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노래인생] 짝사랑,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으악새는 억새일까 왜가리일까? (2020.06.01)

푸레택 2020. 6. 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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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사랑 / 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노래 고복수

~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 뜸북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잊혀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섰는 임자 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

내가 좋아하는 옛 가요 중에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20년 전쯤인가, 생각없이 '짝사랑'을 부르던 어느날 문득 '으악새가 무슨 새지?' 하고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다. 으악새는 조류도감에 실려있지 않았다. 그때 국문학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으악새'는 억새의 사투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억새가 가을 바람에 슬피 울다니 참 멋진 시적인 표현이라 생각하며 '으악새'를 억새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으악새'가 억새가 아니라 왜가리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013년 이 노래의 작곡자인 손목인 탄생 100년을 맞아 그의 유고집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작곡자 손목인이 작사가 박영호에게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었다고 한다. 박영호는 뒷산에 올라갔는데 아래쪽에서 으악으악 왁왁 하며 우는 새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강원도와 경기북부 지방, 북한에서는 왜가리를 왁새라고 부른다고 한다. 즉 왁새는 왜가리의 방언이다. 왜가리가 왁왁 왝왝 하고 우는 소리를 듣고 시인 출신인 작사가 박영호가 음률에 맞춰 으악새라고 한 것이다.

마침 어느 블로그에 '으악새' 논쟁을 잘 정리해 놓았기에 그 글을 발췌하여 옮겨 싣는다.

 ‘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 시인 이병렬

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작고한 원로가수 고복수가 부른 가요 중에 짝사랑이란 곡이 있다.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이 가요는 노랫말 그대로 으악새가 슬프게 우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온 모양이구나 하는 애달픈 내용으로 이 노래를 알고 있는 기성세대라면 가을날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애창하는 사람들도 정작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새 이름에는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뻐꾹뻐꾹 뻐꾹새, 뜸북뜸북 뜸북새, 지지배배 제비는 물론 종달종달 종달새가 그렇다. 그러니 혹 으악으악 하고 우는 새가 아닐까, 그래서 으악새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조류 도감에 으악새라는 새는 없다.

그렇다면 어찌 된 것일까. 이에 식물학자들이 나서서 으악새란 억새의 다른 이름이라 주장했고, 실제 경기도 방언으로 억새를 종종 으악새라 부른다고 국어학자들이 뒷받침을 했다. 그런데 식물인 억새가 슬피 운다? 매우 시적인 표현이라는 해석까지 더해지면서 작사자의 문예미학적 표현의 재능까지 찬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으악새는 억새일까? 이 의문이 풀리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3년 11월 27일. 이 노래의 작곡자인 손목인 탄생 100년을 맞아 그의 유고집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작곡자 손목인이 전하는 작사자 박영호의 작사 배경이 재미있다. 일제 강점기 KAPF(조선예술가 프롤레타리아 동맹)에서 활약한 적이 있는 박영호는 촉망받는 시인이었으나 KAPF가 해산된 후 가요계의 작사자로 변신했는데 한국동란 중 아깝게 40을 갓 넘긴 나이에 고인이 되었다. 손목인이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었다고 한다. 박영호 왈, 뒷산에 올라갔는데 아래쪽에서 으악으악 하는 새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했단다. 아주 시큰둥한, 요즘식으로 말하면 쿨한 대답이었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1절과 2절의 가사가 댓구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1절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2절 아~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으악새와 뜸북새의 댓구. 그러니 으악새는 억새가 아니라 진짜 새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으악으악 하고 울었다는 이 새는 어떤 새일까? 

이번에는 조류학자들이 나섰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류도감에는 으악새란 새가 없다. 그렇다고 작사자 박영호가 발견한 새로운 종일까? 아니다. 바로 왁왁거린다고 해서 왁새란 이름이 붙은 우리나라 새 왜가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왁왁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이 새의 울음 소리를 듣는 이에 따라 왁왁이 아니라 으악으악으로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박영호가 강원도 통천 출신이라는 것, 작사 당시에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경계에 있었다는 것, 그 계절, 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가 왜가리라는 것 등등을 통해 으악으악 울었다는 새 이름을 박영호가 몰랐기에 그냥 자신의 귀에 들린 울음소리 그대로 으악새라 했을 뿐 실은 왁새, 왜가리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새 이름을 모르고 그냥 소리나는 대로 노랫말에 적은 박영호. 이를 두고 억새라고 주장하며 문예미학적 평가까지 했던 문학연구가들. 그러나 어쩌랴. 작사자가 작사 배경을 설명한 것이 알려지면서 머쓱해버리고 말았다. 그냥 으악으악 우는 새가 아닐까, 했던 많은 대중들의 상상이 맞았던 것이다.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그냥 으악으악 우는 새이다. 누구 귀에는 왁왁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새. 공식 명칭은 왜가리라는 것뿐이다.

[출처] ‘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이병렬 블로그 (2014.09.19)​

 / 2020.06.01 편집 택