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음악 선생님과의 추억 (2020.12.21)

■ 가곡 고향 생각과 장안사의 추억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오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우리 식구들은 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TV 방송국 트로트 경연과 남성 4중창 크로스오버 경연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그때마다 우리 식구들은 제각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팀을 응원한다. 가창력이 좋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도 저렇게 좋은 목소리와 음악적 재능이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하곤 한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래 재능이 없다. 음치 쪽에 가깝다. 내게는 음악에 얽힌 아픈 추억이 있다.

보성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요즈음은 음악 시험에 이론 점수도 반영하지만 그땐 필기시험은 없었고 오직 가창평가 실기시험만 보았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음악 선생님은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 생각’을 평가곡으로 정하셨다. 한 사람씩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선생님은 우리들의 노래를 다 들으신 후 교무수첩에 점수를 적으셨다.

그 당시 한 학급의 학생 수가 64명이었으니 아마도 두세 시간에 걸쳐 평가하셨으리라. 학생들의 가창시험 평가를 다 마친 음악 선생님은 뜻밖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음악 점수 ‘양’을 줄 수는 없다. 70점이 안 되는 학생들은 다시 한 번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말씀 후 선생님은 재시험을 볼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일고여덟 명의 명단 속에 당연히(?) 내 이름도 들어 있었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오.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나는 다시 노래를 불러 가까스로 음악 점수 ‘미’를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은 테너 성악가이셨는데 자칭 ‘질리’라고 하셨다. 졸업을 한 후에야 ‘질리(Beniamino Gigli)’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성악가이고, 그 분과 이태리에서 교분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질리’ 선생님은 음악 시간 우리들이 “노래 한 곡 불러주세요.” 하면 늘 흥이 나셔서 ‘오 솔레미오(O Sole mio)’를 부르셨다. 노래가 끝나면 원어 가사의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우리들은 그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고 선생님은 마냥 흐뭇해 하셨다. 음악 선생님은 “오늘이 마지막 음악 시간이다. 오늘 배울 노래는 장안사다” 하시며 가곡 '장안사'를 가르쳐 주셨다.

“장하던 금전벽우 찬재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장안사’는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노래다. 중학생 시절 아픈 추억이 있는 ‘고향 생각’과 고등학교 마지막 음악 시간에 배운 가곡 ’장안사’가 공교롭게도 같은 작사가와 작곡가의 노래다. 장안사(長安寺)는 금강산에 있는 천년고찰로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통일이 되어 금강산 장안사에서 ‘장안사’를 불러 볼 날이 내 살아생전에 올 수 있을까? 지금도 헤어진 가족들과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움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눈물이 함박눈 되어 쏟아진다.

장하던 금전벽우 찬재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 2020.12.20 김영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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