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의 생존법 /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어린이대공원의 코끼리가 과연 사람에게 돌팔매질을 했을까. 본 사람이 없고, 코끼리는 말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주변에 다른 동물도 있건만 코끼리가 범인으로 몰린 건 길이 1.2m에 이르는 코 때문이다. 코끼리는 이 긴 코 덕분에 묵직한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고도 물과 먹이를 먹고, 무거운 물건도 거뜬히 든다. 그뿐인가. 코를 한번 휘두르면 웬만한 적은 나가떨어지고, 큰 나무는 뿌리째 흔들릴 정도니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섬세하기도 하다. 코 끝에는 손가락처럼 돌기가 있어 매끈한 바닥의 동전도 주워들 수 있을 정도다.
몸집으로 보나 힘으로 보나 땅 위에서 코끼리를 대적할 동물은 없다. 하지만 코끼리는 거대한 몸집 때문에 문제들이 생겼다. 뇌의 크기는 사람의 4배나 되고, 3m까지 자라는 상아도 2개나 있으니 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뼈에는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몸집이 커지면 체온을 식히는 것도 힘들다. 피부 두께는 2∼4㎝나 되는데도 털은 성기게 나 있고 땀샘은 없다.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도, 땀을 흘릴 수도 없으니 넓은 귀를 팔랑거려 몸의 열을 식히고 모래목욕으로 피부 손질을 한다.
코끼리는 대식가다. 하루에 300㎏의 먹이를 먹고, 80~110ℓ의 물을 마신다. 넓은 초원에서 코끼리 무리가 풀을 찾는데 하루 16시간을 소비한다. 어디에 가면 풀이 있는지, 어디에서 물을 마실 수 있는지 훤히 꿰고 있는 경험 많은 할머니 코끼리가 무리를 이끈다. 먹는 양이 많으니 배설량도 많다. 하루에 100㎏의 똥을 눈다. 넓은 운동장 여기저기에 널린 수십㎏의 똥을 치워야 하는 코끼리 사육사들은 정말 힘들다.
반면 코끼리에게 동물원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멀리 가지 않아도 항상 먹이는 준비돼 있는 반면 마음껏 돌아다닐 공간이 없는 것이 스트레스다. 동물원 사육사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사육사는 훈련을 하면서, 먹이를 주면서, 때로는 가지고 놀 수 있는 대형 장난감을 만들어주면서 코끼리와 깊은 감정적 유대를 이어간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코끼리는 남다른 동물이다. 지난 3월에 서울동물원 최장수 동물이었던 아시아 코끼리 '자이언트'가 숨을 거뒀을 때 몇날 며칠 곁을 지키던 담당 사육사는 축 늘어진 코끼리의 코를 쓰다듬으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글=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출처] 국민일보 2009.09.23.
/ 2021.09.16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09092318270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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