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인생] 가곡 가요 동요 찬송가

[노래인생] '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물위에 지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2021.06.22)

푸레택 2021. 6. 22. 17:28

❤? 동심초 / 김안서 역시(譯詩), 김성태 작곡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원작(原作) 시(詩): 가곡 ‘동심초’ 가사 중 일절 가사는 중국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薛濤 : 768~832)‘춘망사(春望詞)’라는 제목으로 지은 5언 절구 4수의 시 중 세번째 수를 번역한 것이다.

■ 애간장을 녹여주는 노래 '동심초' / 김덕권 시인

학창시절 가곡 ‘동심초(同心草)’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멜랑꼴리에 빠져 잘 부르지도 못하는 이 가곡 동심초를 소리 높여 부르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세상에 하고 많은 노랫말 중에 어디 사연이 없는 노랫말이 있겠습니까마는 이 동심초의 노랫말처럼 우리들의 애간장을 녹여주는 노래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심초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 애절함에 공감을 하는 우리 가곡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우리나라의 시인이 쓴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이려니 그렇게 생각들을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가곡 동심초의 가사는 소월(素月)의 스승이라는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역시(譯詩)이고 작곡자는 김성태(金聖泰)로 되어 있습니다.

원작(原作) 시(詩)는 무려 천여 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중국 당(唐)나라 때의 설도(薛濤 : 768~832)라는 명기(名妓)이자 여류 시인이 ‘춘망사(春望詞)’라는 제목으로 지은 5언 절구 4수의 짧지 않은 시입니다. 이 중 이 시의 4수 중 세 번째 수를 번역한 것입니다.

춘망사(春望詞)

花開不同賞(화개불동상)
花落不同悲(화락불동비)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꽃 피어 화사한데 함께 할 이 없고

꽃 져서 쓸쓸한데 함께 할 이 없네
무어라 그대는 어드메 있어
꽃 피고 질 때마다 그리워하나

攬草結同心(남초결동심)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
春愁正斷絶(춘수정단절)
春鳥復哀吟(춘조부애음)


풀 뜯어 맘과 맘을 매듭지어서

날 아실 그님에게 보내려 하네
그리워 타는 마음 잦아들 적에
다시 또 애달피 봄새가 우네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蕃作兩相思(번작량상사)
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
春風知不知(춘풍지불지)

가지마다 피어난 꽃 어찌 보려나
꽃잎마다 그리움 고이 쌓이네
아침마다 거울에 떨구는 눈물
이 마음을 봄바람은 알까

어떻습니까? 처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천년도 훨씬 더 이전에 살았던 한 여인의 글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중, 서로 그리워하는 연인을 두고 지은 글이라 해도 그 애절함은 정서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모두 바뀌어도 사람의 본마음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4대 여류시인 중 한사람인 설도와 우리나라의 황진이와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억압받던 시대의 여성입니다. 기생이라는 큰 공통점 외에 기녀이면서도 나름대로 절개를 지키며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하고 많은 작품을 남긴 것 등이 그렇습니다.

이 시를 지은 ‘설도’는 지금 중국 산시성 서안(西安) 출신으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관리인 설운의 외동딸로 어릴 적부터 매우 총명했다고 합니다. 설도의 아버지 설운은 성품이 곧고 바른 소리를 잘 하다가 사천성 성도로 좌천되었고, 설도가 14세 때 아버지가 죽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가기(歌妓)로 팔려 갔습니다.

설도는 음률과 시, 서예 등에 출중하게 뛰어 났으며 미모까지 겸비하였습니다. 그녀는 생전에 많은 시를 남겼는데 현재 약 90수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사천성 안무사(按撫使,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인 위고란 인사가 술자리에 그녀를 불러 시를 짓게 하고서, 그녀가 지은 시에 감탄한 나머지 ‘여교서(女校書)’란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후, ‘교서(校書)’란 명칭이 훗날 기생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설도는 자기보다 열한 살이나 연하인, 당시 명성이 자자한 유부남이고 관직이 감찰어사인 원진이란 사람이 자기의 이상형이라고 생각하고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원진과의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서 결국 원진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맙니다.

설도는 주위에서 많은 청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직 원진만을 생각하고 독신으로 여생을 마쳤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사랑인가요?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 잊을 수 없는 그런 사랑, 우리 언제 다시 해 볼 수 있을까요? (글=김덕권)

[출처] 브레이크뉴스 (2020-05-25)

■ [서상욱의 한시 산책] 동심초의 에로티즘

「동심초」를 아시나요? 100세가 넘어 작고하신 김성태 선생의 곡입니다. 선생은 젊은 시절에 김소월의 스승 김안서 선생께서 한시를 번역하여 엮은 시집 《망우초》에서 동심초의 가사를 발견하고 당일 눈 내리는 겨울밤에 곡을 만들었습니다.

동심초를 처음 부른 권혜경은 ‘산장의 여인호반의 벤치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김안서의 번역시를 본 서울대 음대의 젊은 교수 김성태는 곧바로 곡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마음이 들어 학교로 달려갔답니다.

김성태가 추운 연구실에서 밤이 늦도록 곡을 다듬는 동안 권혜경은 꿈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는 지금 네가 부를 노래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날이 밝기 전에 빨리 동숭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가라고 했답니다.

권혜경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김성태는 곡을 짓느라고 추운 겨울밤을 보냅니다. 동이 트기 전에 곡을 완성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오던 김성태는 정문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기다리던 권혜경이 정중히 인사를 하자 깜짝 놀랍니다. 권혜경은 지금 지은 노래를 자기가 부르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약 1300년 전 설도(薛濤)라는 중국의 여류시인이 쓴 춘망사(春望詞)의 9-12구절을 김안서가 우리말로 바꾼 것입니다. 저는 김안서의 시집 《망우초(忘憂草)》를 보고 기가 죽어서 한동안 한시 번역을 중단했지요. 번역은 우리말을 잘 구사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설도는 이청조(李淸照) 주숙진(朱淑眞)과 함께 중국의 3대 여류시인으로 손꼽히는 명사였습니다. 그녀가 살던 당대에 사천성 성도(成都)는 외진 곳이지만 중원과 다른 풍성한 자연환경과 농익은 인문환경이 융합되어 풍요함을 자랑하던 곳이었지요. 집안이 몰락하여 설도는 기생이 됩니다.

타고난 재능이 빛나자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그녀와 교류합니다. 설도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색깔의 종이에 글을 적어주었는데 그것을 설도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명사라면 적어도 설도전 몇 장은 있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어느날 원진(元縝)이라는 청년이 성도로 옵니다. 《앵앵전》이라는 유명한 연애소설의 작가이기도한 그는 진사과에 합격한 전도양양한 멋진 젊은이였습니다. 물론 대단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설도보다는 10살 이상 어렸지요. 여인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미남자였지요. 어지간한 설도도 그에게 반했습니다. 그러나 원진은 당대 최고의 바람둥이였습니다. 원진이 지은 《앵앵전》은 자신의 카사노바적 행각을 토대로 합니다. 둘의 사랑은 매우 짧았습니다.

이 시는 일반적으로 원진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담은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에서 30대 중반이 넘어 여자로 만개한 설도의 강한 에로티시즘을 느낍니다. 전편을 감상해볼까요?

화개부동상(花開不同賞)
화락부동비(花落不同悲)
욕문상사처(欲問相思處)
화개화락시(花開花落時)

꽃이 필 때도 같이 즐기지 못했고
꽃이 질 때도 함께 아쉬워하지 못했어요
어디 계시나요
꽃은 또 피고지는데

남초결동심(攬草結同心)
장이유지음(將以遺知音)
춘수정단절(春愁正斷絶)
춘조부애음(春鳥復哀吟)

풀잎 맺어 제 마음 담고
그대에게 보내드려요
봄 시름 겨우 잊으려는데
봄새가 다시 슬피우네요

풍화일장로(風花日將老)
가기유묘묘(佳期猶渺渺)
불결동심인(不結同心人)
공결동심초(空結同心草)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도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나감화만지(那堪花滿枝)
번작양상사(飜作兩相思)
옥저수조경(玉箸垂朝鏡)
춘풍지부지(春風知不知)

어이해요 가지 가득 피어난 꽃을
뒤척일수록 그리움만 짙어져요
옥비녀 꽂으며 거울을 보네
봄바람아 이 마음 아느냐 모르느냐

3번째 연이 바로 김성태 선생의 동심초 원시입니다. 처음 권혜경이 이 노래를 발표하자 장안이 온통 떠들석했습니다. 라디오 드라마는 물론 동명의 영화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권혜경은 대중가요를 부르던 가수였는데 특유의 촉촉하면서도 맑은 음색은 가곡적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대중가요도 아니고 가곡도 아니고 대중가요이면서도 가곡인 동심초는 지금도 양쪽 모두에 걸쳐있습니다. 유튜브와 음원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더군요. 동심초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에서 짙은 에로티시즘까지 다양한 차원의 감상이 가능합니다.

권혜경에 비해 조수미는 가곡에 무게를 두다가 이 노래에 숨은 에로티시즘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에로티시즘과 포르노그라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후자는 허리 아래를 자극하고 전자는 가슴을 자극합니다. 에로티시즘의 어원은 에로스eros로 그리움 또는 갈망을 의미합니다. 철학을 의미하는 philosophy에서 philo는 eros를 sophy는 knowledge 또는 wisdom을 의미합니다.

지식과 지혜에 대한 갈망이 곧 철학이지요. 이 갈망은 불멸의 단계로 발전하려는 정신적 충동이자 어떤 것과 하나가 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지요. 플라톤의 말을 빌리겠습니다. 애초에 인간은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남자 여자 혼성이지요. 신과 별 차이가 없어서 걸핏하면 덤비거나 불복종했습니다.

플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것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자 화가 난 제우스가 둘로 나누었다는군요. 에로스는 잃어버린 짝을 찾는 그리움이랍니다. 동성애와 양성애와 이성애는 이렇게 시작되었답니다. 그렇다면 에로티시즘은 육체에 대한 사랑입니다. 육체를 배제한 정신적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합니다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심초가 왜 에로틱할까요. 잠깐 옆길로 새겠습니다. 작고하신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 봉남씨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sexy한 것이 무엇입니까? 봉남씨 왈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운 것이라더군요. 그럼 선생은 섹시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원래 숫놈이 화려하다고 화를 내시더군요.

동심초에는 여성의 섹시함을 상징하는 몇 개의 컨셉이 있습니다. 우선은 꽃입니다. 모든 꽃은 식물의 자궁이자 생식기입니다. 최고 인기 작가 조지아 오키프의 꽃그림 세 작품을 보세요. 과연 진한 에로티시즘을 느낍니까? 벌과 나비가 꽃에 드나드는 것은 동물의 intercourse 즉 성교합과 같습니다. 꽃향기는 이성을 유혹하는 페르몬과 같습니다.

모든 예술적 표현에는 작가의 무의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예술성이 강할수록 주관과 무의식이 강합니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유일해야지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 있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꽃이 필 때는 그와 사랑을 나눈 때이고 꽃이 질 때는 그것이 닫힌 때입니다. 기대한 만큼의 환희는 없어서 애써 채우지 못했더라도 설도는 함께 아쉬워할 수 있었더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자신을 달랩니다. 저속한 포르노그라피에서 우아한 에로티시즘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지요.

그래서 되묻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곳 사랑했던 때가 생각나냐고. 원진은 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지나치리만큼 예민한 연상의 여인에게 지쳤을까요? 그의 문집에서는 설도를 연상하는 작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자기 부인에 대한 애절한 시는 있습니다. 설도도 알았겠지요. 원진이 자기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이상하게도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리기도 합니다.

그녀는 풀잎을 뜯어서 고리를 만듭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클로버로 만든 시계나 반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동심초라는 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설도가 엮은 풀반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재치가 있는 분이라면 적당한 풀을 골라서 동심초라 부르고 멋진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겠네요. 풀로 만든 고리에 바로 설도류의 진한 에로티시즘이 숨어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띠풀을 재생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여리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는 풀로 동심초를 엮는 설도의 행위가 어떻게 에로틱할까요? Lovemaking에는 before inter after가 있다네요. 남자가 진심으로 여자를 사랑하면 after를 중시한답니다. 풀은 soft touching으로 촉각과 가깝습니다. 꽃이 시각과 후각을 건드리는 before라면 풀은 촉각에 집중할 after인 셈이지요. 꽃이 피고 지는 사랑이 지난 후 부드러운 풀로 연하의 연인을 엮으려고 합니다.

쇠사슬로 묶어도 불안할 것인데 여린 풀로요? 음양론에서는 음의 성질을 포양(抱陽)이라고 했습니다. 강성인 양은 연성인 음으로 안아야한다는 뜻입니다. 포음(抱陰)이라는 말은 없어요. 양기가 넘치면 파괴적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심오한 철학이지만 이러한 현상을 시각화하면 상당히 에로틱하지요? 나는 꽃보다 풀에 훨씬 강한 에로티시즘을 느낍니다.

동심초의 가사와 마지막 구절에도 사실은 절묘한 에로티시즘이 있지만 오늘은 지나가겠습니다. 이 시를 기승전결에 대입하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기와 승으로 놀라운 반전을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동심초는 누가 불러도 권혜경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호반의 벤치와 산장의 여인을 아우른 그의 노래와 동심초를 들으면 격조높은 에로티시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이 시대에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에로티시즘이 중요할까요? 유니섹스화로 인한 성정체성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입니다. 작고하신 앙드레김의 통찰에 박수를 보내며 그에게 이 글을 헌정합니다.

글=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출처] 여성소비자신문 2021.04.25

/ 2021.06.22(화) 편집: 사진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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