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풀에서 과학 줍는 식물학자 ‘김준민’ / 윤재석 국민일보 논설위원 (2010. 3. 24)
바로 저쪽에선 금방 집채라도 무너트릴 것 같은 장대비가 내리꽂히는데, 이쪽은 거짓말처럼 햇빛이 쨍쨍, 국지성 호우가 시도 때도 없이 이 작은 강토 곳곳을 유린한다. 기상청은 예측 불가를 이유로 올해부터 장마 예고를 아예 없애버렸다.
준동하던 게릴라성 호우가 잠시 소강국면을 보인 7월 중순 어느 주말, 경기도 과천의 한 빌라를 찾았다. 한국 식물생태학의 태두, 하담(夏譚) 김준민(金遵敏) 선생을 뵙기 위해서였다. 1914년생이니 올해 만 95세. 백수(白壽)를 4년 앞두고 있음에도 그의 기억은 또렷했고 음성은 카랑카랑했다.
Q.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께 식물학 강의를 들은 게 1972년이었으니, 근 40년이 돼가는군요.
A. 그랬나요? 세월 참 많이 흘렀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찾았소?
Q. 식물학과 생태학이라는 특이한 학문에 관해 말씀 듣고자 왔습니다. 지금이야 이 분야가 관심을 끄는 분야이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엔 특이하다 못해 소외된 학문 아니었나요?
A. 난 이상하게도 청소년 시절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향이 경기도 개풍군 남면 유릉리 율동(밤골)인데 산에 산당화가 빨갛게 피어요. 지금 내가 사는 집 앞에도 있죠. 나무와 풀, 꽃들을 살펴보면서 그 식생의 신기함, 궁금증, 이런 게 자꾸만 증폭되는 거야. 그래서 식물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송도고보 시절에 일찌감치 맘을 먹었죠.
Q. 선생님은 조선에서 학부를 다니지 않고 도호쿠대로 바로 유학을 가셨는데요. 그때 실정으론 독특한 과정 아니었나요?
A. 도호쿠대에 요시이 요세츠 선생님이라고 계셨는데, 이분이 식물생태를 일본에서 처음 강의한 분이거든요. 꼭 이 분에 배우고 싶어서, 다른 데 한눈 안 팔고 도호쿠대로 유학을 간 거죠. 그 분 밑에서 참 좋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요.
Q. 40년에 졸업하고 돌아와서 바로 대학으로 가셨나요?
A. 웬걸, 함경북도 경성에 있는 경성고보에서 교사로 몇 년 일했지. 귀국하기 전에 그곳 교장이 도호쿠대에 와서 선생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요시이 교수가 ‘자네가 가 보게’ 하더군. 교수 말이 하나님 말씀이었으니까, 그대로 따랐지.
◆ 식물과 토양관계 밝히려 국토 종횡무진
Q. 그러다가 1946년 서울대가 국립화되면서 사범대에 오시게 됐죠? 후학 양성과 연구를 병행하셨는데요. 그때부터 천착하신 분야는 뭔가요?
A. 식물과 토양의 관계죠. 식물생태학 중에도 가장 핵심적인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걸 연구하게 된 계기는 내가 경성고보 교사로 있을 때 한라산에 갔던 경험 때문이에요. 한라산의 경우 북측사면에는 광대한 초원지대를 거쳐 해발 700m지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잡목림(활엽수림)이 나타납니다. 700m에서 1100m까지 이어지는 활엽수림에는 서어나무와 졸참나무가 주를 이루고 해발 1200m지점에서 소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1250m부터 솔숲이 돌연 사라지고 개미목이라고 부르는 편평한 초원이 나타나는 거예요. 예상대로라면 관목 숲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말이요. 그래서 참 이상하다 싶었죠. 불이 나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었어요. 아무런 흔적이 없었거든.
Q. 원인 규명이 됐나요?
A. 결국 보니 지하수 때문이었어. 지하수 수위가 너무 깊어서, 나무가 뿌리 내릴 만큼 지하수까지 갈 수가 없으니, 관목 숲이 형성되질 않고 개미 등 군락이 펼쳐질 수밖에. 그런데 재미있는 건 벼랑 끝엔 나무가 자라고 있었어요. 벼랑 끝에 지하수맥이 있어서 그런 거죠. 그런가 하면 한라산 정상 근처엔 또 큰 나무가 있고, 맨 꼭대기엔 다시 관목 숲이었죠. 이게 다 지하수위 때문이고 그래서 식물과 토양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거지. 한라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거 하나는 꼭 정정하고 넘어가야겠네. 흔히 한라산을 고산(高山), 고산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요. 고산대는 2000m 이상, 연평균 온도가 -10℃는 돼야 하거든.
Q. 저는 전공이 아니라 선생님 따라 야외실습은 가지 못했습니다만.
A. 토양과 식물의 관계, 토양에 따라 서식하는 식물들을 살피러 방학 때면 학생들 데리고 나가 국토를 종횡무진했죠.
Q.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A. 헨드릭 룬데가르트 교수가 1955년에 쓴 식물생리학에도 인용된 내용입니다만, ‘산소 집중도와 싹트기에 관한 비례’ 규명 같은 게 대표적인 발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컨대 숫잔대라는 게 있어요. 연못가에 둘러 나는 초본식물인데, 겨울에 쌓인 눈이 녹아서 연못 물 물속에 산소함량이 충분히 많아져야 싹이 트죠. 결국 물속 산소함량과 싹트기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거예요. 그 뒤에도 식물관련 유럽 쪽 서적에 내 연구가 몇 번 인용됐어요.
Q. 어찌 보면 컬럼버스의 달걀처럼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도 있는데, 국제적인 학술서적에 게재된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다는 증거일 텐데요.
A. 결국 식물생태의 수지(收支)문제를 규명한 것으로 평가한 것 아닌가 생각돼요. 인간 생활도 생태학적으로 보면, 결국 마찬가지잖아요. 수입과 지출이 맞아야 하죠. 식물 역시 마찬가지에요. 양분을 적게 흡수하면 잘 못자라죠. 식물이 양분을 많이 섭취하기 위해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은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죠. 용존산소량이 많아야 싹이 트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
◆ 지구온난화 피하기 어렵지만 적절히 대처할 것
Q. 식물생태학 하면, 요즘 기후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A. 독일에 ‘물푸레나무가 참나무보다 먼저 푸르면 그해 여름엔 비가 많이 온다’는 속담이 있어요. 여름에 북태평양의 저기압이 발달하면 비가 많이 오는데, 그걸 물푸레나무가 미리 안다는 거죠. 식물과 생태학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터득한 지혜인데, 우리는 좀 미진한 것 같아요. 식물과 기후와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잘 안했던 거죠.
Q. 유사한 속담이 우리에게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A. 이게 생각나네요. ‘참나무는 벌판을 내다보면서 연다’는 말. 도토리가 많이 열리는 해는 가물어요. 도토리는 많이 열리지만 농사는 잘 안 된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봄에 도토리꽃 필 때 가물면 자연 도토리가 풍성하게 되죠. 하지만 논은 물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흉작이 되죠. 반대로 도토리꽃 필 때 비가 많이 오면 꽃이 떨어져서 도토리가 적게 열리고, 농사는 풍년이 든다는 거죠.
Q. 이런 걸 정리한 학문을 뭐라고 하나요?
A. 페놀로지라고 해요. 굳이 해석하면 계절학 또는 화력학이라고 해요. 사실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에요. 후학들이 열심히 했으면 좋겠는데….
Q. 요즘 지구온난화다 산성비다 해서 세계가 기후변화를 놓고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요
A. 사실 너무 민감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세월 기후와 생태계 변화를 지켜본 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온난화를 피하기는 어렵지만 그로 인해 초래될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인류가 적절히 대처할 것으로 믿고 싶어요.
◆ ‘연구 편식’이 과학기술 경쟁력 저해 요인 돼
▷ 경기도 과천 자택 앞 장미꽃 옆에 선 하담 김준민 선생. 백수를 눈앞에 두고도 선생의 기억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형형했다.
Q. 1세대 식물생태학자로 보람도 크실 텐데요.
A. 이제 생의 종착역에 다가와 보니 보람보다는 회한이 남는구려.
Q.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A. 가장 아쉬운 것은 기록의 부실이요. 우리가 민둥산 천지에서 산림이 푸르러지는 과정에서 생태학계가 그런 변화의 기록을 제대로 기록하는 데 실패한 거죠. 물론 우리 1세대 생태학자들의 연구 여건은 그야말로 열악하기 짝이 없었어요. 연구시설과 연구비 지원은 물론 연구 인력마저 매우 부족했다오. 하지만 생태학이란 게 원래 물질적 지원 여부에 관계없이 열정과 끈기가 요구되는 분야였거든. 모든 열악한 여건을 뚫고 생태학계가 혼연일치해 설악산이나 지리산, 혹은 제주도에 제대로 된 야외생물학연구실을 두세 개 정도 개설했더라면 오늘날 우리 생태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남네요. 이게 모두 우리 1세대 책임이지, 뭐.
Q. 선생님께서 천착해 오신 식물학과 생태학이 최근에 아주 중요한 학문으로 진화되고 있는데요. 두 분야를 일찍이 공부하신 선각자 입장에서 한 번 정리해 주시죠.
A. 최근 들어 생명공학이나 생태학이 각광을 받는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죠. 하지만 학문을 하면서 세태에 너무 영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공부를 해서 세상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학자의 임무 아닌가요? 조금 이름나면 아는 척 잘난 척 하는 세태, 참 안타까워요.
Q. 그래도 생명공학 분야는 신성장동력 학문으로 전망이 좋지 않습니까?
A. 정부, 학계 거기에 기업까지 나서서 올인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못해요. 그렇다 보니 정부와 산업계가 지원하는 연구비조차도 생명공학 분야에만 집중되고 있는데, 이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요. 마치 우리가 생명공학을 잘 할 수 있는 DNA라도 가진 듯 착각하고 있지만, 생명공학 분야에도 우리가 세계적 수준까지 도약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그리 많지 않거든. 또 요즘처럼 너도나도 줄기세포 연구에만 매달리다가는 생물 분야에서 우리가 정말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소외되기 십상이고 이 같은 ‘연구 편식’이 결국은 총체적인 측면에서 과학기술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죠.
Q. 이공계 기피다, 과학기술 홀대다 해서 과한기술 분야가 술렁이고 있습니다만….
A. 그런 거 떠들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과학자란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자기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족해요. 열심히 안하면서 매명이나 하려고 하면 그건 과학자가 아니죠.
Q. 그런 열정도 중요하지만 기초과학 분야에 대해선 아무래도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지 않나요?
A. 그건 맞아요. 학문의 발전은 기초에 있고, 산업기술 등의 응용 역시 기초분야가 든든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선 제도적으로 우수 인재들이 기초 분야에 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겠지.
◆ 우리나라 식물생태에 대한 관심 줄지 않아
Q. 요즘도 식물생태 관찰을 하시나요?
A. 우리나라에 밥태기나무라는 관목이 있어요. 가지가 많아 가지에 진분홍 꽃이 밥알 같이 다닥다닥 붙어요. 관악캠퍼스에 다닐 때 그걸 해마다 관찰했는데, 하루는 잎이 먼저 나더라고, 기후변화구나 했더니 그해 김포평야에 냉해가 와서 흉작이 났거든. 요즘도 식물생태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죠.
Q. 평소엔 어떻게 소일하세요?
A. 주로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고 있어요.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지리와 식생에 관한 서적이요.
Q. 영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선생님께서 예전 국제회의에 가셔서 유창한 영어로 발표도 많이 하셨다는데….
A. 1972년 호주에서 열린 태평양 과학자대회에서 발표하고 나왔더니, 주최 측에서 원고를 달라고 하더이다. 나중에 보니 영국 저널에 게재됐더군.
Q. 일본 유학 하셨는데, 영어는 언제 배우셨어요?
A. 송도고보 때 배웠죠. 그 시절에 난 영어가 국제어라는 걸 깨달았거든. 몇 년 전에도 미국에서 생태학자가 와서 생물학자와 생물교사 학생 300여명에게 강연하는 걸 옆에서 통역해 줬어요.
Q. 선생님께서 연부역강하시다는 걸 최근에 저술하신 책을 보고 느꼈는데요.
A. 졸저 ‘들풀에서 줍는 과학’을 얘기하는 거군요.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주변 생물과 자연에 대해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나름으로 쓰긴 했는데, 의외로 관심을 가져줘서 오히려 내가 면구스러울 뿐이요.
Q. 앞으로도 장수하시고 후학들에게 남겨줄 소중한 저작 한 권 더 남겨주세요.
A. 고맙소. 살펴가시오.
◆ 김준민 박사는?
개성 송도(松都)고보 출신으로 일본 도호쿠(東北)대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 연구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듀크대 대학원에 수학하기도 했다. 1946년 서울대 사범대 생물교육학과 교수로 부임, 1979년까지 교단을 지켰으며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와 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식물학회 회장(1966), 생태학회 회장(1976), 자연보존협회 이사장(1984),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1993) 등 관련단체장을 두루 지냈다.
관련 분야 저술에도 힘써 저서로 ‘한국식물의 생태’, ‘식물생태학’, ‘39가지 과학충격’, ‘과학자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등이 있고, 역서로 ‘기후와 진화’, ‘토양과 문명’, ‘생물에서 본 세계’ 등이 있다. 한국학술원 저작상(1981), 성곡학술문화상(1993), 대한민국과학문화상(2007) 등을 수상했다.
◆ 서평 - ‘들풀에서 줍는 과학’
2년 전 과학기술부(당시)와 과학문화재단(현 과학창의재단)으로부터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한 ‘들풀에서 줍는 과학’(2006, 지성사은 김준민 선생이 한국의 생물과 자연을 평이한 서술로 풀어낸 에세이다.
하지만 결코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책장 마디마디에 생태학 연구에 평생을 보낸 노학자의 지혜와 철학이 묻어나는가 하면, 대학 덱스트로 써도 손색없을 높은 수준의 생태학 지식이 빼곡히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진달래는 양지에서 자라지 않는다거나 아카시아가 산림녹화에 제일 알맞다는 것, 겨울철 이른 한파가 대나무를 죽인다는 등 일반이 알아두면 유익할 우리나라 식물에 대한 상식과 정보가 가득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류 속에 살아가는가. ‘들풀에서 줍는 과학’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하고 있다. 산성비,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지리산 반달곰 등 중요한 환경문제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상식과 편견을 바로 잡아준다. 결국 우리는 지나치게 환경을 걱정하며 사는 셈이다. 우리 환경을 제대로 알면 더욱 환경을 사랑하고 보전하는데 매진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은유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들풀에서 과학을 줍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을 일독함으로써 우리는 사소한 들풀에서조차 숭고한 자연의 섭리를 읽고, 정교한 과학의 교직을 체험하는 행운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 윤재석 국민일보 논설위원
글쓴이는 서울대 화학교육과 졸업 후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신문마케팅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연구했으며,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환경학)을 마쳤다. 중앙일보 국제부 차장 및 과학부 차장, 국민일보 국제부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출처] 국민일보(2010. 3. 24)
◆ 김준민(金遵敏) 식물생태학자
식물생태학자. 1940년 일본 도호쿠제국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교사로서 교육계에 발을 들였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생물교육학과)에서 재직하면서 교육자와 연구자로 활약했다. 한국 생태학의 터전을 마련했으며, 생명현상을 생리생태학적 입장에서 설명하여 식물생리학을 생태학에 접목시켰다. 연구업적은 10여 권의 저서와 80여 편의 논문에 집대성되어 있다.
출생 1914. 4. 12 경기 개풍
사망 2010. 12. 4 서울
식물생태학자. 한국 생태학의 터전을 마련하고 특히 식물생리생태학을 발전시켰다. 생명현상을 생리생태학적 입장에서 설명하여 식물생리학을 생태학에 접목시켰다. 1934년 송도(松都)고등보통학교, 1937년 숭실(崇實)전문학교 농학과를 졸업한 뒤 1940년 일본 도호쿠[東北]제국대학교 이학부(理學部)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40년 경성고보, 1942년 개성고보에서 교사로 교육계에 발을 들였으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옮겨(1945) 교육자와 연구자로 활약했다. 1960~61년 동안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을 연구하고 1966년 도호쿠대학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68년 동안 한국식물학회장을 지냈고 1973년에 학술원 회원에 피선되었으며 미국 생태학회 회원, 영국 생태학회 회원, 스웨덴 식물학회 회원으로 국내외에서 활동했다.
그의 연구업적은 10여 권의 저서와 80여 편의 논문에 집대성되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알칼리 토양이 식물영양에 미치는 영향Ⅰ~Ⅲ>(1958,1959,1964)·<삼림토양의 양분 보유능에 관하여>(1965)·<토양 유기물의 분해속도와 미생물 집단의 소장(消長)에 관한 연구>(1967)·<한국 초지의 조성과 생산성 The composition and productivity of a grassland in Korea>(1969)·<토양으로부터 휘발되는 암모니아, 이산화질소의 소실에 대한 식피형(植被型)의 영향에 대하여>(1971)·<인간 간섭이 초지토양의 무기질소 함량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1973)·<한국에 있어서 식물군집의 분포양상과 생산능에 관하여>(1974)·<한국의 지의류 분포에 관한 정량적 연구>(1975)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식물생태학>(1961)·<일반식물학>(1968)·<한국 식물의 생태>(1973)·<최신 식물생태학>(1975) 등이 있다.
[출처] 다음백과
/ 2021.03.2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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