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드러운 거인 고릴라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아프리카 대륙의 적도가 지나는 덥고 습한 밀림에 고릴라가 산다. 고릴라는 유인원 중에 덩치가 가장 크고, 육중한 몸집과 머리 위에 봉우리 모양으로 솟아 있는 시상릉 덕분에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서방 세계에 알려진 것은 침팬지, 오랑우탄보다 한참 늦은 1847년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고릴라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470년에 한노가 이끄는 카르타고 원정대로부터 시작된다.
간간이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고릴라는 힘이 세고 몸집이 크며 흉포해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맹수가 되었고, 할리우드 영화 '킹콩'에서는 도심에 나타나 건물을 부수고 날아가는 비행기를 맨손으로 잡고 자동차를 뒤엎는 괴물이 되었다. 사실 고릴라의 첫 모습은 무섭다. 고릴라와 만난 사람들은 큰 몸집과 험상궂은 모습에 놀라고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지르는 소리에 괴물을 만난 듯 혼비백산한다.
그러나 고릴라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릴라에게 인간은 자신들의 땅에 무단 침입한, 예의 없는 손님이고 천둥소리 나는 총을 쏘아대며 동료를 죽이는 무서운 적이었다. 고릴라 무리의 대장 수컷인 실버백은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큰 소리를 지르고 발로 땅을 구르면서 주먹을 쥐고 가슴을 퉁퉁 쳐서 자신이 얼마나 힘이 세고, 지금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과장되게 보여준다. 빨리 안 나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사실 모두 허풍이다. 고릴라는 사람보다 더 무서웠다. 고릴라는 수줍음 많은 동물이고, 야생 샐러리, 갈륨덩굴과 과일을 먹는 채식주의자다. 고릴라는 대장 수컷 실버백을 중심으로 젊은 수컷과 암컷 여러 마리, 새끼들로 구성된 가족 단위로 살아간다. 대장 실버백은 젊은 수컷끼리 싸우거나 암컷끼리 신경전을 벌일 때면 지긋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싸움을 해결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무리를 이끌며, 어린 새끼와 놀아주는 자애로운 아빠이기도 하다. 고릴라들은 서로 싸우고 화해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야생 고릴라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것은 18년 동안 르완다의 비룽가 산에서 고릴라와 함께했던 다이안 포시의 헌신적인 연구 덕분이었다. 그녀가 만든 고릴라 기금은 멸종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 야생 고릴라 보전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아직도 고릴라가 살아가는 숲은 벌목으로 줄어들고, 고릴라 밀렵은 멈추지 않고 있다. 부디 이 부드러운 거인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간과 더불어 지구의 동반자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09.10.14
/ 2021.09.17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091014174504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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