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삶의 나이' 박노해, '내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해밀 조미하 (2020.11.29)

푸레택 2020. 11. 29. 20:52



■ 삶의 나이 / 박노해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명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

ㅡ 박노해의 詩 '삶의 나이' 전문

■ 내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 해밀 조미하

내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으며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시 내지 않고 혼자서 간직하다
금방 평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일이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서
힘이 부쳐 쉬고 싶을 때

그냥 맘 가는 대로 훌쩍 떠나는
용기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더 나이를 먹게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댓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행복을 오래오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 / 2020.11.29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