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셋 라이더 / 윤성학 ??
해가 진다
원효대교 남단 끝자락
퀵서비스 라이더
배달 물건이 잔뜩 실린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휴대폰 카메라로 서쪽 하늘을 찍는다
강 건너 누가 배달시켰나 저 풍경을
짐 위에 덧얹고 다시 출발
라이더는 알지 못 하네
짐 끈을 단단히 묶지 않았나
강으로 하늘로 차들 사이로
석양이 전단지처럼 날린다는 것을
무엇이 퀵퀵퀵, 달리는 라이더를 멈추게 했나. 무엇이 부릉부릉, 달아오른 실린더 심장을 멈추게 했나. 택배를 기다리는 ‘우두커니’들을 위해 ‘쏜살같이’ 달려야 하는 라이더가 어찌 그림자 긴 ‘어둑서니’가 되었는가. 선셋은 아버지 태양의 하루 임종이 아닌가. 라이더도 그의 적자임이 분명하니 아무리 바빠도 그렁그렁 예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배송되는 물건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라이더는 다시 내비게이션 속 점과 점을 잇는 선이 되어 달릴 것이다. 짐 끈이 풀려 석양이 전단처럼 날려도 망막 속 잔상은 오래 머물 것이다. (글=시인 반칠환)
?? 업어 준다는 것 / 박서영 ??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어쩌다 저수지에 빠졌을까. 멧돼지 잡는 총질에 놀랐을까, 주린 유기견들에게 쫓겼을까. 염소에게 선입견 있었지. 어릴 때 손 내밀며 다가가니 다짜고짜 뜸베질하던 뿔난 일진, 무슨 생각 하는지 알 수 없던 유리알 눈, 무슨 고시 준비하는지 책만 보면 씹어 먹는 출세주의자, ‘아주 공갈 염소 똥 일원에 열 두 개, 이자 붙여 스물 네 개’ 거짓말쟁이에 고리대금업자! 내가 아는 염소는 저게 다인데, 그래서 염소젖도 안 먹는데, 젖은 염소 업고 가는 노파 모습에 가슴이 열리네. 오늘은 아주 미운 사람도 한 번 쯤 어부바 하고 싶네. (글=시인 반칠환)
?? 꽃양귀비 활짝 / 권숙월 ??
김천문화학교 시창작반 수업시간 강사가 물었다 “꽃양귀비 어때요?” 오십 대 초반 꽃 얼굴을 한 수강생이 대답했다 “빛깔이야 참 곱지요” “그래서, 좋아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예쁘기는 하지만 별로예요” 이십일 년째 매주 월요일 같이 밥 먹는 사이이기 때문일까 꽃을 보는 눈 또한 다르지 않다 아니, 곱디고운 꽃양귀비에 끌리지 않는 이유 도대체 뭘까? 강사의 궁금한 속내 알아챈 수강생 “감춘 것 없이 다 드러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맞다, 보여줄 게 꽃밖에 없을지라도 남김없이 보여주면 매력 없다는 사실 알려준 거다
거참, 듣는 꽃양귀비 어이없네요. 꽃이 달래 꽃이요? 빛깔 좋고 예쁘면 그만이죠. 감춘 것 없이 다 드러냈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이래요? 내 속을 양말처럼 뒤집어 보았나요? 날마다 웃지만 뿌리털로 길어 올리는 눈물 보았나요? 나는 귀화식물, 사람으로 치면 외국인 노동자죠. 당신들이 산 깎고 둑 쌓은 자리 흩뿌려 놓았죠. 토종 꽃들도 살기 힘든 박토에서 흔들리죠. 우리는 다른 풀들과 섞여 자랄 때 밋밋한 초록에 찍는 붉은 방점이었죠. 일색으로 심어놓고 감춘 것 없다고요? 그렇게 절제미 아는 호모 사피엔스님들, 하늘모자 땅윗도리 바다바지 다 벗겨 놓고, 마스크로 하관 가리고 다니니 참 은근히도 매력이 넘치네요. (글=시인 반칠환)
[출처] '시로 여는 수요일' 서울경제
/ 2021 07 15(목) 편집 택택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감상] '나는 배웠다' 마야 안젤루, '비 오는 날의 기도' 양광모, 유트족 인디언의 기도 (2021.07.17) (0) | 2021.07.17 |
---|---|
[소설읽기] '용가리 통뼈' 유순하 (2021.07.15) (0) | 2021.07.15 |
[명시감상] '나팔꽃' 권대웅, '터미널 2' 이홍섭, '바지락 끓이는 여자' 려원 (2021.07.15) (0) | 2021.07.15 |
[소설읽기] '누란의 사랑' 윤후명 (2021.07.13) (0) | 2021.07.13 |
[명시감상] '안부' 김시천, '친구에게' 김재진, '한 둘' 허형만, '외로운 벗에게' 조병화, '서울 사는 친구에게' 안도현 (2021.07.12) (0) | 2021.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