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변 미세먼지 측정기에 담긴 뉴턴과 퀴리의 세계
서울 쏙 과학 ⑤ 측정기에 쓰이는 관성의 법칙과 베타선의 원리
[서울&] [서울 쏙 과학]
을지로4가 등 도로변 잿빛 컨테이너
그 속에 뭐가 있을까 항상 궁금했던 곳
전문가의 도움 받아서 그 문을 연 순간
뉴턴·퀴리 원리 담은 측정기기들 ‘가득’
뉴턴의 ‘관성의 법칙’ 따른 포집기가
큰 입자 내보내고 미세먼지만 모은 뒤
퀴리가 발견한 ‘방사능’ 원리에 의해
흡수 베타입자 양으로 미세먼지 측정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청계천을 지나다 우연히 봤던 ‘그것’. 을지로4가 인도 한편, 도로변 점포들이 부려놓은 듯한 자재와 오토바이들 사이에 오도카니 서 있던 잿빛 컨테이너. 그 위에는 작은 삿갓을 쓴 막대기 세 개가 꽂혀 있었고, 풍향계 또한 돌고 있었다.
그게 뭐기에 오가는 차들의 먼지 속에 덩그러니 세워둔 걸까? 얼핏 봐도 사람 예닐곱 명은 들어앉을 수 있을 듯한 공간에서, 대체 무슨 은밀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그리 꼭꼭 잠가놓은 걸까? 실마리는 엉뚱하게도 양재에서 풀렸다. 서초문화예술회관 앞 중앙차로엔 ‘그것’과 쌍둥이같이 생긴 것이 세워져 있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 문을 연 순간, 뉴턴과 퀴리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것들의 정체는 도로변 대기오염측정소. 국가 공인 장비들로 빼곡히 채워진, 귀한 존재였다. 미세먼지를 모아서 무게를 재는 중량법, 또는 방사선의 일종을 쏴서 측정하는 베타선법을 쓰는 설비들이다. 두 가지 모두 일반인이 쓰는 간이측정기보다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몸값도 비싸다.
측정소 안에는 그뿐 아니라 오존·일산화탄소·아황산가스·질소산화물 등 각종 대기오염물질 수치와 온도·습도·풍향·풍속을 재는 장비들도 들어 있다. 도로변 측정소는 서울시에 15개가 있는데,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관리한다. 아이작 뉴턴과 마리 퀴리의 세계는 그중에서 미세먼지 측정기 속에 들어 있다. 윤태호 보건환경연구원 대기질통합분석센터 환경연구관은 컨테이너 위로 삐죽 솟은 먼지 포집 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공기가 들어가요. 거기서 큰 입자들은 충돌해서 나가고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 같은 작은 것들만 운동성을 잃고 포집됩니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서요.”
아이작 뉴턴이 이 설명을 들었다면 반색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임팩터(impactor)라고 부르는 이 장치엔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 관성의 법칙이 쓰였다. 물체는 자기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한 채로 있으려 하고,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든다. 이게 관성의 법칙이다.
공기가 임팩터 안에서 바람, 즉 운동에너지를 만나면 공기 속 입자 중 크고 무거운건 운동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공기 흐름 한가운데 위치한 충돌판에 부딪혀 쌓인다. 미세먼지는 작아서 관성도 적게 받는다. 작은 입자들은 관을 타고 내려가 여과지에 고이 쌓인다.
윤 연구관은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측정기를 각각 열어 입자 크기별 여과지를 보여줬다. 한쪽엔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초미세먼지가 모였고, 다른 쪽엔 지름이 10㎛ 이하인 미세먼지가 모여 있다고 했다. “딱 봐도 한쪽은 진하고 다른 쪽은 옅죠? 미세먼지가 진한 거고, 초미세먼지가 옅은 거예요.”
경력 10년의 베테랑은 육안으로도 차이를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과지 위 미세먼지를 처음 본 일반인의 눈엔 당최 달라 보이는 게 없었다. 이 대목에서 마리 퀴리가 발견한 세계가 소환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맛도 없는 힘. 바로 방사선의 세계다. 마리 퀴리는 1935년 인공방사능 현상의 발견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방사선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입자 형태의 알파선·베타선·중성자선, 그리고 빛이나 전파 형태의 감마선·엑스(X)선이다. 알파 입자는 덩치가 크고 무게도 무거워 종이 한 장도 지나가지 못한다. 같은 입자라 해도 중성자는 투과력이 좋아 납이나 두꺼운 철판으로나 막을 수 있다.
베타 입자는 그 중간쯤 된다. 전자처럼 종이는 뚫고 지나간다. 화학물질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초미세먼지 같은 입자는 물론이고 얇은 금속판이나 플라스틱은 뚫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방사선보다 안전하다. 방사선 관리 기술사가 아니어도 다룰 수 있다.
이 성질을 이용한 게 ‘베타선 흡수법’(Beta-ray Absorption Method) 미세먼지 측정기다. 도로변 대기오염 측정소가 이 기기를 쓴다. 이 기기는 미세먼지에 흡수된 베타 입자의 밀도를 1㎥당 공기량과 함께 1시간 평균치로 계산한다. 그것이 우리가 보는 미세먼지 수치다.
이렇게 측정된 정보는 서울시 25개 자치구별 측정소를 포함해 총 50곳의 대기질 정보와 함께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시스템과 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대기오염 실시간 공개 시스템)로 보내진다. 포털 사이트에서 ‘미세먼지’를 검색하면 보이는 대기오염 정보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을 작성하던 3월29일, 포털 검색창에 ‘강남대로 측정소’를 넣어봤다. ‘과천동 미세먼지는 매우 나쁨입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천동 도시 대기, 강남대로 도로변 대기, 동작대로 도로변 대기 등 세 곳 수치가 떴다. 그중 강남대로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각각 189와 31마이크로그램(㎍/㎥)이었다. 몽골 고비사막과 중국 내몽골 고원에서 날아온 황사가 서울을 뒤덮은 탓이었다.
인류가 번성하는 한 미세먼지와의 전쟁은 어쩌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날도 뉴턴과 퀴리의 발견을 탑재한 기계 일꾼들은 잿빛 컨테이너 속에서 열일 하고 있으리라.
글·사진=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출처] 한겨레 2021.04.01
/ 2021.09.08 편집 푸레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