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들꽃산책] 수련, 연꽃, 수국꽃, 백합꽃, 루드베키아.. 화려한 꽃들의 향연 (2021.06.19)

푸레택 2021. 6. 19. 16:47

?? 서울식물원의 초여름 풍경 ??

■ 나리꽃 / 도종환

세월의 어느 물가에 나란히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무심히 바라보았으면 싶습니다
흐르는 물에 머리 감아 바람에 말리고
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나이가 들었으면 싶습니다
살다보면 어느 날 큰물 지는 날
서로 손을 잡고 견디다가도
목숨의 이파리 끝까지 물은 차올라
물줄기에 쓸려가는 날 있겠지요
사천삼천 꿈이 물줄기 두 발짝도 못 가서 손을 잃고
영영 헤어지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또다시 태어나는 세상의 남은 생애를
세월의 어느 물가에서 따로따로 그리워하며 살겠지요
그리워하다 그리워하다 목이 길어진 나리꽃 한 송이씩 되어
바위 틈에서고 잡풀 속에서도 살아가겠지요

■ [이유미의 나무야 나무야] 숲에는 나리, 정원에는 백합 /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오랜만에 오랜 친구들과 숲길을 산책했다. 항상 숲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 누구와 걷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참 다르다. 숲이 담은 것도 무궁하고, 그 숲을 담아내는 마음도 무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고 살았던 세월의 길이가 만나기 이전보다 훨씬 긴 오랜 친구들과 느릿느릿 추억과 함께 걸어가는 여름 아침의 숲길은 늘 새롭다.

초록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은 환하지만 부드러웠다. 살짝 배어나오는 땀방울은 숲 사이로 불어오는 소소한 바람과 만나 상쾌하게 증발되었다.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우리의 웃음을 담은 말소리는 그 어떤 한 가지 소리가 튀어 오르지 않고 서로 섞여 행복했다. 몸과 마음이 숲과 친구들로 치유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걷던 숲길에서 내 눈길을 잡아 마음에 콕 박힌 것은 곱게 핀 ‘하늘말나리’였다. 나는 숲에서 쉬기보다는 일하는 경우가 많고, 식물상을 조사하려면 그 숲의 수백종 식물을 하나도 놓쳐서는 안된다. 그래서 특정 식물에만 마음을 주어서는 안되고, 반대로 희귀하거나 새로운 식물처럼 목표한 것이 있는 날은 그 식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런 연유로 초여름 숲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하늘말나리’에 특별한 마음을 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목적을 비우고 나니 초록 숲에 피어나는 이 꽃의 주홍빛이 얼마나 맑고 선연한지, 가녀린 꽃대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송이가 얼마나 고운지, 그만 그만한 풀숲에서 툭 올라와 핀 자태가 얼마나 특별한지…. 자꾸 자꾸 눈이 갔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이금이 작가의 창작동화가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을 때 많고 많은 식물 가운데 왜 이 꽃이 불렸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종환 시인이 왜 ‘나리꽃’이라는 시에서 “세월의 어느 물가에 나란히 앉아/ 나리꽃만 한나절 무심히 바라보았으면 싶습니다”라고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리’는 다 알거나 알고 있는 듯한 우리 꽃으로 여기고 있지만 막상 식물도감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늘말나리, 참나리, 중나리, 땅나리 등 여러 종류의 나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 그만하게 느껴져 무신경하게 “나리”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어여쁜 나리들을 구분해 불러주면 훨씬 즐거워진다. 꽃이 하늘을 보고 있으면 ‘하늘나리’, 땅을 보고 있으면 ‘땅나리’, 중간을 보고 있으면? 맞다. ‘중나리’다. 잎이 줄기에 마주 보지 않고 동그랗게 돌려 나면 ‘말나리’인데, 꽃이 하늘을 보고 피면서 잎이 돌려 나면 ‘하늘말나리’가 된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백합은 나리의 한자 이름이다. 흔히 희고 향기로운 백합 때문에 흰 백(白)자를 쓸 것 같지만 일백 백(百)를 서서 백합(百合)이다. 땅속의 비늘줄기가 여러 개 모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영어 이름은 ‘릴리(Lily)’다. 야생의 백합이 나리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피어나는 우리 꽃 나리보다 백합이 왜 더 익숙한 것일까? 숲에서 꽃을 만날 기회는 적고 주로 정원이나 꽃가게에서 접했기 때문일 게다. 실제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서양에서 개량한 원예품종인 백합을 보고, 듣고, 이야기해오지 않았는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백합 품종을 육종(育種)하곤 한다. 이런 백합 품종은 어린아이 얼굴만큼 큼직하고, 향기도 외국 꽃들과 흡사하다. 백합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꽃들이 그러하다.

우리가 개량해 꽃으로 보고, 열매나 잎을 먹는 모든 식물들은 야생의 종류에서 기인한다. 다양한 유전형을 가진 ‘야생의 풀(pool)’에서 사람들은 꽃을 크게, 과일을 달콤하게, 추위에 잘 견디고 병에 안 걸리도록 개량하거나 교잡해 새로운 식물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방사선 처리로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방식의 육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꽃들은 이렇게 개량돼 외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미스김라일락이나 실버구상나무처럼 우리 고유의 식물들이 외국으로 유출돼서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돼 큰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다. 울릉도 특산 식물인 ‘섬말나리’나 강원도에서만 드물게 자라는 ‘날개하늘나리’도 이미 외국으로 유출돼 좋은 품종을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정원문화가 확산되면서 아름다운 정원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우리 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숲에 있는 야생식물과 정원에 심는 꽃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숲과 들에서 사는 식물들을 캐내 다른 곳에 옮겨 심는 것은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은 자원 유출이다. 우리가 정원에 심는 꽃은 채취가 아닌 자연증식된 것이어야 하고, 수출하는 것은 상품화된 것이어야 한다.

숲의 나리가 ‘정원의 백합’ 또는 ‘정원의 나리’가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외국의 꽃들은 오랜 기간 목적에 맞게 육종되고,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키우면 되는지 연구된 것들이다. 한때 야생화 붐이 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생화를 심었지만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도 식생조건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른 시일 내에 성과를 올려야 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야생화 연구는 피하고 싶은 과제이기도 하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정원에 외국 꽃들이 들어차게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꽃 10가지 중 9가지가 외국 꽃인 현실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국립수목원은 예산당국을 설득해 내년부터 우리 식물과 꽃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설렘 반, 걱정 반이다. 비판보다는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출처] 경향신문 2016.07.11

■ 이굴기의 꽃산 꽃글] 하늘말나리 /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시 100편 암송하고 졸업…살아가는 데 힘과 위로 줍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경향신문9월2일자). 17년째 중학생들의 가슴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선물하는 어느 선생님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게 실마리가 되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예전 민음사에 근무할 때 ‘세계의문학’ 편집위원들과 김우창 선생님께 신년 세배를 갔었다. 어느 해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오래 안 잊혔다. 미국의 생태주의 시인, 게리 스나이더의 주장인데 아이들한테 동식물 이름 100개를 외우게 하면 심성 공부에 아주 좋다는 것이었다. 그냥 흘려들을 법도 한데 마음의 공감이 컸던가 보다. 그 말씀을 접수한 이후 인왕산 자락을 어슬렁거리는 동안 소나무 말고 정확하게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나무가 하나도 없다는 자각이 문득 일어났다. 뻔질나게 산을 들고나지만 비닐 봉지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호흡하는 기분. 그 난처하고 답답한 사정을 벗어나려다가 결국 꽃산행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의 어느 지리산 등산길.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가 어둑한 저녁에 치밭목에 도착하니 산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캄캄한 밤중. 오늘 만난 꽃을 중심으로 흐르던 화제가 급기야 하늘로 향했다. 하늘에는 별, 들에는 꽃, 가슴에는 꿈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떠오르기도 했다. 바람만 피하는 자갈마당에 겨우 자리를 비집고 눕자 하늘의 별이 초롱초롱했다. 꽃이 꽃으로 되려면 꽃만으로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꽃이 딛고 있는 흙이며 바위, 바람, 별에게로 공부가 확장되어야겠구나! 사소하고도 웅장한 결심을 했더랬다. 곤히 자고 일어났더니 허리에 배긴 돌 하나에 몸이 뻐근했다.

가랑잎초등학교가 있는 유평마을로 가는 길은 여유가 있었다. 하산 도중에 많은 꽃을 만났지만 단연 눈길을 끈 것은 하늘말나리. 나리 종류 중에서 꽃잎이 아래나 옆이 아니라 위를 향하는 꽃이다. 다시 말해 편평하게 돌려난 잎 위로 쭉 뻗어올라 하늘을 향해 환히 벌어진 꽃이다. 별, 꽃, 꿈 그리고 돌로 연결되는 이 거대한 고리에 시(詩)도 끼워 넣으면서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하늘말나리.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글=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출처] 경향신문 2015.09.14

■ 시 100편 '암송'하고 졸업.. 살아가는 데 힘과 위로 줍니다

'17년째 이색 전통' 주도하는 서울 동도중 박찬두 교사

졸업할 때까지 한국의 명시 100편을 낭송이 아닌, ‘암송’을 한다. 소설도 100편 완독한다. 서울 동도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다. 10년 넘게 시 암송과 소설 읽기를 주도해온 박찬두 국어교사로선 ‘독서의 달’인 9월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상급학교 진학에만 매달려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의 정신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1일 서울 마포구 동도중 도서관에서 만난 박 교사는 “인성교육에는 시 암송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시를 암송하면 영혼이 맑고 깨끗해지며, 언어가 순화되고 어휘력이 향상된다”고 덧붙였다.

시 암송은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박 교사를 비롯해 동도중 국어교사들이 3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국내 시 100편을 선정하면서 시작됐다. 제자들에게 《시경》을 암송시킨 공자나 시를 입에 달고 살았던 조선시대 문무관들 역시 인성교육의 핵심으로 시를 꼽았다는 박 교사는 특히 어렸을 때부터 시 암송 교육에 열중하는 프랑스에 주목했다.

“프랑스의 모든 예술교육 바탕에는 ‘시’가 있습니다. 유년 시절 암송했던 시의 느낌을 춤으로, 노래로, 그림으로 표현하니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수밖에요. 철학의 나라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지요.”

문학의 기본인 시를 통해 가슴을 적셨다면 논리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소설도 읽혀 조화를 이뤄야겠다고 생각한 박 교사는 14년 전부터 소설 읽기도 병행하게 했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각 한 편꼴로 시를 외우고 단편소설을 읽는다. 시 암송과 소설 감상문 점수는 수행평가에 반영된다. 박 교사는 “학생들의 90% 정도가 시 100편을 외우고 졸업한다”고 말했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거부감도 있을 법하지만, 그건 ‘기우’라고 했다. 학생들이 힘들어하니 그만하자는 교사들의 의견도 없지 않았으나 학부모들이 계속할 것을 요구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무엇보다 암기력도 좋아지고 언어영역이 강해지면서 다른 과목의 성적도 따라서 올라갔다는 졸업생들의 경험담이 재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동기부여가 됐다. 학력 신장보다는 어디까지나 ‘사람됨’이 시 암송과 소설 읽기의 목적이라고 박 교사는 강조했다.

“옛날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사서삼경을 다 이해했겠습니까. 시집 한 권을 읽는 것도 좋지만 한 편을 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억되기 때문이죠.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여학생은 이해인 수녀의 시 한 편을 암송하며 펑펑 울기도 했다고 전하는 박 교사는 학교폭력 건수가 ‘제로(0)’가 된 것도 시 암송 덕으로 본다. 이날 방문증을 목에 걸고 교무실까지 가는 사이 마주친 대여섯 명의 학생이 머리를 조아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것도 그 때문이냐고 묻자, 박 교사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얼마 전, 창원의 모 중학교 교장이 찾아온 적도 있다고 한다. 독서를 통한 인성교육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 교장은 17년간 제자를 위해 묵묵히 걸어오며 학생들의 정서 함양에 노력하는 선생님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칭찬해줬다고 박 교사는 전했다. 시 암송 프로그램을 도입한 뒤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한 박 교사는 “시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암송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에서는 동시를, 중학교에서는 한국의 명시를, 고등학교에서는 세계 명시를, 대학에서는 아름다운 한시를 암송하면 어떨까요. 국민성도 달라질 것이고 한국의 문명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요.”

글=고영득 기자
[출처] 경향신문 2015.09.01

[사진] 서울식물원 주제원에서 촬영 (2021.06.19)

/ 2021.06.1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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