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반고등어 / 박후기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
마른 이불과 따끈따끈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2009)
[감상]
노숙자 아버지의 애틋한 ‘父情’
아버지들의 뒷모습은 외롭다. 가족을 위해 직장에서의 수모와 어려움들을 감내하지만 정작 집에 돌아오면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한다. 환영받고, 위로받아야할 이 시대의 가장들이 베란다 혹은 아파트 계단에 쪼그려 앉아 몰래 담배를 피운다.
이제는 그 사소한 자기위로의 짤막한 순간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아버지의 무관심’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진실처럼 오가는 이 쓸쓸한 사회에서, 아버지들은 남모를 이중의 소외를 속으로 혼자 겪는다. ‘가부장적’이라는 공격적 수식어가 아직도 아버지들을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로 몰아세워 일반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밥상을 뒤엎는 막무가내 아버지들은 이제는 거의 없다. 지치고 힘든 아버지들이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자신의 집에서 손님처럼 불편하게 혼자 앉아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내 복받쳐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돈버는 기계냐?” 앞에서 말한 내용이 과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들이 왜소해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과문(寡聞)이겠지만,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들 중에 건강하고 밝고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한 시는 자주 보지 못했다. 술 마시고, 때리고,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물론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쉽다. 우리의 근대사가 아버지들을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 복잡한 사정은 접어두고, 박후기 시인의 ‘자반고등어’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생각해본다.
자본주의에서 ‘가난한’이라는 수식은 원죄처럼 들린다. 그래서 ‘가난한’ 아버지와 ‘가련한’ 아들의 모습은 더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의지로 개선될 수 없고,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냉정함 앞에서 ‘마른 이불’과 ‘따끈따끈한 요리’를 꿈꾸며 지하역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는 부자(父子)의 ‘겨울밤’은 읽는 이의 뼛속까지 시리게 한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자는 모습을 한 손의 ‘자반고등어’로 묘사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보았을 것이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아 세운 시대의 염량세태를 보았을 것이다. 자반고등어에 염장을 하듯, 아버지와 아들이 덮고 있는 신문지 위로 내리는 싸락눈의 겨울밤이 시인의 마음에 또 다른 슬픔의 염장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시 ‘자반고등어’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명료하다. 읽는 순간 마음이 찡해진다. 한 손의 자반고등어처럼 서로를 껴안고 보듬어주는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시간을 생각해본다. ‘큰 슬픔’이라 쓰고 ‘큰 사랑’이라 읽어야할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경의를!
글=신종호 시인
/ 2021.09.2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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