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들꽃산책] 신기하고 신비로운 꽃, 이런 꽃 보셨나요? (2021.06.17)

푸레택 2021. 6. 17. 20:42

◆ 힘들고 지친 마음을 내려 놓고 신비한 꽃을 보며 잠시 소소한 즐거움 느껴보아요.

● 꽃이 죽은 곤충 냄새 풍겨 파리를.. 그 꽃의 번식 전략 / 조홍섭 한겨레신문 기자

쥐방울덩굴 일종, 파리 유인해 일시 감금해 가루받이

△ 땅바닥에 누워 독특한 곤충 썩는 냄새를 풍기는 그리스 고유종 쥐방울덩굴의 꽃 모양. 토마스 루프 외 (2021) ‘생태학과 진화 최전선’ 제공

식물이 꽃꿀과 꽃가루를 주면 그 대가로 곤충은 가루받이해 주는 식물과 곤충 사이의 오랜 공생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니다. 줄 것은 주지 않고 받을 것만 챙기는 속임수가 흔하다. 그런 식물이 꽃을 피우는 식물의 4~6%나 된다.

난은 성적 속임수로 가루받이하는 대표적인 식물이다(▶희귀 난의 ‘성적 기만’…성호르몬으로 하늘소 유혹해 생식). 그러나 난과 거리가 먼 다른 식물도 이런 전략을 편다.

세계 최대의 꽃을 피우는 동남아 열대우림의 라플레시아는 그런 유명한 예다. 최대 지름 1m 무게 10㎏에 이르는 이 기생식물의 꽃은 고기 썩는 냄새를 풍겨 파리를 불러모아 가루받이를 한다. 물론 고기를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포유류가 아닌 곤충이 죽어 풍기는 독특한 냄새로 곤충을 유혹하는 식물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 썩은 고기 냄새를 풍겨 가루받이 매개곤충을 유인하는 세계 최대 꽃인 동남아의 라플레시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리스에만 분포하는 쥐방울덩굴의 일종은 퀴퀴한 악취를 내 곤충을 유인한다. 이 식물의 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갈색일뿐더러 아주 특이한 자세로 핀다.

대부분의 쥐방울덩굴류는 꽃을 공중에 매단다. 그러나 이 식물의 꽃은 숲 바닥의 낙엽에 반쯤 묻혀있거나 돌 틈에 숨어 위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꽃도 일반적인 수직 방향이 아닌 수평으로 누워있다.

토마스 루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대 식물생태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이 쥐방울덩굴 꽃이 왜 이런 독특한 형태를 하고 특이한 악취를 풍기게 됐는지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생태학 및 진화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식물 가운데 처음으로 곤충 사체의 냄새를 화학적으로 흉내 낸 가루받이 전략을 이 식물이 채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그리스 고유종 쥐방울덩굴인 아리스토로키아 마크로스토마의 꽃은 땅바닥이나 낙엽에 반쯤 파묻히거나(A, B) 바위틈에 숨어(C) 돌을 들춰야 드러나기도 한다(D). 토마스 루프 외 (2021) ‘생태학과 진화 최전선’ 제공

교신저자인 스테판 되털 교수는 “이제까지는 꽃의 위치와 방향을 고려해 이 식물이 낙엽에 사는 개미 등에 의해 가루받이하는 것으로 알았다”며 “하지만 이번 연구로 매개동물이 벼룩파리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벼룩파리는 사체를 먹고 그곳에 알을 낳아 애벌레 먹이로 삼아 법의학에서 종종 주검이 있던 증거로 삼는 곤충이다.

쥐방울덩굴류에는 세계적으로 550종이 있는데 대부분 꽃의 형태가 색소폰 모양으로 독특하다. 이번에 곤충 사체 냄새를 풍기는 식물은 물론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쥐방울덩굴과 등칡도 그렇다.

△ 매개곤충을 일시적으로 가두기 위한 정교한 얼개의 등칡 꽃. 우리나라의 쥐방울덩굴과 식물에는 쥐방울덩굴, 등칡, 족도리풀 등이 있다. 현진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쥐방울덩굴류의 꽃이 복잡한 형태를 한 이유는 냄새에 이끌린 곤충을 일시적으로 가두어 가루받이를 강요하기 위해서이다. 꽃의 얼개는 곤충을 유인해 오래 잡아두다가 풀어놓을 수 있도록 정교하게 짜여있다.

밑으로 향한 꽃 들머리 벽에는 한 방향으로 털이 나 있어 곤충이 돌아 나올 수 없다. 작은 방에 도달하면 앞서 다른 꽃에서 딴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떨어뜨리게 된다. 곤충이 빠져나가려 애쓰는 사이 수술의 꽃가루가 방출되고 식물의 털이 시들어 곤충은 새 꽃가루를 묻힌 채 꽃을 탈출한다.

△ 남미산 쥐방울덩굴 꽃의 구조. 일단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곤충은 가루받이를 모두 하고 나서야 탈출할 수 있는 얼개이다. 해럴드 수아레스-바론 외 (2015) ‘식물학 최전선’ 제공

연구자들이 이 식물의 악취를 정밀 분석한 결과 딱정벌레의 등껍질이 분해할 때 생기는 휘발성 물질을 확인했다. 이 물질은 척추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에는 없고 오직 죽은 딱정벌레에게서만 검출된다.

인용 논문: 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

글=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2021.05.25


●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꽃이 진다고 울어야 하나 / 최문형 성균관대학교 교수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를 살다간 김영랑(1903~1950) 시인의 유명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이다. 붉고 고고한 모습을 지녔던 꽃, 모란이 처절하게 떨어진 모습을 선명하게 그렸다. 일찍이 모란은 황제의 꽃으로 여겨져 중국인은 모란꽃 아래에서 죽는 것을 소망할 정도였다고 한다. 신라 설총 때 ‘화왕계’에도 모란이 왕으로 나온다. 화왕인 모란이 아첨꾼 장미와 충신인 할미꽃 사이에서 고민하는 전개가 펼쳐진다. 동양 문화에서 모란꽃은 권력, 부귀, 공명의 상징이었다. 민속적으로 모란의 개화는 복된 앞날로, 낙화는 불길함으로 여겼다.

이러한 모란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우리는 시인이 가슴아파한 화려한 황제의 꽃, 모란의 낙화를 대한제국(1897~1910)의 멸망으로 보게 된다. 일제의 총검 앞에 멸망한 조선 대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마저 다시금 제국주의의 무력 앞에 스러진다. 김영랑 시인은 철저한 항일애국자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친일을 하지 않은 ‘일제 저항시인 7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17년 휘문의숙 학생 시절, 친구들과 종로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주모자로 체포되었다. 일제에 의해 모진 고문과 구타를 당한 후 훈방되었는데, 이 때는 3.1 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 겨우 14살 소년이었다. 김영랑은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지자 서울에서 몰래 입수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숨겨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 4월 4일에 봉기하기로 친구들과 모의한다. 그러나 거사일 며칠 전 경찰에 급습 당하여 친구들과 체포되었는데. 당시에도 16세의 어린 학생이어서 6개월 만에 석방된다.

이후 상해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려 하였으나,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접어야 했다.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에 시달리다 동경유학길에 올랐고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들과 교유한다. 하지만 일본에 오래있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는데,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고향 강진으로 돌아온 그는 1930년대 중반까지 토속적 서정이 듬뿍 담긴 작품을 썼다.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30년대 말, 일제는 창씨개명을 강요했고, 지식인들에게는 천황을 찬양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의 글을 짓도록 강요했다. 그 압박에 굴복하여 소위 ‘친일파’ 인사로 전락한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김영랑은 1930년 말에서 1940년 중반까지 일제의 폭압에 저항하는 시를 발표했다. 대표작은 ‘독을 차고’이며 ‘거문고’, ‘두견’, ‘춘향 등이 그 뒤를 따른다.

그는 일제가 명령하는 모든 것을 온 몸으로 저항했다.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 단발령도 거부했다. 김영랑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창씨개명을 거부하도록 했고, 매주 토요일 일본 순사들이 대문을 두드리며 신사 참배를 강요할 때도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양복을 입고 단발을 하라는 명령에도 복종하지 않고, 해방이 될 때까지 한복을 입었다.

하지만 일제의 회유와 협박이 너무 심해지자 1940년 ‘춘향’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았다. 우리말을 쓰는 것 자체가 죄가 되던 시기에 일본어로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던 시인! 김영랑은 총 대신 펜으로 싸운 독립군이다.

시인 김영랑이 ‘삼백 예순 날’을 꼬박꼬박 세어가며 그리워한 모란은 1945년, ‘삼십 여섯 해’ 만에 다시 피어났다. 펜으로 싸운 독립군과 총칼로 싸운 독립군의 핏빛 정열을 거름삼아 부활했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되살아났다. 삼십 여섯 해를 피고 지던 모란의 넋은, 검고 단단한 씨앗으로 남아 가장 적절한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아하고 개화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문화강국이고 경제대국이고 예절선진국이다.

꽃이 진다고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꽃이 지면 씨앗이 열린다. 나라의 운명도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꽃의 개화에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낙화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우리 인생도 꽃이 피고 지면서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어간다. 삶의 개화와 낙화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단단하고 야무진 씨앗을 얻으려면 꽃이 마냥 피어있을 수는 없다. 시인 김영랑은 다행히도 모란이 다시 피는 것을 보았다. 꽃이 진다고 울 필요가 있을까? 내 인생의 꽃이 떨어졌다고 슬퍼할 필요가 있겠는가?

글=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출처] 한국조경신문 2021.06.16

[사진] 이런 꽃도 보셨나요? ‘받은 글 옮김

/ 2021.06.17 편집 택


https://blog.daum.net/mulpure/15856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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