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진단 원리로 가짜 광어회, 유전자변형도 찾는다
서울 쏙 과학 ⑨ 코로나 진단에 쓰이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의 과학원리
[서울&] [서울 쏙 과학] 미세한 양 DNA를 PCR 장비로 증폭
장비 온도 95도, DNA 이중나선 풀려
다시 54도로 낮춘 뒤, 74도로 높이면
타깃 DNA 가닥이 두 개로 늘어나
이를 여러번 반복해 수만 개로 늘려
타깃 DNA 확인, 어떤 물체인지 파악
영등포구 보건소에서 남편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목은 칼칼하지만 다른 의심증상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남편은 다음날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불안은 짧게 끝났다. 17시간 뒤 남편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떴다.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녁 자리에서 남편이 자랑스레 말했다.
“하루도 안 돼서 검사 결과가 나오더라고. 아르티-피시아르(RT-PCR) 검사라던데,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이라고, 들어봤어?”
“중합효소가 뭐야?”
아홉 살 딸이 끼어들었다. 식탁 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른 포털 사이트에서 ‘중합효소’를 검색해 읽어줬다.
“백과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네. 핵산의 중합반응을 일으키는 효소이다.”
“핵산? 그게 뭐야?”
“디엔에이(DNA)와 아르엔에이(RNA) 두 종류가 있는데….”
“아레네? 디에네? 그게 뭐야?”
‘생명체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유전정보를 담은 물질’이라고 설명하려다가 포기했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따라 나올 다음 질문들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마침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하 연구원)에서 받았던 전자우편이 떠올랐다. PCR를 활용해 식품 진위나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독한다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직접 보고 와서 쉽게 얘기해 줄게.”
연구원은 서울 양재와 경기도 과천 사이에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 연구기획팀의 조영리 주무관을 만났다. 그는 건물들 사이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복도로 이끌며 새로운 방이 나타날 때마다 그 방의 업무 영역을 소개했다. 질병 연구부터 식품의약품, 생활환경, 대기질과 수질, 동물위생까지 광범위했다. 그가 어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PCR를 하는 특수검사팀입니다. 여기서 먼저 말씀 나누시고 나머지를 둘러보시겠어요?”
거기에선 RT-PCR의 원조 기술, PCR를 활용해 여러 식품을 분석하고 있었다. 김애경 특수검사팀장이 유전자변형작물(GMO), 유전자 진위 등 PCR 검사 항목을 설명했다. 손소독제부터 해외 직구 다이어트 제품까지 서울시에서 팔리는 식품과 의약품은 죄다 검사 대상인 셈이다.
“두부를 수거해 유전자변형 콩이 들어갔나 보기도 하고, 광어회로 팔리는 게 사실 팡가시우스 같은 유사 종으로 만든 게 아닌가 보기도 해요. 지난달엔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팔리는 회와 초밥 32개 제품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모두 표기사항대로 제 원료를 썼더라구요.”
그걸 알아내는 데 쓰인 게 PCR였다. 실험실로 건너갔다. 장미라 박사와 박주현 보건연구사가 시연했다. 먼저 시료에서 분석 대상, 즉 타깃이 포함된 DNA를 추출한 뒤 ‘프라이머’(Primer, DNA 합성을 촉진하는 유전자 절편)를 넣는다. 이 혼합물을 PCR 장비에 넣고 반응 온도와 시간을 맞춘다. 장비는 입력받은 대로 온도를 올리고 내리면서 타깃 DNA를 증폭한다.
이때 일어나는 게 중합효소 연쇄반응이다. 장비가 온도를 95도 정도로 높이면 DNA의 이중나선이 풀려 두 가닥으로 나뉜다. 온도를 54도 정도로 낮추면 프라이머가 타깃 DNA 가닥에 달라붙는다. 온도를 74도 정도로 올리면 중합효소가 작동해 원본 DNA 중 프라이머가 붙은 끝자리부터 염기를 붙인다. DNA 가닥은 두 개가 된다. 이걸 엔(n)번 반복하면 타깃 DNA는 2의 n승으로, 즉 수만 배 불어난다. 소량의 DNA가 있어도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코로나19 진단법에 붙는 ‘RT’는 뭘까. RT는 실시간(Real Time), 역전사(Reverse Transcription) 두 가지 뜻이 있다. 즉 실시간으로 역전사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는 얘기다. DNA를 직접 증폭하는 PCR와 달리, 실시간 RT-PCR는 증폭하기에 앞서 RNA로 상보성 DNA를 만든다. 이게 ‘역전사’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RNA로 유전되는 RNA 바이러스를 분석하기 위해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일으킬 때 쓰인다. 이때 RNA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이 RNA에만 있어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생명체의 DNA를 필요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이들은 숙주에 침투해 숙주의 효소로 숙주의 DNA에 자신의 RNA를 찍어낸다.
그 과정을 직접 보리라는 기대로 조영리 주무관을 따라 복도로 나섰다. 마스크 성능 검사실 등 다른 방의 업무를 설명하던 그가 어떤 계단 앞에서 멈춰 섰다. 약간 곤란한 표정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 검사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저 위 3층에 있는 바이러스검사팀 실험실에서 하는데요, 거긴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난해 1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래, 바이러스검사팀은 바빴다. 24시간 돌아갔다. 현재도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연구원 탐방을 허락받고 PCR 과정을 본 것만 해도 어딘가. 하지만 눈으로 지켜봤는데도 딸에게 PCR 과정을 설명하려니 난감했다. 전문 용어를 쓰면 또다시 질문 세례가 쏟아질 터였다. 하는 수 없이 딸한테 익숙한 ‘물체’에 빗댔다.
“레고 조각을 봐봐. 올록볼록하지? 생명체엔 그런 올록볼록한 조각들이 네 가지 있어(A-C-G-T 등 DNA 염기). 그게 핵산이야. 근데 거기에 맞는 다른 레고 조각을 붙이려니까 조각이 너무 많아서 헷갈려. 그래서 필요한 곳(타깃 DNA)에 깃발(프라이머)을 딱 꽂는 거야. 그러면 중합효소가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찾아가서 레고 조각들을 주르륵 자석처럼 붙여줘. 이해돼?”
“응. 어려운데 뭔가 알 것 같아.” 딸은 고개를 끄덕이는데,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설명을 뺀 걸 눈치챘나 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때론 오해로부터 이해가 시작되기도 한다.
글·사진=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그래픽 김경래 기자
[출처] 한겨레 2021.05.27
/ 2021.09.08 편집 푸레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