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청스러운 너구리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너구리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고유 동물이다.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의 물가와 야산의 덤불이 무성한 곳을 좋아하고, 환경에 대한 적응도 뛰어나 포식자였던 호랑이, 스라소니가 사라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개체수를 늘려가고 있다.
야생하던 너구리가 처음 서울 양재천에서 발견됐을 때만 해도 너구리 출현은 서울의 환경이 되살아난 청신호였다.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던 사람들도 너구리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각별한 사랑을 주었다. 하지만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 개체수가 늘다 보니 이제는 그 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2006년 9월에는 은평구에서 광견병에 걸린 너구리가 발견되면서 너구리의 위상은 급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휴전선 부근에서 간간이 발생되던 광견병이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기, 강원 지역에 이어 서울시에도 야생동물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광견병 예방약을 넣은 미끼를 한강 이북의 야산과 시범적으로 양재천, 탄천 지역에 뿌려주고 있다.
너구리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동물이니 정당하게 대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서울 도심에 나타날 정도로 친숙한 동물임에도 사람들은 너구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둘 중 하나는 엉뚱하게 미국 너구리 사진이 뜬다. 얼굴 형태도 비슷하고, 눈 주위에 까만 반점이 있는 것도 같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미국너구리는 미국너구리과(科)이고, 우리나라 너구리는 개과 동물이니 둘은 한참 다른 동물이다.
너구리는 늑대나 여우처럼 굴속에서 산다. 너구리는 자연 동굴을 이용하기도 오소리나 여우가 파놓은 굴에 주인의 허락도 없이 슬며시 들어와 같이 살기도 한다. 그래서 능청스러운 동물로 꼽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구리는 늑대나 개보다 훨씬 머리가 나쁜 동물이다. 뇌 발달 정도도 다른 개과 동물들보다 30% 정도 낮다.
그래서 너구리를 원시적인 개과 동물이라고 분류한다. 또 개과 동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겨울잠을 잔다. 너구리의 동면은 개구리, 뱀의 경우와는 달라서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동면에 들어가지 않거나 동면 중에도 따뜻한 날은 먹이를 찾아 깨어나기도 한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09.11.18
/ 2021.09.18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09111817570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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