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레 / 김동인
움직이지 않는 수레를
굴리려 애쓴다
비탈길에서 손을 놓으면
제멋대로 내려가고
오르막길에서 손 놓으면
뒷걸음 쳐 도망가지
도와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비를 맞지
움직이지 않는 수레
같이 가 주길 바라는 수레
두 손으로 네 손 꼭 잡아주고
당겨주고 밀어주고
짐도 덜어주며
타이르는 수 밖에
네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걷는 수 밖에
그럴 수 밖에
■ 땔감 / 김동인
눈보라 치는 한 겨울
냉골이 된 방 아궁이에 해지기 전 일찌감치 불을 지핀다
아버지는 어제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한가득 싣고 오셨다
이제는 열매 맺지 못하고
제 구실 못하는 것들이 실려왔다
뚝뚝 잘도 부러진다
제 나무에 붙어만 있었어도
아궁이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을
땔감이 되진 않았을 텐데
빨간 불꽃이 연기를 뿜으며
커다란 쇠솥 밑둥을 사정없이
달구어 댄다
솥 안 여물은 푹푹 잘도 삶아지고
안방 아랫목은 벌써 뜨끈뜨근하다
오늘 밤은 너무 더워서
뒤척이다 잘 게 뻔하다
■ 사진 / 김동인
오래된 사진첩을 보다가
어린 소녀가 거기 있네
옛 기억이 여기 있네
나를 보고 있는 어린 소녀
검게 그을린 작은 얼굴
멈춰 있는 눈동자
멈춰 버린 어색한 표정
사십 년이 지나버린 세월이
어린 소녀를 찿아간다
아무 바램도 없던 시절
철부지 꼬마 단발 소녀
웃지 않는 얼굴이 신경쓰인다
그 소녀 지금 어디 있을까
오래된 사진첩에
소녀를 다시 넣어두고는
멈추지 않는 초바늘을 느낀다
지는 해를 그대로 보내 준다
■ 초승달 / 김동인
손이 닿을 수 없는 우주 공간에
무엇이 부끄러워 고개 다 못들고
동그란 너의 얼굴 초승달 만들어
님 오길 기다리나 칠흑 같은 이 밤에
ㅡ 이천에서 보내온 봄비의 詩
/ 2021.06.21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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