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측지장교와 RNA 이야기
코로나19가 좀체 잠잠해지질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영국과 남아공 그리고 브라질에서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그래서 DNA 바이러스에 비해 새로운 변종이 쉽게 생겨날 수 있다. 이제 코로나19 이전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나는 DNA 바이러스니 RNA 바이러스니 이런 말을 들으면, 강원도 양구 대암산 산골짜기 말단 포병부대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DNA와 RNA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DNA라는 용어가 일반상식이 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DNA니 RNA니 핵산이니 하는 말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전문용어였다.
몇 년 전 군 복무기간이 21개월에서 3개월이 단축되어 18개월이 되었다.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군 복무기간이 34개월이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의 선임들은 무려 36개월을 군 복무했다. 꽃 같은 젊은 시절 3년의 세월, 그 길고도 긴 군대생활은 참으로 서럽고 잔인한 시간이었다. 지금 같으면 전역을 하였을, 군대생활 반환점을 돌아섰을 때 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휴일 오후였던가, 직책이 군수과 서무계라 매일 같이 업무로 시달리다가 모처럼 휴일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는데 본부 행정반에서 빨리 내무반으로 내려오라는 전갈이 왔다. 측지장교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측지장교가 나를 찾을 이유가 없을 텐데 무슨 일일까, 군수과와 측지과는 업무적인 연락도 거의 없는데,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었던가 하고 잠시 멍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고참이 귀띔해 준다. “새로 부임한 측지장교가 유명한 K대 생물학과 출신 ROTC 장교라고 하던데, 김 상병도 생물학과 출신이니...”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생물학이 아니라 생물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보통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세세하게 구분하여 말하지 않는다. 병사들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 주셨던 인자하신 본부포대 포대장님은 멀리서도 나를 보시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생물 선생!" 하며 농담조로 부르시곤 하셨으니. 아무튼 나는 부리나케 측지장교가 기다리는 내무반으로 달려갔다.
내무반은 병사들이 잠자고 생활하는 공간이다. 요즈음은 내무반이 생활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대여섯 명이 침대생활을 하는 현대식 공간으로 탕바꿈했지만 내가 복무하던 당시는 양쪽 기다란 침상에 과별로 공간을 나누었을 뿐 한 내무반에 백여 명의 포대원들이 모두 함께 생활하고 잠을 잤다. 내무반으로 들어가니 측지장교가 내무반 침상 가운데쯤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경례를 하니 측지장교는 자기 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무슨 업무로 날 부르신 걸까 궁금증을 갖고 침상에 앉았다. 그런데 측지장교가 뜻밖의 질문을 했다.
“김 상병이 ○○대 생물학과를 나왔다고 들었는데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반갑네. 그러면 대학교 다닐 때 유전학 시간에 유전자와 핵산에 대해 배웠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 자, 그러면 DNA가 뭔지 말해 보게. 그리고 RNA의 세 종류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보게나.” “???”
너무도 뜻밖의 질문이었다.
사실 군대에 와서는 전공과목을 다 잊고 지냈다. 그래도 갑작스런 질문에 옛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나는 대로 DNA와 RNA에 대한 질문에 답을 했다. 아무튼 그날 나는 군대에 와서 처음으로 생물학과 학사장교 출신 측지장교 덕분에 잠자고 있던, 대학 다닐 때 공부했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하듯, 대학원 입시 면접 고사 보듯 측지장교는 내게 생물학 전공 문제를 설명하라는 질문을 했다. 그때 짧은 시간이었지만 군대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교와 전공 이야기를 나누는 참으로 신기하고 낯선 경험을 했다. 그때 그 일화는 두고두고 내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삭막한 군대 시절의 아름다운 에피소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잠시 우리 부대 출신 어느 전우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느 전우가 우리 대대의 알파포대로 배치된 첫날, 포대장님이 막 전입한 신병들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자, 여기는 포병부대다. 북쪽이 어느 방향인지 아는 사람 있는가?"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있을 때 이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아까 오다가 곡사포를 보았습니다. 그 곡사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북쪽입니다."
동기 전우들 모두 이 전우의 대답에 깜짝 놀랐고 그 지혜에 감탄했다고 한다. 포대장은 이렇게 대답한 전우에게 "그렇다. 네가 진정한 포병이다."라고 격려하고 건빵 한 봉지를 주었다고 한다. 만일 내가 포대장이었으면 그 지혜로운 병사에게 건빵 대신 3박 4일 포상휴가를 보내주었을 텐데. 아쉽다.
끝으로 잠시 왓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1953년 왓슨과 크릭은 '네이처'지에 DNA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은 20세기 생물학의 최대 발견이라고 일컬어진다. 논문을 작성할 때 저자 순서를 동전 던지기로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왓슨과 크릭은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 업적으로 1962년 윌킨스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1928년에 태어난 제임스 왓슨은 25살 젊디젊은 나이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고, 34살 때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과학계의 아이돌이었고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다.
뉴스를 찾아보니 제임스 왓슨은 2007년 인종과 지능의 관계를 설명하며 흑인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그는 과학계에서 거의 퇴출되다시피 했으며 경제 활동이 어려워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14년 급기야 자신이 수상했던 노벨상 메달을 뉴욕 경매 시장에 내놓았는데 러시아의 어느 갑부가 이 노벨상 메달을 사들인 후 제임스 왓슨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경제적 이유로 노벨상 메달을 경매로 내놓았다는 것도, 러시아 갑부가 메달을 사들인 후 돌려주었다는 것도 좀체 믿어지지 않는다. 2022년은 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받은지 60년이 되는 해이고, 2023년은 그들이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왓슨은 2021년 현재 93세의 나이로 건강하게 살아있다.
한편 왓슨과 함께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크릭은 2004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37세였던 1953년 영국 캠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왓슨과 함께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했고, 이 연구로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발견은 생명공학산업과 유전자 치료법을 연구에 기여했으며 범죄수사에도 DNA 증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크릭은 생각할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라며 인터뷰조차 꺼려하며 세간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크릭은 참으로 후배 과학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훌륭한 과학자였다.
/ 2021.02.07 김영택
blog.daum.net/mulpure/1585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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