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김민철의 꽃이야기] '77세 작가는 99세 엄마를 어떤 꽃에 비유했을까' (2021.09.10)

푸레택 2021. 9. 10. 21:40

[김민철의 꽃이야기] 77세 작가는 99세 엄마를 어떤 꽃에 비유했을까

 

2016년 77세 작가 한승원은 ‘달개비꽃 엄마’라는 장편소설을 냈다. 등단 50년을 맞은 작가가 99세에 별세한 어머니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이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무덤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났을 때 (중략) 금잔디를 밟고 선 내 발 앞으로 국숫발같이 오동통한 달개비 덩굴 한 가닥이 기어나왔다. 그 덩굴의 마디마디에서 피어난 닭의 머리를 닮은 남보랏빛 꽃 몇 송이가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몇 해 전, 토굴 마당의 잔디밭에서 달개비, 바랭이풀, 명아주풀, 비름풀, 환삼덩굴 들을 뽑아 동백나무 밑에 쌓아 두었는데, 다른 풀들은 시들어 죽어갔지만 달개비풀 혼자만 살아남아서 남보라빛의 꽃을 피워내었다.(중략) 그 오동통한 달개비 풀꽃처럼 강인하게 세상을 산 한 여인, 나의 어머니를 위하여 이 소설을 쓴다.」

△ 막 피어난 달개비(닭의장풀) 꽃.

돌아가신 어머니를 달개비꽃에 비유한 것이다. 그 많은 잡초 중에서 강인하면서도 어여쁜 달개비를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소설엔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 중학생인 그가 장흥읍에서 자취할 때 한 주일 내내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섬마을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읍내에서 고향집까지는 80리길(약 32㎞)이었다. 한밤중에 집에 들어서면서 “어메!”하고 부르면 어머니는 맨발로 달려나와 “워따, 어메, 내 새끼야, 거기서 여그가 어디라고 또 걸어서 왔냐!”며 얼싸안았다. ‘삼십대 후반의 어머니에게서는 후끈 향긋한 유향이 날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읍내로 다시 걸어서 돌아갔다. 작가는 “소년인 나를 80리 밖에서 끌어당긴 강한 자성 같은 어머니는 대관절 어떤 존재일까”라고 물었다.

그 다음은 논을 팔아 책장사를 하라는 아버지 말에 어머니가 나서는 대목이다.

「그때 어머니가 “아니다” 하고 말했다. “서울 그 대학 들어가거라. 돈이랑 논이랑 다 쓸데없다, 사람이 제일로 중한 것이다. 니가 늘 노래 부른 김동리 선생, 서정주, 박목월 선생들이 있다는 그 대학에 가거라. 니가 골병들게 머슴살이하듯이 해서 번 돈으로 산 논인께 그 논 팔아가지고 가거라.”

나는 그리하여 그해 봄 서울 미아리고개 옆에 있는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의 문을 두드렸다.」

달개비 꽃은 요즘 막 피기 시작해 늦가을인 10월까지 피는 꽃이다. 밭이나 길가는 물론 담장 밑이나 공터 등 그늘지고 다소 습기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꽃은 작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예쁘고 개성 가득하다. 우선 꽃은 포에 싸여 있는데, 포가 보트 모양으로 독특하다. 남색 꽃잎 2장이 부채살처럼 펴져 있고 그 아래 노란 꽃술이 있는 구조다. 이 모습을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은 책 ‘한국의 야생화’에서 “마치 노란 더듬이를 가진 푸른 나비를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니까 달개비 꽃의 전체적인 모습은 노란 더듬이를 가진 푸른 나비가 보트 위에 앉은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이 지고나면 생기는 밥알 모양 열매는 어릴적 소꿉놀이할 때 쌀 대용으로 사용한 것이다.

△ 달개비(닭의장풀) 무리.

달개비라는 이름은 꽃이 닭의 볏을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다. 이 풀의 정식 이름은 닭의장풀인데, 이 식물이 주로 닭장 주변에 자란다고 붙은 것이다. 국가식물표준목록은 닭의장풀을 추천명으로, ‘닭개비’만 이명(異名)으로 처리하고 달개비는 아예 빼버렸다. 닭의장풀보다는 달개비가 어감이 더 좋고 수많은 사람이 이 식물을 달개비라 부르는데 왜 닭의장풀을 추천명으로 정했는지 궁금하다. 최소한 달개비를 이명에 넣어놓고 어느 이름이 더 나을지 논의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달개비라는 이름은 요즘 화단에 흔한 자주달개비(추천명은 자주닭개비) 등에 남아 있다. 자주달개비는 북미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꽃이다. 5월쯤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에 시드는 꽃이다.

△ 요즘 한창인 자주달개비(자주닭개비) 꽃.

‘달개비꽃 엄마’를 읽으면 누구나 읽는 내내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내가 어머니 이야기를 쓴다면 어떤 꽃에 비유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출처] 조선일보 & chosun.com 2021.07.06

/ 2021.09.1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