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해와 감상]
1
[감상과 해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이 비싼 음식이나 장난감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모도 결핍되어 있다. 부모가 생계로 바쁘거나, 혹은 생계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로 아이들을 버려두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다. 특히 어머니는 더 그렇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아직 미성숙한 상태의 아이에게, 부모의 부재는 생존이 위태롭다고 느낄 만한 일일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버려두는 매 순간은 아이의 삶에 깊이 상처를 남긴다.
기형도의 ‘엄마 걱정’은 시장에 장사를 나간 어머니를 혼자서 기다리던 때의 깊은 절망감을 노래한 시다. 해는 벌써 졌고, 금이 간 창 너머에서는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혼자 방에 남아서 엎드려 울고 있다. 조그만 기척 소리에도 혹시 어머니인가 하고 돌아보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이때의 아이의 간절한 마음과 반복되는 절망감이 ‘안 오시네’, ‘안 들리네’와 같은 되풀이되는 문장들로 절절하게 나타나있다. 아무리 도리질을 하려고 해도, 아이에게는 ‘영영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는 무서운 생각이 점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혼자 남겨진 아이로서의 서러움이 극대화되는 부분은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라는 부분이다. 아마도 방 안에는 배고프면 먹으라고 이불 밑에 묻어 두고 간, 그렇지만 이미 식어진 ‘찬밥’이 남아 있었을 테다. ‘찬밥취급’이라는 관용구가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화자의 혼자 남겨진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과 버려졌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서러운 마음을 ‘찬밥처럼’이라는 말처럼 적절하게 나타내기는 쉽지 않다.
연을 달리하며 화자는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된다. 그렇지만 이 어른에게도 어린 시절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때의 절망감과 서러움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 기억은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춥고 외롭고 쓸쓸한 부분, 즉 ‘윗목’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의 윗목’은 하나씩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유년 시절의 아이에게 부모와의 관계는 세계의 전부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억은 생애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누구든지 부모님에 관련된 서운하고 쓸쓸한 기억을 하나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이름붙일 적당한 말을 찾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 나에게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년의 윗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면서, 혹시 아직도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있을지 모를 아이를 끌어안아 주며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상처를 쓰다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옮겨온 글)
2
이 시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외로움을 주제로 하여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 가운데 엄마를 기다리던 '그 어느 하루'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구체적으로 1연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화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두워진 방에 혼자 '찬밥'처럼 남겨진 화자는 잠시나마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엄마를 기다리며 숙제를 해 보지만, 아무리 숙제를 천천히 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창 틈으로 들려오는 빗소리가 오히려 화자의 외로움을 더욱 고조시킨다. 더불어 1연에서는 고된 어머니의 삶도 묘사되어 있는데, 열무를 팔러 간 어머니도 그 열무들이 시들 만큼 해가 저문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삶에 지쳐 '배춧잎 같은 발소리'를 내며 돌아온다. 뒤이어 그 시절의 기억이 성인이 된 화자에게 아직까지도 생생하며 지금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2연을 구성하고 있다.
3
기형도의 시는 고통스럽다. 되돌아보는 눈길이 지나온 유년의 기억이든,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든, 아주 내밀한 잃어 버린 사랑이든, 그의 눈길엔 어김없이 고통이 묻어난다. 그가 짐짓 목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그의 시에서 잘 뒤섞이지 못하는 몇몇 풍경들이 서로 버성기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구체적 기억에 의존하는 한, 그의 시는 날카로운 연상과 섬세한 묘사를 통해 음울한 내면의 풍경을 수려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시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 시장에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찬밥처럼 방에 담겨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는 화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화자의 막막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캄캄해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화자의 마음은 무섭고 슬펐을 것이다. '안 오시네, 엄마 안 오시네, 안 들리네'로 바뀌어 가는 화자의 말에는 어머니가 없다는 두려움뿐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걱정도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2연에는 어느 새 자라서 성인이 된 지금, 그 때를 생각하는 화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때의 두려움은 그리움으로 변하여, 화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4
이 시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화자가 어렸을 때는 매우 가난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런 가난했던 시인의 어린 시절 체험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비유와 개성적인 표현 에 의해 형상화된다. 1연에는 두 개의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형으로 그려진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가서 해가 '시든 지 오래' 되어서야 '배추 잎 같은' 지친 발소리를 내며 돌아오시던 엄마의 고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엄마가 시장에 가고 나면 '빈 방'에 '찬밥처럼' 홀로 남겨져 '어둡고 무서워' '훌쩍거리던' 어린 시절 화자의 외로움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이다. 2연에서, 화자는 1연에서의 정황을 '지금까지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고 포괄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 유년기의 고통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음을 표현하였다. 이렇듯, 이 시는 어린 시절 화자의 '그 어느 하루'를 제시함으로써 화자의 정서와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는 시적 정황을 현재의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단순히 유년의 기억일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자신의 삶을 아로새기고 있음을 암시한다.
■ 아이를 키우며 /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대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객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쩍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 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넣거라
이 엄마는 너의 심장은 낳아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
다름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까지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 렴형미, '아이를 키우며' 전문
[감상 및 해설]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는 마구 심장이 요동쳤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몇몇 생경한 어휘들도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한 인간의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 다름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이 구절 앞에서 저는 박수를 치고 싶었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한사람으로서 왠지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렴형미 시인은 함경북도 청진 출생으로 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여성입니다. 1999년 이후에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북의 어려운 현실을 견디며 사는 여성의 목소리를 시에 주로 담고 있다고 합니다.
ㅡ 문학집배원 안도현의 시 배달
(안도현, ㈜창비, 2008)’에서 옮겨 적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을 제재로 하고 있으며, 아이의 유년 시절의 상(像)에 대한 화자의 바람을 담고 있다. 시어머니나 남편은 주변 사람들처럼 아이에게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용적인 재주를 가르치기를 원하지만, 화자는 그 어떤 재능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법'을 아들이 익히기를 바란다. 이는 이 시의 5연에서 형상화되어 있는데, 화자는아들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비나 눈을 맞아도 보고, 들판에 나가 고추잠자리나 메뚜기를 잡기도 하는 등 자연에서 보고 느끼며 배움을 얻고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한편 시가 전개되는 도중에 시의 청자가 바뀌게 되는데, 4연까지는 불특정한 청자를 대상으로 내용이 전개되다가 이후부터는 아들인 '너'를 청자로 설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직유법, 그리고 행동과 외모 등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보여 주기' 방식을 통해 아들의 외양 및 성격을 묘사하고 있으며, 시각적 심상을 주로 사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출처] 현대문학 현대 시 다음백과
/ 2020.11.2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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