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나이 / 박노해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명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
ㅡ 박노해의 詩 '삶의 나이' 전문
■ 내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 해밀 조미하
내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으며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시 내지 않고 혼자서 간직하다
금방 평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일이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서
힘이 부쳐 쉬고 싶을 때
그냥 맘 가는 대로 훌쩍 떠나는
용기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더 나이를 먹게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댓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행복을 오래오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 2020.11.29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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