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김민철의 꽃이야기] '칡꽃에 대해 잘 모르는 세 가지' (2021.09.10)

푸레택 2021. 9. 10. 21:23

[김민철의 꽃이야기] 칡꽃에 대해 잘 모르는 세 가지

 

김동리의 대표적인 단편 중 하나인 ‘역마(驛馬)’는 옥화의 어미와 아들 등 3대에 걸친 가족 인연을 바탕으로 토속적인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화개장터가 주무대인데, 칡이 많이 나오고 있다.

화개장터에서 주막을 하는 옥화는 역마살을 없애려고 아들 성기를 쌍계사에 보낸다. 옥화는 그의 어미가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빠져 하룻밤 풋사랑으로 태어난 딸이었고, 아들 성기는 옥화가 구름 같이 떠도는 중과 인연을 맺어 낳은 자식이었다. 어느날 체장수 영감이 딸 계연을 데려와 맡기고 장삿길을 떠난다. 자연스럽게 성기와 계연은 서로 연정을 품는다. 다음은 성기가 칠불암에 책값을 받으러 갈 때 계연을 데려가는 장면이다.

「성기는 아가위나무 가지로 앞에서 칡덩굴을 헤쳐 가는데, 계연은 뒤에서, 두릅을 꺾는다, 딸기를 딴다, 하며 자꾸 혼자 처지곤 했다.
“빨리 오잖고 뭘 하나?”
성기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무라면 계연은 딸기를 따다 말고, 두릅을 꺾다 말고, 그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물고는 뛰어오는 것인데, 한참만 가다 보면 또 뒤에 떨어지곤 하였다.(중략)
먹을수록 목이 마른 딸기를 계연은 그 새파란 머루, 다래 섞인 둥그런 칡잎으로 하나 가득 따서 성기에게 주었다. 성기는 두 손바닥 위에다 그것을 받아서는 고개를 수그려 물을 먹듯 입을 대어 먹었다. 먹고 난 칡잎은 넝쿨 위로 던져 버리고 칡넌출이 담뿍 감겨 있는 다래 넝쿨 위에 그는 비스듬히 등을 대고 드러누웠다.」

아가위나무는 산사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던 어느날 옥화는 우연히 계연의 귓바퀴에 난 사마귀를 보고 계연이 자신의 동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체장수 영감이 36년 전 자기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낸 남사당패 우두머리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옥화의 예감은 사실로 드러난다. 계연은 성기의 이모뻘이어서, 둘은 맺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처럼 소설에는 칡은 물론 다래·머루·으름·두릅·오디·산딸기 등 한여름 산에서 볼 수 있는 먹을거리들이 거의 다 등장하고 있다. 칡은 우리나라 어디서든 산과 언덕의 양지바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성 식물이다. 순식간에 주변 숲을 덮어버릴만큼 세력이 좋아 산을 깎은 자리에 산사태를 막기위해 일부러 심기도 했다. 칡이 도로변 등 경사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칡은 잘 알지만 칡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7~8월 한여름에 피는 칡꽃은 짙은 홍자색 꽃잎에 노란 무늬가 박힌, 아주 인상적인 꽃이다. 칡꽃은 노랑무늬도 인상적이지만 맑고 달콤한 향기도 일품이다. 숲길을 걷다 어디선가 아주 맑고 달콤한 향기가 나면 근처에 칡꽃이 피었을 가능성이 높다. 칡꽃은 향기가 진하고 멀리 가 10여m 떨어진 곳에서도 주변에 칡꽃이 핀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 칡꽃. 노랑무늬가 선명하다.

칡꽃 향기를 ‘맑고 달콤한 향기’라고 표현했는데 이 정도로는 좀 부족한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아주 싱그러운 향이다. “와인향처럼 좋은 향”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 칡꽃. 맑고 달콤한 향기가 참 좋다.

사람들이 흔히 칡을 풀로 알고 있다. ‘갈등(葛藤)’에서 ‘갈’ 자는 칡을 가리키는데, 한자에 풀초(艸) 자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칡은 분명히 목질부를 갖고 있는 나무다. 이걸 모르고 나무도감이 아닌, 풀꽃도감에서 아무리 칡을 찾아도 나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 뒤덮은 칡

칡은 다른 나무나 물체를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식물이다. 요즘에는 칡뿌리를 캐는 사람이 드물어서인지 칡이 너무 번성해 다른 식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도로까지 줄기를 뻗어 덮으려고 하는 칡 줄기를 보면 대책을 세워야할 단계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칡을 생태계 교란식물로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 chosun.com 2021.08.03

/ 2021.09.1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