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찌개 평화론 / 곽재구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추잎을 닮은 딸 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
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염병헐,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
식구들은 눈과 가슴으로 오래 이야기하고
그러한 밤 십자가에 매달린
한 유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
끝내는 식구들의 웃는 얼굴과 겹쳐졌다
■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철조망에 걸린 편지 / 이길원
어머니,
거친 봉분을 만들어 준 전우들이
제 무덤에 철모를 얹고 떠나던 날
피를 먹은 바람만 흐느끼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총성은 멎었으나
숱한 전우들과 버려지듯 묻힌 무덤가엔
가시 면류관
총소리에 놀라 멎은 기차가 녹이 슬고
스러질 때까지 걷힐 줄 모르는 길고 긴 철조망
겹겹이 둘러싸인 덕분에
자유로워진 노루며 사슴들이
내 빈약한 무덤가에 한가로이 몰려오지만
어머니,
이 땅의 허리를 그렇게 묶어버리자
혈맥이라도 막힌 듯 온몸이 싸늘해진 조국은
굳어버린 제 심장을 녹일 수 없답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피를 그렇게 마시고도
더워질 줄 모르는 이 땅의 막힌 혈관을
이제는 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식어버린 제 뼈 위에 뜨거운 흙 한줌 덮어줄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무덤가에 다투어 피는 들꽃보다
더 따뜻한 손길을
● 비내리는 판문점 / 김문응 작사, 한동훈 작곡
원한 서린 휴전선에 밤은 깊은데
가신 님의 눈물이냐 비가 내린다
불켜진 병사에는 고향 꿈도 서러운 밤
가로 막힌 철조망엔 구름만이 넘는 구나
아아 판문점 비 내리는 판문점
산마루의 초소에는 밤새 우는데
가신 님의 눈물이냐 비가 내린다
저 멀리 기적 소리 고향꿈을 부르는 밤
가로막힌 삼팔선엔 바람만이 넘는구나
아 아 판문점 비 내리는 판문점
● 판문점의 달밤 / 유노완 작사, 이봉룡 작곡
뜸북새 울고 가는 판문점의 달밤아
내 고향 잃어 버린지 십 년은 못 되드냐
푸른 가슴 피끓는 장부의 가는 길에
정한수 떠 놓고 빌어주신 어머님은 안녕하신가
적진을 노려보는 휴전선의 달밤아
내 부모 작별을 한지 어언간 십 년 세월
가로막힌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면
태극기 흔들며 반겨주실 어머님은 안녕하신가
적막이 깊어가는 판문점의 달밤아
내 형제 이별을 한지 십 년이 지나가도
일편단심 내 마음 변할 리 없으련만
기어코 승리를 거두라신 어머님은 안녕하신가
● 전장에 피는 꽃 / 서양훈 작사, 장세용 작곡
포성이 멈추고 한 송이 꽃이 피었네
평화의 화신처럼
나는 꽃을 보았네 거치른 이 들판에
용사들의 넋처럼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평화의 화신으로 산화한 전우여
너를 위해 꽃은 피고
먼훗날 이 땅에 포성이 멈추면
이 꽃을 바치리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 2021.06.1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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