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시인] 이천에서 봄비가 보내온 詩

[나도詩人] 나무의 고향, 버스 놓친 날, 동행 김동인(2020.09.02)

푸레택 2020. 9. 2. 17:36

 

 

 

 

■ 나무의 고향 / 김동인

나무는 씨앗이 떨어진 그곳
그 자리에서 일평생을 산다
몇 십년 몇 백년을 한 곳에서
흙이 있음을 감사해 하며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다
섬에 떨어지면 섬 나무로
강가에 떨어지면 강가 나무로
씨앗이 머문 그곳
운명의 자리에 터를 잡는다
빗물을 감사히 흡수하고
햇살을 감사히 받으며
욕심없이 불평없이
깊이 뿌리내린 그곳은
나무의 고향이 된다
나무의 무덤이 된다
나무의 향기가 된다

■ 버스 놓친 날 / 김동 인

하굣 길
마을버스 놓친 날
시내버스 타고
외딴 도로가에 내린다
긴 흙 길 긴 한숨 소리
가을 바람이 갈대 사이를 가른다
갈 길이 먼 나의 마음을 가른다
그늘 하나 없는 길
뿌연 먼지바람이 회오리친다
덜그럭 덜그럭 빈 도시락 소리
내 발걸음에 박자를 놓는다
스치는 낯선 동네 낯선 기분
해진 운동화 뒷굽에
마른 모래가 미끄럽다
가을 볕에 달아오른 붉은 두 볼
마른 목이 물을 재촉할 즈음
저 멀리 보이는 우리 마을
굳은 입가에 미소가 띤다
마을 버스 놓친 날
나는 긴 소풍을 다녀왔다

■ 동행 / 김동인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작은 손길이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당신의 잃어버린 미소를 다시 찾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해요
혼자 견디며 살아가기엔
힘든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고된 언덕도 험한 산길도
함께 가면 무섭지 않아요
혼자가 아닌 같이
그것만으로도 이 길을 지난 후
미소 지을 수 있을 거예요
작은 행복에도 감사를 느낀다면
우린 살아갈 의미를 찾은 거겠죠
지금의 삶이 완벽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 내일을 기다려요
먹구름이 지나가면 무지개가 떠요
아침에 뜨는 밝은 해를 기억해요
마음 속에 나눌 수 있는
작은 씨앗 하나 있다면
내일은 언제나 우리편입니다

ㅡ 이천에서 보내온 詩 봄비 김동인

/ 2020.09.02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