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소가 알아서 착착 등장! 강릉 여행, 이 길만 걸으면 만사해결 /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길을 걷는 것은 여행인가? 여행이 떠나는 것이니 맞는 말이다. 그럼 길을 걷는 것은 관광인가? 흔히 명소 찾아다니는 일을 관광이라 하니 딱 맞는 말은 아니겠다. 걷기여행이란 말은 있어도, 걷기관광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하나 길을 걷는 건 이따금 관광이 되기도 한다. 길 중에는 명소를 꼬박꼬박 짚는 길이 있어서다. 이번에 걸은 길은 딱 이랬다. 평창올림픽 이후 관광 도시로 뜬 곳, 코로나 사태 이후 외려 방문객이 증가한 곳. 강원도 강릉시에 명소를 놓치지 않는 길이 있다. 강릉에 가면 길만 걸으면 된다. 온갖 명소가 제 차례에 맞춰 알아서 나타난다.
강릉에서 걸은 길은 하나다. 그러나 이름은 두 개다. 강릉바우길 5구간과 해파랑길 39코스. 두 길이 고스란히 겹친다. 이 길의 원래 주인을 따진다면, 강릉바우길이다.
강릉바우길은 2009년 조성된 강릉의 대표 트레일이다. 정규 코스 17개와 부속 코스 4개로 구성된다. 제주올레처럼 민간 트레일이다. 사단법인 강릉바우길이 운영 주체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해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고성까지 올라가는 대형 트레일이다. 50개 코스 770㎞에 이른다. 문체부가 2012년 해파랑길을 개통하면서 강릉 지역은 강릉바우길의 기존 구간을 활용했다. 해파랑길 35코스부터 40코스까지 6개 코스가 강릉바우길 6개 구간과 같은 길이다.
하여 강릉에선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다른 이름의 길이 겹쳤다가 갈라지면 길을 잘못 들 수 있는데, 강릉에선 아무 이정표나 보고 걸어도 되기 때문이다. 조심할 건 있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하므로 길이 북쪽으로 나아간다. 강릉 구석구석을 헤집는 강릉바우길은 정해진 방향이 없다. 대신 해안 구간은 남쪽을 향한다. 해파랑길과 강릉바우길은 길은 같으나 방향이 반대다.
사천항에서 경포를 거쳐 남항진항까지 남쪽으로 걸었다. 강릉바우길 기준으로 정방향이고, 해파랑길 기준으로 역방향이다. 차이는 없다. 바다를 왼쪽에 끼고 걷느냐, 오른쪽에 끼고 걷느냐만 다르다. 굳이 상세한 설명도 필요를 못 느낀다. 16㎞ 정도로 긴 길이지만, 평지가 이어져 힘든 줄 모른다. 무엇보다 둘러볼 데가 많아 걸을수록 재미가 붙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었는데, 걷고 나니 해종일 길에서 논 기분이다.
강릉바우길 5구간은 경포 해수욕장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잠깐 들어가면 동해안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을 만끽할 수 있다. 강옥희 대표는 "코로나 시대 청정 자연은 안전여행의 다른 말"이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청정한 자연이 있는 지역이 강원도"라고 말했다.
강릉 하면 바다다. 대관령 너머 강릉까지 가서 바다 한 번 안 보고 오는 것처럼 서운한 여행도 없다. 바다가 그리우면 강릉바우길 5구간을 걸으시라. 물리도록 바다를 볼 수 있다.
지도를 보니 코스에 해수욕장이 8개나 있다. 북쪽에서부터 사천해변, 순포해변, 순긋해변, 사근진해변, 경포해변, 강문해변, 송정해변, 안목해변. 가장 유명한 경포해변은 관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 들어갔다 나온다. 동해안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니 잠깐 갔다 올 만하다. 관광객 거니는 경포해변도 좋았지만, 한갓진 사근진해변이 나는 더 좋았다.
길은 포구마을에서 시작해 포구마을에서 끝난다. 길이 시작하는 사천항은 10년 전만 해도 한적한 포구였다. 지금은 아니다. 여름엔 물회 먹으러, 겨울엔 양미리 먹으러 관광객이 몰려든다. 사천항에 물회 거리가 있다면, 강문해변엔 횟집 거리가 있다. 그러나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만큼 요란하지는 않다.
안목 커피 거리는 이제 전국구 명소다. 여느 관광객은 일부러 찾아가는데, 길을 걷다 보면 문득 길가에서 나타난다. 코스 막바지에 있으니 잠깐 들러 땀을 식히는 것도 좋겠다. “작년엔 커피 축제를 취소했는데 올해는 열 계획”이라고 ‘커피커퍼’ 최금정(52) 대표가 말했다. 커피커퍼가 2001년 안목해변에 터를 잡으면서 커피 거리, 나아가 강릉 커피의 신화가 시작됐다.
굳이 해돋이를 권하지는 않겠다. 다만 강문해변 솟대다리가 동해안에서도 손꼽히는 일출 명당이라는 사실은 알린다. 떠오르는 해의 기운을 받으려는 당집들이 아직도 사근진해변에 남아 있다. 동틀 녘 강릉 해변은 해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해파랑길 이름도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에서 비롯됐다.
강릉바우길 5구간이 바다만 끼고 있는 건 아니다. 경포해변에서 나와 경포 호수를 한 바퀴 돈 뒤 다시 바닷가로 나간다. 경포는 유서 깊은 강릉의 명승지다. 조선 시대 양반이 풍류를 즐긴 경포대에 올라도 좋고, 깔끔하게 정돈된 생태습지를 거닐어도 좋다.
강릉 시내를 다니다 보면 ‘솔향 강릉’이라고 써 붙인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강릉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바다가 아니라 소나무라는 뜻이다. 그만큼 강릉에는 소나무가 좋고 많다. 대관령 아랫마을의 소나무가 유명하지만(광화문을 복원할 때 이 마을의 소나무를 베어다 썼다), 초당 솔숲의 소나무도 못지않다. 초당 솔숲을 걸을 때 마침 비가 내렸다. 자못 신비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초당은 강릉 부사를 지낸 허엽(1517~1580)의 아호다. 허엽의 아들이 국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이고, 딸이 비운의 천재 시인 난설헌 허초희(1563~1589)다. 강릉 부사 시절 초당이 바닷물을 길어와 두부를 만들면서 초당 순두부가 시작되었다. 강릉시 강근선 관광과장에 따르면 초당 순두부마을은 평창올림픽 이후 핫 플레이스로 거듭났다. 전통 방식의 순두부는 물론이고, 매운맛의 짬뽕 순두부, 한정식처럼 나오는 순두부전골 정식 같은 메뉴가 속속 등장했다. 젊은 층 사이에선 순두부젤라토가 인기란다.
강문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 약 3㎞ 구간은 해송숲길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송숲길이다. 지금 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건 바다보다 외려 솔숲이었다. 강릉바우길 이기호 사무국장의 당부를 전한다.
“강릉의 명소 대부분이 강릉바우길로 연결돼 있습니다. 관광지만 둘러봐도 좋지만, 조금만 더 걸으면 바로 다른 관광지가 이어집니다. 강릉에 오시면 걸으십시오.”
글·사진 강릉=손민호 기자
[출처] 중앙일보 2021.06.10
/ 2021.06.10 편집 택
https://blog.daum.net/mulpure/1585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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