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손 / 박문하
여섯 살 난 막내딸이 밖에서 소꿉장난을 하다가, 눈에 티가 들어갔다고 울면서 들어왔다. 어린것들에게는 제 아버지라도 의사라면 무서운 모양인지, 아프지 않게 치료를 해 주마고 아무리 달래어도, 혹시 주사라도 놓을까 보아서 그런지 한층 더 큰 소리를 내어 울면서 할머니에게로 달아나 버린다.
할머니는 손녀(孫女)를 품안에 안으시고는 아픈 눈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시면서 자장가처럼 혼자말로 중얼거리시는 것이었다.
"까치야, 까치야, 네 새끼 물에 빠지면 내가 건져 줄 터이니, 우리 민옥이 눈의 티 좀 꺼내 어 다오."
어린것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의 품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어 버린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연세가 여든을 넘으셔서 고목(古木) 껍질처럼 마르고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의사들이 가지지 못한 신비한 어떤 큰 힘이 하나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옛날에, 우리 집은 무척 가난하였기 때문에,
우리 형제(兄弟)들은 병이 나도 약 한 첩을 써 보지 못하고 자라났었다. 우리 형제들이 혹시 병으로 눕게 되면, 어머니는 약 대신에 언제나 그 머리맡에 앉으셔서는 "내 손은 약손이다."를 외시면서 우리들의 아픈 배나 머리를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그 아픈 배나 버리가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머니의 손을 약손이라고 불렀었다.
나는 문득 내 손을 펼쳐 보았다. 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현대(現代)의 약손이 라고 일컫는 의사의 손이다. 그러나 미끈하고 차가운 내 손에는 아무래도 무엇인가 중요(重要)한 것 하나가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어린 손녀(孫女)의 아픈 눈을 어루만져 주고 계신 어머니의 손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손에서 슈바이처보다도 한층 더 뜨겁고 진한 체온과 정신을 새삼스레 가슴 속 가득히 느꼈다. 그리고 고목(古木) 껍질 같은 어머니의 손이 오늘따라 자꾸만 모나리자의 손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었다.
- '약손'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
글=박문하 의사 · 수필가
◇ 박문하(朴文夏)[1918~1975]
부산 출신의 의사이자 수필가.
1.
아버지는 박용한(朴容翰)이고 어머니는 김맹련(金孟蓮)이다. 아버지 박용한은 한말 동래 지역의 선각자들이 설립한 개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와 서울의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의 탁지부 주사를 지내다가, 일제의 무단 통치에 항거하여 순국 자결한 애국 지사였다. 박문하의 형제들은 모두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누이인 박차정(朴次貞)은 동래 출신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의열단 단장 김원봉(金元鳳)과 결혼하였다. 큰형 박문희(朴文熺)는 신간회의 중앙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둘째 형 박문호(朴文昊)는 의열단 간부로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박문하(朴文夏)는 1918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319번지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박문하의 성장 과정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항일활동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누이 박차정이 1920년대 후반 동래일신여자학교 재학 중에 학생들의 집을 순방하며 비밀 연락을 다닐 때 8살 위인 누나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면서 사회의식을 길렀다.
1930년대에 형들과 누이가 모두 중국에 망명하여 항일 활동을 할 때 박문하도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박문하의 나이가 어려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못하고 귀국하였다. 박문하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가 순국하였는데, 이후 형과 누이마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시련을 이겨 내며 공부해서 외과 의사가 되었다.
박문하는 이후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동래 시장 앞에 민중병원을 개원하여 동래 주민들 사이에 인술을 펼치는 의사로 유명하였다. 또한 수필에 대한 조예와 열정이 남달라 향파 이주홍(李周洪), 청마 유치환(柳致環), 삼오당 김소운(金素雲), 요산 김정한(金廷漢) 등 많은 문인들과 교우하였다. 박문하는 제4대 부산문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1960년대~1970년대에는 여러 편의 수필을 써 각종 일간지와 문예지에 발표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동래구 의사회장 등 의료 활동도 병행하였으나 만년에는 장남을 잃은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진찰실에 소주병이 떨어진 날이 없었다고 하며 결국 간이 손상되어 1975년 3월 31일 동래구 수안동 자택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는 『배꼽 없는 여인』·『인생 쌍화탕』·『약손』·『낙서 인생』 등 4권의 수필집이 있으며, 사후인 2008년 부산문인협회에서 『우하 박문하 전집』을 다시 펴냈다.
2.
수필가 · 의사. 부산시 동래구(東萊區) 출생. 호는 우하(雨荷). 독학으로 의학(醫學)을 전공. 의사가 되면서 육체적인 병과 정신적인 결함에서 오는 인간심리에서 소재를 단 수필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잡지와 신문에 《약손》 · 《새벽에 돌아오다》 · 《손가락이 닮았소》 · 《나무로 살자》 · 《잃어버린 동화(童話)》 등 수백편의 수필을 발표했고, 수필집으로 《배꼽 없는 여인》(60) · 《인생쌍화탕(人生雙和湯》(63), 《약손》(65). 《씨뿌리는 사람들》(68) 《낙서인생(洛書人生》(72) 등이 있다. 부산 민중병원(民衆病院) 원장으로 국제펜클럽 한국위원, 한국 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장, 〈수필〉 동인, 부산시 문화상(文化賞)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 2021.10.20(수)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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