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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생물의신비] '칡나무와 등나무에서 배우는 지혜'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2021.09.13)

푸레택 2021. 9. 13. 10:51

■ 칡나무와 등나무에서 배우는 지혜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갈등'은 칡과 등의 조합에서 비롯한 말
내 속의 굽은 마음 둘, 두 식물 보는 듯

같은 콩과식물에 드는 칡(葛)나무와 등(藤)나무 이야기다. 칡은 다년생 덩굴식물로 줄기가 해마다 굵어지기에 나무에 속하고,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데 줄기는 20m 이상 뻗으며, 뿌리도 매년 커진다. 칡넝쿨은 길게 자라면서 다른 물체를 둘둘 감고 올라가고, 잎은 겹잎(복엽)으로 3장의 작은잎(소엽)으로 돼 있다. 꽃은 8월에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으로 피고, 꽃모양은 나비와 흡사하며, 열매는 천생 콩꼬투리를 닮았다. 우리가 어릴 때 많이 캐먹은 칡뿌리(갈근)는 예부터 구황식물로 쓰였고, 건강식품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뿌리녹말인 갈분(葛粉)은 녹두가루와 섞어서 칡국수를 만들어 먹고, 줄기의 껍질은 칡베(갈포)의 원료로 썼으며, 칡즙에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많다 하여 여자에게 좋다 한다. 나의 아내도 어디서 ‘강원도칡즙’ 한 상자를 사왔기에 덩달아 필자도 얻어 마시는데 씁쓰레한 것이 뒷맛이 개운하다.

한편 등나무는 여름땡볕을 막으려고 흔히 심는 덩굴나무다. 절과 음식집에 곧잘 심으니 역시나 칡처럼 칭칭 두르며 기어오르고, 마찬가지로 겹잎으로 13∼19개의 달걀모양인 소엽이 나며, 소엽가장자리가 밋밋하면서 끝이 뾰족하다. 향기 물씬 풍기는 보랏빛 꽃은 5월에 피고, 여러 기둥을 받쳐 올린 등나무넌출에 한가득 뒤룽뒤룽 매달린 큼지막한 꽃떨기는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또 열매꼬투리 겉에는 부드러운 털이 부숭부숭 난다. 알맞게 자란 줄기를 꼬아 등받이의자를 만들거나 곧은 것은 지팡이로 쓴다.

세상은 오른손잡이 차지라 한다. 디옥시리보핵산(DNA)도 97%가 오른쪽으로 틀고, 연체동물인 달팽이나 고둥무리껍데기(패각)도 오른쪽으로 감긴 것이 거의 다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왼손잡이가 10% 남짓이고, 여자보다 남자에 더 많으며, 일반인에 비해 일란성쌍둥이가 76%로 더 잦다.

그리고 칡이나 등처럼 줄기를 다른 물체에 기대어 걸고 오르는 덩굴식물(만성식물)들은 줄기가 쪽 곧게 자라지 않고 좌우로 빙글빙글 감으면서 큰다. 칡·나팔꽃·메꽃·새삼·마들은 오른쪽으로 감아 도는 오른돌이(우권)고, 등나무·인동·한삼덩굴들은 왼돌이(좌권)다.

국어사전에 ‘갈등(葛藤)이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적대시하거나 대립충돌을 벌여 고민하는 상태를 뜻한다’라고 써 있다. 맞다. 갈등은 덩굴식물인 칡과 등의 조합에서 비롯한 말이다.

칡넝쿨은 우권이라 오른새끼처럼 휘휘친친 감고 올라가지만 좌권인 등나무는 반대로 넌출을 왼새끼처럼 칭칭 동여맨다. 하여 두 식물을 가까이 심어놓으면 각각 반대방향으로 비틀어 꼬면서 꾸불꾸불 용틀임하여 오른다. 서로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죽기 살기로 상대를 밀치고 당기고, 솟고 누르며, 뒤틀고 펴는 불화(不和)와 상충(相衝)을 칡과 등나무에서 본다.

내 안에도 굽은 마음 둘이 도사리고 있으니 이놈은 이리 가자 하고, 저놈은 저리 하자며 싸움질한다. 이래저래 칡과 등나무 마음은 속절없이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무겁디무거운 짐이다.

글=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출처] 세계일보 & Segye.com 2017.06.11

/ 2021.09.13(월)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