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명용사의 편지 / 정옥희
열일곱
열여덟
스물 남짓
텃밭에서 허리가 휘던 어머니와
알 감자 하나에 허기가 지던
보릿고개 한스러운 아우와
뽀얀 이빨 드러내며
무꽃처럼 흐드러지게 웃던 분이,
마을 동산 환하게 밝혀주던
고향의 하늘을 사랑하는
착하디 착한 무지랭이 농군의
아들이었습니다
펜 대신 총을 들고
내 어머니와 내 아내
군화에 짓밟히며 소리없이 스러지던
고향의 꽃들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가던 그날도
오늘처럼 햇살 눈부시고 하늘 푸르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지금은 혀도 썩고
귀도 썩고
눈도 썩어
더 이상 썩을 것 없는 뼈만 남아
지명을 알 수 없는
조국산천에 묻혔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 백골을 찾아
백발이 되신 내 어머니
슬퍼마셔요
조국은 아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따뜻한 조국의 이름을 압니다
봉분 없는 무덤
잡초 무성해도
백골이 누워 있는 이곳
고향을 품고 잠든 곳이기에
오래전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내 사랑하는 어머니
살은 썩어 거름이 되고
전쟁의 역사는 흘러
평화의 싹을 틔웠습니다
오늘,
썩은 살 위에 돋아난
그리움의 촉수
고향의 꽃을 불러봅니다
친구여!
사랑하는 것들을 남겨두고
눈물 글썽이며 전선을 향하던
나를 잊지 않았다면
내 고향 냉이꽃을
사소하게 지나치지 말아다오
그 꽃에 향기 있다면
내 젊은 날의 꿈이었다고
부디 기억해 주게나
■ 슬퍼서 아름다운 가곡 ‘비목’ 노래의 유래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
작사가 한명희는 1939년 충청북도 충주 출생이다. 1960년대 중반 비무장지대 전투초소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였고, 초가을 어느 날 강원도 화천 백암사 부근에서 잡초 우거진 양지바른 산모퉁이를 지나며 십자 나무만 세워진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 후, TBC 방송국 프로듀서 공채 3기로 입사하여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 「가곡의 언덕」, 일일 프로그램 「가곡의 오솔길」등 가곡을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고, 작곡가 장일남(1932~2006)으로부터 신작 가곡을 위한 가사를 의뢰받아 비목의 기억을 떠올려 조국을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을 기리는 내용의 시를 지었고 장일남이 곡을 붙였다.
■ 6월의 노래, 비목(碑木)
‘초연(硝煙, 화약연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해마다 6월이 되면 전쟁의 비극을 담은 가곡 ‘비목’이 생각난다. 한명희 교수의 비목이란 시를 장일남 교수가 작곡한 우리 가곡이다. 한명희 교수는 1960년대 초 육군 소위로 6.25 전쟁의 격전지이었던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해발 1179m)의 DMZ 초소(GP)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당시 순찰 길을 따라 가는데, 돌무더기에 팻말 비슷한 나무가 썩어 누워 있고 탄피와 철모가 널브러져 있은 것을 발견했다. 한 소위는 그때, 무명병사의 돌무덤과 나무 비(木碑)를 보면서 ‘죽은 이는 누굴까, 고향은 어딜까, 아내는 있었을까, 죽기 전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등등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그때 주변에 핀 산목련은 긴 세월을 기다리다 지친 아낙의 돌아오지 않는 낭군의 무덤가를 지켜주는 망부석(望夫石)으로 다가왔고 그날의 감흥을 훗날 ‘비목’이라는 시로 엮었던 것이다.
6.25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올해로 71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의 비극을 담은 우리가곡 ‘비목’ 만큼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어디 있을까. 아직도 전쟁터에서 산화한 뒤 그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전쟁이후 북한에 강제로 억류된 국군포로가 약 3만~5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죽거나 포로가 돼 탄광이나 농장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처럼 참전 군인들을 끝까지 책임져 줄 때 군인들도 가슴에서 우러나는 충성심이 생길 것이 아닌가. (글=윤병두)
[출처] 농촌여성신문 2021.06.11
■ 이름 모를 비목이여 / 조상열(대동문화재단 대표)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호국의 달 6월이면 70년대 유명했던 가곡 ‘비목’이 생각난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으로 알려져 있는 비목은 가사와 곡에 애달픈 사연이 들어있어 한국전쟁 전후 세대들이 애송했던 노래이다. 60년대 중반 한명희 소위가 강원도 백암산 비무장지대에서 군생활을 할 당시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과 이름 없는 비목을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 작사를 했다고 한다.
가사를 쓸 무렵, 제일 먼저 머릿속에 스친 영상이 살벌한 전방 첩첩산골의 이끼 덮인 돌무덤과 그 옆을 지켜 섰던 새하얀 산목련이었다. 그는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그 깊은 계곡 양지녘의 이름 모를 돌무덤을 초연(硝煙)에 산화한 무명용사로 묘사하고, 비바람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무덤가를 지켜주고 있는 새하얀 산목련을 주인공인 무명용사를 따라 순절한 연인으로 상정하여 아름다운 어휘들을 정리해 냈던 것이다.
‘비목’ 가사에 대한 오해도 있었다. 초연이 쓸고 간의 ‘초연(硝煙)’은 화약연기를 뜻하는데 이를 ‘초연(超然)하다’는 의미로 오해하거나 ‘궁노루 산울림’에서 ‘궁노루산’이 어디 있는 산이냐고 묻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소위는 순찰 길에서 궁노루 한 마리를 잡아왔는데, 그날부터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암놈이 매일 밤 애처롭게 울어대는 통에 며칠 밤을 그 잔인했던 살상의 회한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산간계곡에 새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면 궁노루도 울고, 한소위도 울고, 온 산천이 오열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이란 가사의 뒤안길에는 이같은 단장(斷腸)의 비감이 서려 있다. 비목의 배경은 우리 민족의 시대적 산물이자 상징물인 샘인 것이다.
[출처] 전남매일 (2021.06.10) 일부 발췌
● 가거라 삼팔선 / 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1948)
아 산이 막혀 못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한다
아 꽃 필 때나 오시려느냐
아 눈 올 때나 오시려느냐
보따리 등에 메고 넘던 고갯길
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
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아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
삼팔선 세 글자는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던가
손 모아 비나이다 손 모아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 전선을 간다 / 우용삼 작사, 최창권 작곡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푸른 숲 맑은 물 숨쉬는 산하
봄이 온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피 스며든 그때 그 자리
이끼낀 바위는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 2021.06.1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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