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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인생] '두견새 우는 청령포' 심수경.. 단종애사, 영월 장릉 관음송, 엄흥도 소나무 (2021.06.27)

푸레택 2021. 6. 27. 20:18

△ 출처: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
△ 출처: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
△ 출처: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
△ 출처: 옌타이 천왕님 블로그 사진 (콜라주 편집)

■ 두견새 우는 청령포 / 심수경

1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고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2
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굽이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백년 그 역사의 비각만 남아있네

3
동강물 맑은 곳에 비춰주는 달을 보고
님 가신 뒤를 따라 꽃과 같이 사라진
아름다운 궁녀들의 그 절개가 장하구나
아~ 낙화암 절벽에는 진달래만 피고지네


https://youtu.be/escxhSElsCM

https://blog.naver.com/hanco52/222411509195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3) - 단종어소 ~

6월 17일(목), 청령포에 첫발을 딛고, 청령포 유지의 일등공신 금표비를 애잔한 마음으로 어루만져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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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hanco52/222405955405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1) - 청령포 ~

6월 17일(목) 아침 7시, 수서역 1번 출구로 갔다. 실버넷TV 황기자님을 만나서 박기자님의 싼타페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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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 청령포(寧越 淸泠浦)

영월 청령포는 조선 단종의 유배지이다. 단종은 세조 찬위 후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이곳에 유배되었다가 암살되었다. 2008년 12월 26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영월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 형성된 곳으로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 등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을 비롯하여 단종의 어가 주변에 조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림이 270° 돌아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원래는 영월군에서 관리하였으나 2009년 명승지로 지정되면서 문화재청으로 이관되어서 문화재청 장릉관리소에서 겸임 관리를 하고있다. 산림청 공인지정 천년의 숲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주변에 강이 흐르고 있어서 청령포 유람선을 타고 갈 수 있으며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御所)와 금표비, 와송(臥松)과 망향탑 등이 있다.

단종의 어소는 단종이 생전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 곳에서 글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였으며 밤에 몰래 찾아온 엄흥도와 대화를 나누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엄흥도는 매일 밤이 되면 청령포 강을 건너서 어소에 자주 들리면서 단종이 암살되어서 영면할 때까지 그의 말동무가 되어서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종이 영면하게 되었을 때는 최후까지 그의 시신을 영월읍으로 이동하여 안장하였고 이것이 후의 장릉으로 불리게 된다.

유일하게 청령포를 오갔던 사람이자 단종의 말동무 역할을 하였으며 단종의 어소에 무단으로 출입하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단종을 생각하며 매일 밤이면 감시중인 군사들의 눈을 피해서 청령포 강을 건너서 어소에 있는 단종에게로 찾아와서 말동무가 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종은 유배 초기에는 밤이 되면 사람이 없는 외로운 분위기 때문에 슬픔에 잠기게 되었던 편이었으나 엄흥도가 매일 밤 몰래 어소로 들리면서 그나마 위안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종이 유배 당시의 청령포는 왕의 어명에 따라 누구도 어소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유지하였던 편이었다. 또 단종을 데려가는 목적으로 청령포의 강을 건너도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엄흥도 이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였던 곳이었다. (출처 위키백과)

■ 단종의 한이 서린 유형의 땅

영월 청령포
문화재 지정 명승 제50호
소재지 강원 영월군

원통한 새 한 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누나
밤은 오는데 잠은 이룰 수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새벽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여명의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 단종, 〈자규시(子規詩)〉

어린 단종의 한과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피맺힌 절규다. 단종은 어린 시절 자기를 업어주던 할아버지 세종의 인자한 모습과 집현전 학사들에게 세자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요절한 아버지 문종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낳고 3일 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왕위 회복을 위해 충정을 다한 사육신의 죽음, 그리고 생이별한 아내 정순왕후의 비통한 모습이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 어른거렸다. 어린 나이에 육지 속의 고도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은 한없는 슬픔에 잠겼다.

청령포는 영월의 서강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은 육육봉이 험준한 층암절벽으로 솟아 있고 주위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내륙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이 유형(流刑)의 땅은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다. 바로 1457년(세조 3)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청령포다.

청령포는 서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만들어진 요새와 같은 곳이다. 말굽처럼 휘돌아 나가는 서강의 물줄기는 오랜 세월 동안 산을 깎아 동쪽, 남쪽, 북쪽이 모두 강물로 감싸인 아주 특이한 지형을 만들었다. 슬픈 역사를 지닌 서강의 청령포는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나루에서 바라보면 푸른 강물로 둘러싸인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물 건너로는 깨끗한 자갈과 흰 모래밭이 강굽이를 따라 펼쳐지고 위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가로로 길게 조성되어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다. 솔숲 뒤로는 험준한 지세의 육육봉이 기암괴석으로 배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비경을 보여준다.

청령포 전경 서강이 험준한 육육봉을 휘돌아가는 곳에 자리한 청령포는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의 유배지다.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답다. 창송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 있다.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 있는데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그의 오열(音)을 들었다고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음송은 높이가 30m에 달하는 노거수로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란 형태다. 수령은 약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의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하여 계산한 것이라 한다.

관음송 유배된 단종의 모습을 보고 그의 애끓는 오열을 들었다는 관음송은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령포에는 단종어가, 단묘유지비, 노산대, 망향탑, 금표비 등 단종과 관련된 여러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단종어가는 소나무 숲과 연접하여 건립되어 있다. 2004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내부에는 인형으로 단종이 만들어져 있어 역사적 장소성을 잘 보여준다. 마당에는 1763년(영조 39) 영조의 친필을 각자하여 세운 단묘유지비가 서 있다. 높이 162cm의 크기로 화강암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단종이 청령포에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청령포 서측의 능선에는 노산대와 망향탑이 위치하고 있다. 단종은 층암절벽 위에 자리한 노산대에서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간절히 생각하며 흩어져 있는 돌을 쌓아 망향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에 금표비가 서 있는데 영조 2년(1726)에 세워진 것으로 청령포의 동서 방향으로 300척, 남북으로는 490척 안에서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 퇴적된 흙을 파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망향탑 왕후 송씨를 생각하면서 눈물로 쌓은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다.

1457년 여름에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잠기고 말았다. 그래서 단종은 두어 달 만에 영월부사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는데 10월에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청령포 강 건너 나루 옆에는 단종의 유배길과 사형길에 금부도사로 왔던 왕방연의 시비가 서 있다. 그는 왕명을 수행하는 관리였기 때문에 단종에게 내려진 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왕방연의 심정을 담은 그의 시 〈회단종이작시조(懷端宗而作時調)〉는 비석에 이렇게 남아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千里遠遠道
고운님 여의옵고
美人別離秋
내 마음 둘 데 없어
此心未所着
냇가에 앉았으니
下馬臨川流
저 물도 내 안과 같아서
川流亦如我
울면서 밤길을 가더라
鳴咽去不休

영월은 단종과 관련된 역사의 땅이다. 단종의 능인 장릉이 소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왕릉은 한양에서 100리 이내에 두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조선의 왕릉 중에서 단종의 능만이 유독 한양에서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단종은 죽임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졌는데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홍도가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산자락에 암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는데 100여 년이 지난 중종조에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 묘역을 정비하였고, 250여 년이 지난 숙종조에 와서야 비로소 단종으로 복위되어 무덤도 장릉이란 능호를 갖게 된 것이다.

단종의 슬픈 역사로 점철된 청령포는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청령포에는 ‘구하도’라는 것이 있다. 감입곡류 하천이 큰 모양으로 형성되어 흐르다가 중간 부분이 터져 물돌이가 짧게 휘돌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청령포 하천의 모습이다. 옛날에 물길이었던 곳은 그 후로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하천 지형만 남게 되는데 이를 구하도라 한다. 청령포 앞의 구하도는 중요한 지리학적 의미를 갖는 지형이다.

청령포는 물돌이, 소나무 숲, 관음송, 육육봉의 기암절벽 등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은 물론 단종과 관련된 역사적 의미가 매우 깊은 장소다. 이러한 장소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2008년 문화재청에서는 청령포를 명승 제50호로 지정했다. 청령포가 명승으로 지정된 후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영월군에는 청령포 외에도 선돌, 한반도 지형 등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명승들은 볼거리로 연결되어 활용의 상승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따라서 영월을 찾는 탐방객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숨어 있는 명소를 발굴하여 명승으로 지정하는 것은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것이자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을 확보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출처 다음백과)

■ 영월 청령포 관음송

위치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문화재 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1988.04.30 지정)

단종 유배생활의 벗, 영월의 관음송

한강 상류지역인 영월군 남면의 강 가운데 고립된 작은 섬의 소나무숲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수령 600년의 천연기념물이다. 높이는 30m에 이르고, 가슴높이에서의 둘레가 5m나 된다. 밑에서 1.2m되는 높이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있는데,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관음송이라는 이름은 청령포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조선의 제6대왕인 단종은 숙부인 세조로부터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단종은 눈물과 비애, 그리움, 외로움 속에서 처소 바로 옆에 있는 소나무에 걸터앉아 마음을 달래었다. 바로 이러한 단종의 모습과 슬픈 말소리를 보고 듣고 했다 하여 ‘관음(觀音)’이란 이름이 이 소나무에 붙여졌다는 것이다.

국가의 재난을 슬퍼하는 소나무

단종의 영혼이 깃든 관음송은 더 이상 보통의 소나무가 아니었다. 신령스러운 나무가 된 것이다. 관음송에는 국가에 위난이 닥칠 때마다 어떤 변화가 있어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다. 나무의 껍질이 붉으스레한 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여 그 변고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 관음송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음백과)

/ 2021.06.27 편집 택


https://youtu.be/5Ep40-vnaCI

△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영월 청령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