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과학칼럼] '수두파티, 그리고 코흐' 이종필 건국대 교수 (2021.03.29)

푸레택 2021. 3. 29. 13:35


■ 수두파티, 그리고 코흐 /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파스퇴르의 백신 개발로 유럽인의 평균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20세기로 넘어가 면역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백신과 면역의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 또는 부작용 때문에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일부 맘카페 중심으로 자연치유방식을 추구한다며 백신을 거부하는 운동이 일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수두파티’이다. 수두는 주로 10세 미만 소아가 걸리는 질병으로 수두 바이러스가 병원체이다. 수두에 걸리면 가려움을 동반하는 수포성 발진이 생긴다. 보통의 건강한 아이는 특별한 합병증 없이 회복된다. 수두는 생후 12~15개월 때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수두파티란 예방접종을 하는 대신 수두에 걸린 아이를 초대해 수두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자연스럽게’ 수두에 걸리게 하는 방법이다. 일부 외국의 커뮤니티에서 시행되던 것이 한국에도 유입되었다. 이렇게 한 번 수두를 앓고 나면 다시는 수두를 앓지 않는다. 백신의 원리를 이해한 사람이라면 수두파티의 효용성에 의문이 들 것이다. 수두파티는 독성이 있는 ‘자연 상태’의 바이러스에 인체를 노출시켜 항체를 만드는 방법이고 예방접종은 ‘인공적으로’ 독성을 없애거나 약화시킨 병원체에 인체를 노출시켜 항체를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백신의 부작용이나 알레르기 등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지금은 인류가 백신을 개발해 사용한지가 백 년이 훨씬 넘었다. 아이가 병을 앓지 않고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일부러 병을 앓게 해서 ‘예방’한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는 ‘자연’이 좋고 ‘인공’은 좋지 않다는 선입견이 짙게 깔려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위험한 경우가 더 많다. 인공적인 처리, 즉 의료행위는 자연에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를 추출해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히포크라테스를 언급하면서 소개했던 버드나무 껍질과 살리실산, 그리고 아스피린 사이의 관계와도 같다. 

몇 년 전 나는 교양과학과목 기말고사에서 ‘수두파티를 파스퇴르의 관점에서 평가하라’는 문제를 낸 적이 있었다. 서술형 문제였지만 학생들이 쉽게 원하는 답을 쓰리라 기대하며 출제했던, 이른바 ‘점수를 주기 위한’ 문제였다. 놀랍게도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절반 이상의 학생이 수두파티를 올바른 처방법으로 기술하며 파스퇴르가 권장할 것이라는 취지로 답안을 작성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이 에피소드를 수업 시간에 별도로 소개했다. 과학을 교양으로 배우지 않으면 어떤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지 예상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했다. 

2020년의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은 또 다른 수두파티의 사례를 만들어냈다. 바로 영국과 스웨덴이다. 영국은 팬데믹 초기 집단면역(herd immunity) 개념을 들고 나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방역을 포기하려 했다. 집단면역이란 어느 집단 내 질병에 대한 면역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질병이 전파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내게 면역이 없더라도 집단 내 절대 다수가 면역을 갖고 있으면 질병이 내게로 전파될 확률은 줄어든다. 집단면역에 이르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백신접종, 그리고 감염. 영국의 수석과학보좌관인 패트릭 밸런스는 전 국민의 60%가 감염되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고 감염자도 가벼운 증상만 앓고 지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곧바로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영국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때 2020년 8월까지 전 국민의 81%가 감염될 수 있고 사망자가 무려 5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가 나온 뒤 보라스 존슨 총리는 방역 정책을 급선회하고 영국 전역에 무기한 휴교령을 내렸다. 제너를 배출해 최초의 예방접종을 시작한 나라에서 집단면역을 방역대책이라고 내놓는 모습을 보고 나는 수두파티가 떠올랐다. 존슨 총리가 면역의 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면 보좌관의 어이없는 제안에 미리 제동을 걸 수 있지 않았을까? 스웨덴도 초기엔 영국과 비슷한 길을 가려고 했었다. 다만 스웨덴은 영국이나 다른 유럽의 나라들처럼 아주 강력한 봉쇄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반과학주의로 따지자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파리 협약에서 탈퇴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백신과 관련해서 예를 들자면, 트럼프가 당선 직후 백신안전성 태스크포스 위원장으로 임명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미국 내 대표적인 반백신주의자이다. 케네디 주니어는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믿는 인물로서 아동 예방백신접종 금지를 추진하기도 했었다. 트럼프의 이런 반과학적인 태도와 무지는 미국 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외신들은 한결같이 2020년 1월20일 미국과 한국에서 똑같이 자국의 최초 감염자를 발견했으나 그 이후 두 나라의 상황이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이유로 초기대응의 차이를 들고 있다. 한국은 1번 환자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치밀하게 방역준비에 나섰던 반면 미국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가 모든 과학적 사실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적어도 큰 흐름은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하며 전문가의 의견을 두루 경청해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는 판단력은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엄청난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과학이 21세기의 필수교양인 이유를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 현상이 여실히 보여줬다. 전 세계에 걸쳐 그 대가가 너무 참혹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스퇴르 말고 세균학의 또 다른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이다. 코흐는 괴팅겐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파스퇴르의 아들이 자원입대해서 전사했던 보불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조용한 시골에서 평범한 개업의사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시골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아내가 선물한 현미경이었다.

코흐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가축의 탄저병을 연구해 이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인 탄저균을 분리 배양하는 데에 성공했다(1877년). 지금은 병원체를 분리 배양했다는 말을 쉽게 쓰지만 코흐의 시대만 하더라도 이는 아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어떤 질병과 어떤 미생물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흐는 아예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를 코흐의 원칙이라 부른다. 핵심만 간추려 말하자면 이렇다. 어떤 질병의 병원체로 의심되는 미생물을 검출해서 배양한 뒤 멀쩡한 생명체에 투입했을 때 똑같은 질병에 걸려야 하고 새로 감염된 생명체로부터 원래 병원체와 똑같은 미생물이 다시 검출돼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맞춰 보는 작업이 그리 간단치 않으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코흐는 전형적으로 깐깐한 독일인이어서 탄저균을 분리해 이것이 탄저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이라고 규정하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가능성을 모조리 검토하기도 했었다. 코흐의 빈틈없는 연구결과는 곧 학계에 받아들여졌고 단숨에 스타로 부상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미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코흐의 원칙에 어긋나는 예외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미생물과 질병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했던 코흐의 노력과 업적이 빛바래지는 것은 아니다. 코흐의 원칙이 발표됐을 때에는 아직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전이었다. 코흐는 특정 세균을 염색해서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는 방법도 개발했다. 이 기술이 얼마나 유용하고도 중요할지는 지금 여러분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에서 사진 기능을 없앤다고 상상해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코흐의 가장 큰 업적은 누가 뭐래도 결핵균의 발견이다. 결핵균은 탄저균보다 분리해서 배양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탄저균과는 달리 살아있는 동물 체내에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흐는 특별한 배지를 만들어 결핵균 배양에 성공했고, 그렇게 배양한 균이 결핵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후 코흐는 콜레라균을 발견해 그 성질을 연구해서 어떤 경로로 감염되는지도 규명했다. 코흐는 결핵균을 발견한 공로로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코흐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코흐의 연구실에는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1885년부터 합류한 일본 출신의 기타사토 시바사부로(1853~1931)도 있었다. 코흐는 이해부터 베를린 대학교에 재직했다. 기타사토는 도쿄대 출신으로 코흐의 연구실에서 파상풍을 연구했다. 이때 기타사토는 혈청을 이용한 파상풍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3년 뒤인 1888년 코흐의 연구실에 에밀 아돌프 폰 베링(1854~1917)이라는 신참 연구원이 들어왔다. 베링은 디프테리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타사토가 같은 연구실 선배였으니까 기타사토가 활용했던 혈청 치료법에 베링도 관심을 가지고 디프테리아에 적용해 봤으리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선후배로서 둘이 토론도 하고 의견도 교환하고 때로는 같이 연구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떤 업적에 누가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정량적으로 나누기는 대단히 어렵다. 다만 기타사토가 연구실 선배였고 이미 혈청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베링의 디프테리아 연구에 기타사토가 최소한 적잖은 영향을 줬음은 분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은 연구실의 선후배가 어떤 연구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가 관심사인 이유는 연구실 후배였던 베링이 1901년 제1호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기 때문이다. 수상 이유는 디프테리아에 대한 혈청 치료법 개발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아직도 기타사토가 노벨위원회의 인종차별 때문에 공동수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진실이야 알 길이 없지만 나는 앞뒤 정황을 고려했을 때 일본의 이런 불만과 이의제기가 꽤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기타사토는 1892년 도쿄로 돌아가 전염병연구소를 세우고 소장이 되었다. 이후 홍콩에서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홍콩으로 건너가 연구한 끝에 페스트균을 발견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세균학자인 알렉상드르 예르생이 독립적으로 페스트균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노벨 생리의학상 분야에서 일본은 1987년, 2012년, 2015년, 2016년, 2018년에 걸쳐 총 5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기타사토의 업적과 노력에 비하면 다소 늦은 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일본의 이런 역사를 돌아보면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에 대응하는 2020년 일본의 모습은 너무 실망스럽다.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 하더라도 결국 그 모든 것을 언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거버넌스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용지물임을 일본의 사례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오는 2024년부터 인물과 도안을 바꾼 새 화폐를 발행할 예정이다. 새 일왕이 들어서고 연호도 ‘레이와(令和)’로 바뀐 때문이라고 한다. 새 화폐의 1000엔 권에 들어갈 인물이 바로 기타사토이다. 현행 1000엔 권의 인물인 노구치 히데요(1876~1928) 또한 세균학자인 점이 흥미롭다. 

베링은 스승보다 먼저 노벨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해졌다. 코흐는 1890년 투베르쿨린이라는 결핵 백신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는데, 투베르쿨린이 결핵을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코흐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코흐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1893년 50세 되던 해에 당시 18세이던 헤드윅 프라이베르크와 결혼해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요인들이 1901년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시각도 있다. 코흐는 1905년 결핵균 발견의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건 1882년의 업적이니까 이런 의혹이 나올 법도 하다. 그래도 다른 경쟁자가 아니라 제자가 1호 노벨상을 받은 것, 그리고 불과 4년 뒤에 자신이 받은 것은 큰 위안이 될만한 일이다. 만약 1895년에 사망한 파스퇴르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의심의 여지없이 1호나 2호 노벨상을 받았을 테니까.

[출처] 동아사이언스-사이언스사피엔스 (2020.09.17),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 필자 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 2021.03.2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