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 정일근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판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판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판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판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 감상과 이해
[길 위의 이야기] 두레, 두레밥상, 두레 먹다
제 칼럼에 제 시를 말하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만,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이란 시가 있습니다. 한가위가 가까워지면 더러 애송되는 시입니다. 두레가 농민의 아름다운 공동체인 것은 잘 알지만, 두레밥상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젊은 독자가 있습니다.
두레밥상은 '두리반'으로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을 말합니다. 한가위 날이면 집집마다 둥글게 펴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먹는 밥상입니다. 사각의 모난 각이 있는 식탁에는 상석이 있고 앉는 서열이 있습니다. 둥근 두레밥상에는 앉는 자리 모두가 상석입니다.
가족들 모두 귀히 여기는 어머니의 마음이 두레밥상에 있습니다. 올 한가위에도 어머니는 두레밥상을 펴고 귀향하는 가족 모두를 귀히 반길 것입니다. 하늘에 크고 밝은 팔월 보름달이 뜨고, 집 안에는 둥근 두레밥상이 뜹니다. 이 밥상이 있어 우리는 '귀성전쟁'을 치르면서까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앉아 함박꽃 같은 웃음꽃을 피우며 함께 더운밥을 습니다. 함께 먹는 일을 '두레 먹다'라고 말합니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는 일'이 두레 먹는 것입니다. 진정 두레 먹는 것은 두레정신처럼 '나눔'입니다. 함께 먹고 나눠 먹는 즐거움이 두레 먹는 일에 있습니다. 올 한가위엔 이웃과 콩 한 알이라도 두레 먹는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ㅡ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2010. 09. 19
2
이 시는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두레밥상과 현실의 냉혹한 생존 조건을 대비하면서 유년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열망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도입에서는 유년 시절에 경험했던 어머니의 두레밥상을 회상하며, 그것을 “한가위 보름달”과 “달맞이꽃”에 비유하면서 그 풍요로웠던 정경을 강조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제비새끼”처럼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표출하고 있고, 세 번째 부분에서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의 냉혹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담고 있는 어머니의 두레밥상 같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3
2003년에 발표된 정일근의 이 시는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유년의 두레밥상을 회상하면서 나눔과 배품의 이상적인 세계가 도래하기를 열망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모두 22행으로 된 단연시인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머니의 두레밥상과 세상의 밥상을 대조하면서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시상의 전개상 네 개의 내용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1행~4행의 도입부에서는 “모난 밥상”으로 상징되는 인생의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포근하고 풍요로웠던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두레밥상”을 떠올린다. 시적 자아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을 떠올리며 그것을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로 비유하거나 “달이 뜨며 피어나는 달맞이꽃”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유를 통해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두레밥상이 지니고 있는 풍요로움과 따사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어머니의 두레밥상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으로 비유되는데, 이러한 표현은 가족들을 꽃처럼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주던 두레밥상의 정서적 효과에 대해서 환기해준다.
5행~9행은 시적 자아가 과거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두레밥상에서 밥을 먹었던 경험을 추체험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표출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려 주시던 두레밥상에서 밥을 먹던 가족들을 “제비새끼”로 비유하면서 다정하고 화목했던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골고루 나눠주시던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고 하면서 어미가 물어다 주는 벌레들을 받아먹는 제비새끼들처럼 그렇게 어머니의 밥을 먹고 싶다고 고백한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의 열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시적 자아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은 현실의 삭막함 때문이다.
10행~17행에서는 시적 자아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냉혹함과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성인이 된 시적 자아에게 풍요롭고 평화로운 유년의 밥상은 어디로 사라지고 짐승들처럼 음식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이라는 표현들이 바로 가열한 현실을 대변해준다. 또한 “정글의 법칙 속에서” 떠돌고 있는 “하이에나”를 등장시켜 그러한 현실에서 자신이 선택해야 했던 비참하고 잔혹한 생존 전략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는 구절에는 삭막한 생존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저질러야 했던 비행에 대한 회한과 비애의 감정이 스며 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18행~22행서는 다시금 과거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표출되고 있다. 두 번째 부분과 유사한 갈망이기는 하지만, 시의 세 번째 부분에서 삭막한 현실이 부각되었기에 이러한 갈망은 더욱 강렬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현실의 삭막함을 거친 갈망이기에 거기에는 성숙한 자세와 깨달음이 투영되어 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으며, “진정한 나눔”의 정신이 스며 있음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받아먹고 싶다”는 욕망에서 더 나아가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 어머니의 사랑 두레 먹고 싶다.”고 고백한다. “두레 먹”는다 말은 여럿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 시적 자아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레 먹고 싶다고 고백함으로써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담겨진 나눔과 배품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2020.12.27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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