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밀한 사냥꾼 늑대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늑대는 호랑이, 표범처럼 위엄도 없고 용맹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겨울 밤 달빛 아래 목을 길게 빼고 으스스한 울음을 우는 음흉하고 흉악한 동물로 늑대를 떠올리고, 아이를 물어가고, 양을 잡아먹는 온갖 이야기 속 못된 주인공도 어김없이 늑대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늑대일 것 같지만 사실은 늑대만큼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물도 없다.
1만 5000년 전 인간이 최초로 길들인 동물도 늑대였고, 지금도 개라는 이름으로 사람 옆에서 살고 있다. 늑대는 얼어붙은 툰드라부터 뜨겁고 건조한 사막까지 땅 위에 사는 포유류 가운데 사람을 제외하고 가장 넓고 다양한 기후대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큰 체구나 기발한 생존 무기도 없는 늑대가 이렇게 번성할 수 있게 된 전략은 무엇일까?
늑대는 대장 수컷의 지휘 아래 먹이를 찾고 사냥을 하고 세력권을 방어하는 무리생활을 한다. 24㎞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먹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뛰어난 후각으로 먹잇감의 위치를 포착하면 며칠을 두고 포위망을 좁혀가며 끈질기게 추격한다.
최종 공격에 앞서 대장은 무리를 몰이조, 매복조, 퇴로 차단조로 나누고 최적의 시점에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런 치밀한 작전 덕에 늑대는 자신보다 훨씬 크고 빠른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할 수 있다. 하지만 사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무리의 수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서열이 가장 높은 암컷만 새끼를 낳고, 새끼는 무리의 구성원 모두가 돌본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음 세대로 종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늑대 무리는 세력권을 지키기 위해 3주 간격으로 자신의 영역을 순찰하며 경계에 오줌을 누어 자신들의 땅임을 알린다. 각 세력권들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있어 정상적일 때는 서로 다른 무리가 만나는 일은 없지만 간혹 먹이가 부족해지면 이웃 무리와 만나게 되고 이런 경우 심각한 싸움으로 발전한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늑대가 살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대량 학살과 먹이인 대륙사슴이 사라지고 1960~70년대 쥐잡기 사업으로 1968년을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늑대는 사라졌다. 지금은 북한, 중국에서 들여와 다행히 새끼를 낳고 있지만 앞으로도 한반도 산야에서 늑대를 보기는 어려울 듯 싶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09.10.21
/ 2021.09.17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0910211757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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