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금강초롱' 송수권, '순간의 평화' 정세훈,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2021.06.18)

푸레택 2021. 6. 18. 12:42

■ 금강초롱 / 송수권

금강산 비로봉 밑에만
피는 꽃인 줄 알았더니

큰기러기 작은기러기 쇠기러기
큰고니 작은고니 철따라 쉬어가는
철원평야 휴전선 철책 밑에서도
희귀한 금강초롱꽃이 피었다

바람 불어 키를 넘어 갈대숲
마른 덩굴을 드러내면서
네다섯 예닐곱 송이씩
초파일 연등처럼 흔들리면서
떠도는 가시철망에 걸려
찢어질 듯 찢어질 듯 흔들린다

저 피의 능선
안개 자욱한 펀치볼 전투
1951년 8월 31일부터 21일 동안
군번도 이름도 없는 원혼이
금강산 비로봉 밑에서만
피는 꽃인 줄 알았더니
휴전선 가시철망에 걸려
우리 그리움 더하라고
금강초롱 피었다

■ 순간의 평화 / 정세훈

잔뜩 부푼 풍선이 아이의 손에 들려온다
육이오 전쟁을 치른
퇴역한 비행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원을 평화롭게 넘실거린다
아이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은 어미뿐이다
아이의 아비는 보이지 않는다
넘실거리던 아이의 풍선이 비행기 날개에 걸려
흔적도 없이 터져 산산이 흩어진다
아이는 운다
공원에 봄꽃이 만발해 있지만
비둘기떼가 아이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지만
어미가 아이를 달래고 있지만
아이는 운다
비행기를 몰고 전쟁을 치르느라
아이 곁을 떠났던 아비
풍선을 만들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저 서러운 아이의 울음을
당장 그치게 할 수 있는 그 부푼 풍선을

■ 적군 묘지 앞에서 /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감상]
이 시는 시인이 한국전쟁 당시 종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연작시「초토의 시」 15편 중 8번째 작품이다. 시인은 전쟁 당시 서로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적군의 묘지에 서 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번지에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바라보고 있자니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시인의 가슴을 억누른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의 구름은 마음대로 북으로 흘러가는데 내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고향 땅은 고작 30리인데도 가로막혀 있다. 북쪽이 고향인 시인은 삼십 리 저편에 가로막혀 있는 고향 땅을 바라보면서 민족 분단의 고통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이북이 고향인 나의 부모님도 설이나 추석엔 임진각에서 부모님이 계시던 북쪽 땅을 바라보고 눈물짓곤 하셨다. 마음대로 흘러가는 저 구름처럼, 거칠 것 없이 훨훨 날아가는 새처럼 우린 남쪽 땅도 북쪽 땅도 언제 자유롭게 밟아볼 수 있을까?

글=박미산 시인

/ 2021.06.1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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