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산중문답 (山中問答)' 이백 (2020.12.26)

푸레택 2020. 12. 26. 20:38

 

 

■ 산중문답 (山中問答) / 이백(이태백)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왜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고 대답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이곳은 별천지라 인간 세계 아니라네

1
이백(李白, 701~762)이 젊은 시절 은거하던 시기에 지은 시이다. 문답의 형식을 빌어 산에서 생활하는 한가하고 유유자적한 심리와 산중의 그윽한 정취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이백(李白)은 두보(杜甫)와 더불어 당나라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자(字)는 태백(太白)이며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이백은 풍부한 상상력과 과감한 과장법 및 교묘한 구상으로 낭만적인 시가를 창작했으며, ‘시선(詩仙)’으로 불리고 있다. 약 천여 수가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에 전하고 있다.

이백은 대략 5세 때 현재의 쓰촨(四川)지역으로 이주하여 젊은 시절을 살았다고 전한다. 그 후 약 25세 전후에 고향을 떠나 42세까지 천하를 유랑하였다. 42세에 도사 오균(吳筠)의 천거로 장안(長安)에서 현종의 측근이 되는 관직에 오르게 된다. 그렇지만 이 장안 황궁에서의 관직생활은 겨우 약 1년 반 정도만 유지되며, 다시 장안을 떠나 유랑하게 된다.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겪게 되는데, 이 시기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永王)의 막부에 있다가 반란죄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 후 다행히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다시 유랑하다가 객지에서 병사했다. 그의 나이 63세였다.

그의 사상은 크게 유교(儒敎), 불교(佛敎), 도교(道敎), 유협(遊俠)으로 구분된다. 청년시절에는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며 세상을 경영해 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고향을 떠나 유랑하며 관리가 되고자 노력했다. 이 유랑하는 시기에 수차에 걸쳐 은거하며 불도(佛道)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특히 그의 오만하고 자신만만하며 자유분방한 사상은 도교의 영향이 적지 않으며, 철학적인 시풍은 승려와의 교류를 통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랑시기에 문인사대부뿐만 아니라 협객과도 교유하였고, 무술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산중에서의 문답」, 즉 「산중문답」의 창작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다. 이백이 산중에 은거한 것은 일생에 있어서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시에 보이는 ‘벽산’은 푸른 산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명이기도 하다. 즉, 벽산은 오늘날 허베이(河北) 안루(安陸)에 소재한 산 이름이다. 이백이 20대에 집을 떠나 이곳에서 약 10년 간 머물며 학문을 닦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는 20대 후반에 이 시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에 대한 다른 판본을 보면 제목이 「산중에서 속인에게 답하다(산중답속인, 山中答俗人)」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속인은 세속의 사람이자 산중의 일반인을 의미한다. 즉, 이 시는 산중에서 일반 사람에게 대답한다는 내용이 된다. 이에 근거하여 이 시의 전체 의미는 약간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속인의 입장에서 이백과 같은 대시인이 왜 이런 산에 사느냐는 질문을 할 만하다는 것이며, 또한 이에 근거하여 이백은 사실상 본인이 원하여 스스로 은거하길 좋아할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추측은 가능하지만 역시 명백한 근거는 없다. 이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형식으로 ‘산(山)’, ‘한(閑)’, ‘간(間)’ 등의 압운(押韻)은 근체시(近體詩)에 해당하지만, 사실상 구체적인 평측(平仄)을 분석하면 고시(古詩)형태의 절구(絶句)이다. 근체시란 당대(唐代)에 정립된 고전시가의 형태이다. 우리의 한시(漢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언이나 칠언의 율시나 절구로, 압운과 평측(平仄) 및 대구 등이 규격에 맞게 창작된 시가를 말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가상의 문답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유유자적하고 한가한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시인은 산에 살면서 느꼈던 심리를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시인의 심리상태는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는 시인이 산에 사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왜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 시인은 웃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모든 대답을 한 듯이 마음이 한가롭다. 이에 독자들은 자신이 미소 지은 듯한 착각에 빠지며, 동시에 자신이 별천지 같은 산에 사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을 주고 있기에 이 시는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심리적 평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백은 다방면에 재능이 있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시인이다. 특히 그에게 불교와 도교는 가장 관심이 많았던 사상이자 종교였다. 이백은 수많은 승려와 왕래했으며, 또한 그의 호가 청련거사(靑蓮居士)이듯 도사의 길을 걸었다. 이 시에서 웃으며 답하지 않지만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심전심의 무엇인가에 대한 깨달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세계가 아닌 별천지는 결국 신선의 세계인 것이다.

이백의 이 시는 후에 우리나라의 판소리계 이야기소설인 「별주부전(鼈主簿傳)」에도 인용되고 있다. 토끼의 간을 찾기 위해 육지에 도착한 자라는 육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별유천지비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이 시는 산에 은거하여 생활하는 시인의 평안하고 유유자적한 심리를 문답의 형식을 빌어 잘 드러내고 있다. 시인이 자신을 대답의 주체로 만들고는 스스로 대답한다. 그 대답은 평범한 설명이 아니다. 그저 미소 지었을 뿐이다. 산에 사는 즐거움을 어떻게 구구절절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설명하지 않음이 설명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복숭아꽃은 도연명(陶淵明, 陶渊明)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연상하게 하며, 이백 역시 의도적으로 복숭아꽃을 이용한 것이다. 계곡 사이의 물길에 둥둥 떠서 흘러가는 분홍빛 복숭아꽃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정취에 시인은 자신만의 무릉도원인 ‘별천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품 속의 명문장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며 답하지 않지만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네. 어떤 질문에는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산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백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장황한 설명보다 훨씬 더 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고승이 이심전심으로 무엇인가를 전한 것처럼.


'別有天地非人間' 이곳이 인간세계가 아닌 별천지라네. 동양의 유토피아는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은 근심과 걱정이 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이백은 이 시를 통해 인간이 사는 세속적인 세계를 벗어나 신선이 사는 소위 별천지(別天地)를 만들어냈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外

/ 2020.12.26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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