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인생] 가곡 가요 동요 찬송가

[세월따라 노래따라] '단장의 미아리고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983년 이산가족찾기 (2021.05.25)

푸레택 2021. 5. 25. 20:29

△ 사진: 개화산 호국공원에서 촬영 2021-05-23

■ 단장의 미아리고개 /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 (1956년)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계세요
어린 영구는 오늘 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에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오세요 네 여보 여보)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을 하오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 [위키백과 해설] 단장의 미아리고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한국 전쟁 휴전 후인 1956년 발표된 트로트 곡이다.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이며 노래는 이해연이 불렀다. 제목의 '단장(斷腸)'은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을 말한다.

미아리고개는 한국 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전쟁 발발 초기에 조선인민군과 대한민국 국군 사이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인민군이 후퇴할 때 피랍된 사람들도 가족들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배웅해야 했다. 작사가 반야월은 자신의 어린 딸을 전쟁 중 피난길에 잃은 개인적 경험과 연결지어, 미아리고개에서의 이별이라는 주제로 가사를 썼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구체적이며 애닲은 사연을 담고 있다. 철사로 손을 묶이고 맨발로 다리를 절면서 뒤를 자꾸만 돌아보며 북한으로 끌려가는 남편의 모습을 묘사하고, 기다리는 부인은 감옥살이중인 남편이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1절과 2절 사이 간주 부분에는 남편을 애타게 부르는 이해연의 대사도 삽입되어 있다.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표한 이 노래는 전쟁의 비극과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을 절실히 토로하여 큰 사랑을 받았고, 이해연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이 노래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미아리고개가 슬픔과 눈물과 한(恨)의 고개로만 각인되었다는 이유로 성북구청이 '미아동'이라는 동명을 바꾸려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정상에 위치한 소극장 미아리예술극장(구 아리랑아트홀)에 노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변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아 그 정성 새로워라
ㅡ '현충일 노래' 조지훈 작사, 임원식 작곡

△ 사진: 개화산 호국공원에서 촬영 2021-05-19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한운사 작사, 박춘석 작곡, 곽순옥 노래 (1964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드러운 정열에 화사한 입
한번 마음 주면 변함이 없어
님따라 님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 (1983년)

한국방송공사(KBS)가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무려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이산가족찾기 특별프로그램을 진행하여 10,189명의 이산가족이 만났다. 한국방송공사 아침방송 프로그램인 ‘스튜디오 830’는 6·25 연속 기획물로 6월 21일에 ‘아직도 내 가족을 못 찾았오’를 방송했다. 출연자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이산가족의 고통과 절절함을 인식하게 되고 반응이 대단했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한국방송공사 방송에서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라는 타이틀로 생방송했다. 방송 첫날 폭발적인 반응으로 당초 예정된 2시간의 시간에 2시간 30분이나 더 연장 방송했다. 한국방송공사는 모든 정규방송을 취소한 채, 5일 동안 ‘이산가족찾기’라는 단일 주제로 릴레이 생방송을 진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78%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7월 10일부터 해외 동포를 위한 생방송도 실시되었다.

이 방송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그해 11월 14일까지 총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되는 기록을 남겼다. 총 100,952건의 신청건수가 접수되어 10,180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다. 한국방송공사 사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가족을 찾는 벽보가 나붙었다. 1990년 1월에는 사할린방송국-서울-대구KBS를 연결하는 3각 위성방송을 통해 ‘사할린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간 사할린 동포와 국내 거주 가족들이 화면을 통해 상봉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등 갖가지 계기를 통해 이산가족문제가 생겨났지만 그동안 방치되고 있었다. 국가나 언론이 이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어야 했다. 당시 한국방송공사는 어용방송이란 오명을 들었지만,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통해 공영방송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감당했다.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은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시작된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현실화되는데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방송공사가 이산가족찾기특별생방송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자 신청하였으며, 2015년 10월초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에서 관련 기록물을 심사 완료하여 10월 9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2021.05.25(화) 편집 택

△ 사진: 개화산 호국공원에서 촬영 2021-05.-9

https://youtu.be/6a1RG6r7HhM

https://youtu.be/iqN-qxwxCc8

https://youtu.be/XmdLNb8y3gc

https://youtu.be/9kk11wIkCB0

https://youtu.be/QOp8JbXVW4E

https://youtu.be/HzoxDVm6voE

https://youtu.be/xcuWs9nKx0U

https://youtu.be/LrlBw_d-988

https://youtu.be/2_69hDmB634

https://youtu.be/pZuW2CV0m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