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 사냥꾼 큰개미핥기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남미 대륙을 대표하는 동물들은 개미핥기와 나무늘보 같은 빈치류들이다.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이들은 이빨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어진 동물들인데 이름만큼이나 생김새와 습성이 특이하다. 특히 큰개미핥기만큼 독특한 동물도 드물다. 45㎝나 되는 주둥이는 누군가 잡아 늘인 것처럼 길게 늘어난 튜브 형태로 되어 있고, 이빨은 하나도 없다. 개미와 흰개미를 먹으니 자연히 이빨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60㎝나 되는 지렁이처럼 생긴 혀가 있어 이것으로 개미를 사냥한다. 입안에 들어온 개미는 단단한 입안과 작은 자갈, 모래가 들어 있는 위에서 으깨져서 소화가 된다.
긴 주둥이에는 작은 귀와 눈이 있지만 시력이나 청력은 약하고 대신 사람의 40배 이상 뛰어난 후각으로 먹이를 찾는다. 초원을 천천히 걸어 다니다가 흰개미둥지를 발견하면 먼저 앞발의 발톱으로 둥지에 작은 구멍을 만든다. 그 다음 주둥이로 구멍 크기를 살짝 키우고 타액으로 젖은 혀를 깊숙이 집어넣다가 빼면 혀에 묻은 개미가 입속으로 들어간다. 참 쉽다.
하지만 25㎏이 넘는 몸을 오로지 개미만을 먹어 유지해야 하니 혀가 바쁘다. 1분에 무려 160회나 개미둥지를 공략해야 한다. 한 마리가 하루에 먹어치우는 개미만 해도 3만5000마리나 된다. 이러니 큰개미핥기가 한 번 다녀가면 그곳의 개미는 전멸될 것 같지만 개미도 나름대로의 방어책이 있어서 큰개미핥기의 공격이 시작되면 즉시 역겨운 화학물질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한 둥지의 개미를 먹다 보면 맛이 점차 나빠져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큰개미핥기 자신도 한곳을 계속 공략해서 전멸시킬 마음은 추호도 없다. 1시간 동안에도 40여 군데를 돌아다니며 개미 사냥을 한다. 큰개미핥기는 먹이를 고갈시키지 않고 자연과 균형을 이뤄 살아갈 줄 안다.
동물원에서 큰개미핥기는 느리고 순한 동물에 속한다. 그러나 얕잡아 보면 안되는 동물이다. 평상시는 느리게 걷지만 일단 위험에 처하면 뒷발과 꼬리로 몸을 지지하고 서서 10~15㎝나 되는 길고 날카로운 앞발의 발톱으로 적을 할퀸다. 날카로운 발톱은 적의 몸에 깊숙이 박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도 있는데 실제로 큰개미핥기와 재규어가 싸워 재규어가 죽은 경우도 있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09.10.28
/ 2021.09.17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09102818460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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