디 바쁘고 보람 있는 나날을 보내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일에 대한 보람이나 성취감이 느낄 수 없다면 한없이 힘들어지기도 하는데 업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소진됐다는 기분을 느끼며 무기력해지는 번아웃 증후군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번아웃 증후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데 있어 공통적인 방법은 바로 성취감이란 것을 잊지 말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워 단계별로 성취감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가진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많은 대가를 얻는다.” ㅡ 알렉산드리아 피네
[출처] 《따뜻한 편지》 에서
8. 무드셀라 나무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요 국립공원 삼림지에서도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생하고 있는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브리슬콘 소나무의 일종으로 1957년 애리조나 대학의 에드먼드 슐먼이라는 학자가 나무의 생장추를 이용해 나이를 측정한 결과 무려 4,90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나무를 성경 인물 중 969살까지 산 것으로 기록돼 있는 무드셀라의 이름을 따서 부릅니다. 보통의 나무처럼 형성층이 있는 무드셀라 나무의 4,900년 나이를 감안했을 때 엄청난 굵기가 상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아주 더디게 자라기 때문에 100년에 고작 3cm 정도 굵어지는 반면 혹한의 날씨와 사나운 바람, 적은 강수량 등 가장 나쁜 생존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보다 더디게 자라지만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그리고 꿋꿋이 살아내는 강인한 생존력이야말로 무드셀라 나무의 장수 비결입니다.
혹시 열악한 환경 때문에 낙심하거나 남들보다 늦었다고 좌절하고 있다면 무드셀라 나무로부터 인생의 롱런하는 비결을 배우십시오.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 ㅡ 앤디 그로브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9. 청나라 거상 호설암
청나라 거상 호설암(胡雪岩)은 최고의 부호였지만 평소 돈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품을 지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단호한 훈계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어느 날 한 상인이 호설암 집에 방문했습니다. 최근 사업이 기울어 목돈이 급히 필요했던 상인은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을 호설암에게 헐값에 넘길 생각이었습니다. 호설암은 초조해하는 상인에게 내일 다시 오라고 한 뒤 다음 날이 되자 상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호설암은 상인의 재산을 헐값이 아닌 시장 가격으로 매입하기로 했으며 너무 놀라 휘둥그레진 상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재산을 잠시 보관할 뿐이오. 이번 난관을 잘 넘겨서 나중에 다시 매입하시오. 다만 원가에 약간의 이자를 더해서 받겠소.”
호설암의 호의에 감격한 상인이 눈물을 흘리며 떠나자 도무지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스승님, 다른 사람들에겐 호되게 훈계하시면서 정작 선생님의 수익은 신경 쓰지 않으십니까? 입에 들어온 고기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삼키지 않으시다니요.”
그러자 호설암이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누구라도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을 수 있다, 그때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면 나중에 똑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에게 이번 일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한 집안을 구하는 일이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며 상인으로서 양심에 부끄럼 없는 일이었다.”
상인이라면 이득을 위해서는 칼날에 묻은 피도 핥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해 행동했던 호설암은 법의 범위를 벗어난 검은 돈을 경계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을 탈취하지 않았으며 신의와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호설암은 성공 철학의 중심을 '돈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두고 얻은 이익과 재물을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는 구두쇠로 살게 될까 늘 염려했다고 합니다.
“작은 부자는 근면함에서 나오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 ㅡ 명심보감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10. 한 금속공예 명장의 이야기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홍병기 선생은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창신동까지 홍 부자 집 땅을 밟지 않고 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그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썼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손자인 홍재만 씨는 어린 시절부터 끼니를 걱정해야 할만큼 가난한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결국 13살 어린 나이에 금속공예 공방으로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선배들의 거친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늘 배가 고팠던 그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화장실에 숨어 잠을 자다 들켜 엄청난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달픈 시기였지만 시간은 흘러 그도 성인이 되면서 힘이 붙고 기술도 늘었습니다. 심부름을 하던 꼬마가 기술자가 되었고 기술자 홍재만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금속공예 최고 명장이 된 것입니다. 특히 한 장의 은판으로 몸통에서 부리까지 일체형으로 만들어내는 은주전자의 예술적 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홍재만 명장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라진 재산에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독립운동에 힘을 쏟은 할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그가 바라보는 것은 가족과 동료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성장하는 동안 맨손으로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 나온 사람이 비단 홍재만 명장 한 사람만은 아닐 겁니다. 갖은 난관을 견뎌내며 뜨겁고 격렬하게 살아온 수많은 명장들을 우리가 미처 살펴보지 못했을 뿐, 지금의 대한민국은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우리 삶의 터전이 만들어지고 세계에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고난이야말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다.” ㅡ 듀크 엘링턴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11. 어깨 위의 고양이
제임스 보웬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난 뒤 잦은 이사로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한 채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 생활을 하게 된 보웬은 대피소에 머물기도 하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종종 연주를 하여 얻은 돈으로 생활했지만 종내 노숙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마약에까지 손을 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웬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상처 입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자신과 똑같은 처지라는 생각에 가진 돈을 털어 고양이를 치료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이 고양이에게 전달됐는지 그 후 고양이는 보웬의 옆을 떠나지 않고 어디든 따라다녔습니다.
고양이는 보웬이 공연할 때면 그의 어깨 위에 올라왔고 보웬이 마치 고양이와 함께 공연하는 듯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환호와 함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면서 '사연 있는 거리의 악사'로 불렸습니다. 평생 한 번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받아보지 못했던 보웬은 고양이 '밥'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마약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삶의 방향을 바꾼 보웬은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Bob)'이란 제목의 책을 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 남자의 인생이 고양이를 만나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그 후 보웬과 행복한 삶을 살던 고양이 '밥'은 2020년 14살의 나이로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고양이 '밥'이 떠난 뒤 보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양이 '밥'은 제게 친구 그 이상으로 소중했어요. '밥'을 만난 뒤 제가 놓치고 있던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찾았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동물과의 진정한 교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과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는 세상 모두가 자기를 사랑해 주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 주길 바랄 뿐이다.” ㅡ 헬렌 톰슨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12. 바위를 밀어야 하는 이유
한 병약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는 슬픔에 빠져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다.”
꿈에서 깬 남자는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되었고 어머니의 말대로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넘게 바위를 밀었지만 워낙 무거웠던 바위는 약간 흔들리기만 했을 뿐 도무지 움직이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점점 회의가 든 남자는 꿈속에서 어머니가 했던 말에도 의심이 솟아 바위의 위치를 재어 보니 그동안 겨우 한 뼘 정도 옮겨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행동이 헛수고였다고 생각한 남자는 너무 원통해 엉엉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어머니기 다시 꿈에 나타났습니다. 남자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보고 바위를 옮기라고 하신 거예요? 어머니 말씀대로 지난 1년 동안 희망을 갖고 바위를 밀었는데 겨우 한 뼘 정도 움직였을 뿐이에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 나는 너에게 열심히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 바위를 옮기라고 하지 않았단다. 지금 거울 앞으로 가서 네 모습을 보렴.”
잠에서 깬 남자는 거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병약했던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도 지금 어떤 바위가 존재하나요. 혹 전혀 움직여지지 않을 것 같은 바위가 있다 해도 절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그 철벽같은 바위를 밀어내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바로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의 중요한 업적 중 대부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ㅡ 데일 카네기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13. 포드와 에디슨
자동차 왕이라 불리는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는 농촌에서 태어나 16세에 디트로이트로 건너가 유명한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회사의 직공으로 들어갑니다. 그 역시 에디슨처럼 정규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노력하여 인정받는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등유를 사용하는 보일러가 대세였던 당시 등유를 정제하는 과정의 부산물일 뿐인 휘발유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때 포드가 휘발유 동력으로 움직이는 내연기관에 관심을 보이자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만류했습니다. 고민하던 포드는 에디슨을 찾아가 "휘발유가 기계를 돌릴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에디슨은 곧바로 "자네 듣던 대로 현명하군. 생각대로 휘발유 자동차를 만들어보게." 하고 말했습니다.
에디슨의 말을 듣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포드는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해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자동차 엔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포드는 그렇게 자신을 믿어준 에디슨에 대해 '아내 이외에 나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평하며 평생 존경하면서 우의를 다졌습니다.
에디슨이 임종을 앞둔 1931년 10월, 포드는 에디슨이 숨을 거둘 때 마지막 숨을 병에 담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평소 포드가 에디슨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고 포드는 그 병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간직했으며 지금은 미시간 주에 있는 헨리 포드 기념관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어떤 실패와 난관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존경하는 사람의 응원은 목표 달성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한마디 말이 누군가에 위대한 성공의 길잡이가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상대의 가능성을 칭찬하십시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신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일을 실행할 만한 힘은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다. 자신에게 그러한 힘이 있을까 주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ㅡ 요한 괴테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14.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온다
1937년 퓰리처상과 함께 1939년 영화로 제작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분을 휩쓸었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작가 마거릿 미첼은 원래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행되던 신문사의 기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리를 다쳐 큰 수술을 받은 미첼은 오랜 회복 기간을 집에서만 지내야 했는데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큰 자부심을 가졌던 그녀는 불행한 현실에 낙심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려 원고를 완성했는데 선뜻 무명작가의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는 한곳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서 뉴욕의 제일 큰 맥밀런 출판사의 사장 레이슨이 애틀랜타에 온다는 기사를 접한 미첼은 무작정 기차역으로 찾아가 그를 붙잡았습니다.
“사장님, 제가 쓴 소설 원고예요. 꼭 좀 읽어봐 주세요.”
그러나 원고를 받은 레이슨의 관심 없는 표정을 본 미첼은 뉴욕의 레이슨에게 자신의 원고를 읽어 달라며 계속해서 전보를 보냈습니다.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 청년들은 자신이 사로잡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이처럼 미첼의 끈질김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소설의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한 레이슨은 점점 소설에 빠져들었고 그녀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출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출판되어 큰 성공을 거둔 소설에는 그녀의 의지를 볼 수 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모진 운명은 그들의 목을 부러뜨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꺾어 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우는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리고 싸웠다.'
기회란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한편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따라서 기회란 찾고자 노력하면서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사람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꼼짝하지 않고 바람만을 기다리는 배와 같다.” ㅡ 아르센 우세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15. 어머니의 유언
미국 뉴멕시코 주의 한 흑인 소년이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년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들아, 너에게 남겨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그러나 이 어미의 이 말을 꼭 기억하거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 보석이 있단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란다.”
1년 전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결국 할머니 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소아마비를 앓아 거동이 불편했던 소년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마침내 그는 UN 중재 담당관 자리에 올랐고 그 '사랑'의 가르침은 세계 각국 평화 협상을 이끌게 했습니다.
그렇게 1950년, 이스라엘과 아랍 진영 간의 휴전 협상을 이끌어냄으로써 흑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소년은 바로 미국의 정치학자 랠프 번치 박사입니다.
부모의 가르침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의 마음 밭에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많은 아이로 성장할 것이고 자녀의 마음 밭에 '욕심'을 심으면 '욕심'이 많은 아이로 자라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마음 밭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는 자명해집니다.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 된다.” ㅡ조세프 주베르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16. 맨발의 정신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눈부신 성과를 보인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중 한 명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싸워준 그는 군복무 시절 참가한 군인 마라톤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에디오피아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던 그가 엉겁결에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로 선발된 선수 중 하나가 축구를 하다 발목을 다쳐 출전이 어렵게 되자 그가 대신 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갑작스런 대표팀 합류로 신발도 준비하지 못한 그가 맨발로 42.195km를 달려 결승선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통과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2시간 15분 16초 2'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그는 '맨발의 아베베'라 불렸던 전설적인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였습니다. 그리고 아베베는 다음 올림픽인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여 또 다시 ' 2시간 12분 11초'란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그가 올림픽 5주 전 흔히 맹장이라고 말하는 급성 충수염으로 개복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아베베의 우승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쿄 올림픽 주최측은 에티오피아 국기와 국가도 준비해두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에는 에디오피아 국기는 물론 엉뚱한 나라의 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 사건은 도쿄 올림픽 최악의 망신스러운 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불굴의 정신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낸 아베베에게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1969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1970년 노르웨이 25Km 휠체어 눈썰매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참가해 금메달을 땄고, 10Km 레이스에선 특별상도 받았습니다.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양궁과 탁구 선수로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불굴의 정신을 가진 '맨발의 아베베'였습니다. 아베베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론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만으로 인생에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기회마저 줄어들 것입니다.
“나는 남과 경쟁하여 이기는 것보다 언제나 내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생각한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끝까지 달렸을 때 그것은 승리로 연결되었다.” ㅡ 아베베 비킬라
[출처] 《따뜻한 편지》 中에서
/ 2021.10.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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